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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칠궁 - 3장 호랑가시나무의 전설 ②
  • 금강 작가
  • 승인 2019.02.15 08:55
  • 댓글 0

2.

 

10분 뒤 오성그룹 회장실.

“경찰청 김훈 반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회장님 제안을 수락하겠다며 인적사항을 전했습니다.”

비서실장은 보고와 함께 메모를 전했다.

박준. 33세. 대통령 경호실 요원.

메모를 읽어가던 숙종의 뇌리에 젊은 사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잔가? 영화배우처럼 생긴 그 놈인가.

아내와 함께 각종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그. 훤칠한 키에 남성미가 돋보이는 얼굴. 여자들이 한번쯤 다시 쳐다볼 정도로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그래 맞아. 명신이 놈을 칭찬한 적도 있었어. 그날이 언제였더라?

명신은 워낙 남들 앞에서 나서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라 하루건너 한번 꼴로 행사에 참석했다. 그날 명신은 한복 차림이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다가 한복 끝자락이 끼어 넘어졌다. 그때 누군가 번개처럼 몸을 날려 명신을 붙잡았다. 박준이었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계단에 굴러 큰 일 날 뻔했어요. 아휴. 사례를 했는데 받지도 않더라구요.”

명신의 그 말은 또렷이 기억난다. 그렇다면 놈이 명신의 환심을 산 뒤 유혹했나. 아님 명신이 그 놈을 좋아해 양복을 선물했나. 돈을 쥐어준 것도 아니고 천만원이 넘는 명품 양복을 선물할 정도면 분명 관심이 있다는 증거일 터.

숙종의 뇌리에 탄탄한 몸매의 박준과 명신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질투심이 걷잡을 수 없이 일었다. 숙종은 당장 박준이라는 놈을 데려와 요절을 내고 싶었다.

안되지.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해. 섣불리 대들었다간 일을 망칠 수 있어.

감정을 추스린 숙종은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반장이 전화한 목적이 뭔가. 내 제안을 들어줬으니 보답하라는 건가.”

“아닙니다 회장님. 사례에 대한 언급은 없었고 박준의 당일 행적을 알아봐달라고 했습니다.”

“당일 행적?”

“예. 3월 17일 그러니까 엿새 전에 박준이 뭘 했는지, 사모님은 그날 뭘 하고 있었는지, 박준이 사모님 일정에 맞춰 경호 업무를 했는지 알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건 자신들이 직접 수사하면 될 것 아닌가.”

“드러내 놓고 수사하기 어려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숙종은 감이 잡혔다. 명신이 대통령 가족이라서 몸조심하려는 거겠지. 그나저나 명신이 정말 그 양복을 경호원에게 사줬나?

숙종은 경찰에 앞서 사실 여부를 먼저 확인하고 싶었다. 숙종은 더 망설이지 않고 지시했다.

“우리 집에 설치된 CCTV 테입을 가져와 시간대별로 철저히 분석해. 박준은 물론 집사람까지. 그리고 진돗개 팀장을 불러 박준 건을 맡겨.”

“저어 회장님, 진돗개팀을 투입시켰다가 혹 일이 잘못되면 골치 아프지 않겠습니까.”

비서실장이 조심스럽게 진언했다. 진돗개팀은 그룹의 비공식적인 조직으로 특수 업무를 담당한다. 감사팀과 별개의 인력과 예산으로 운영되는데 미행, 감시, 테러가 주 임무다. 필요하면 중국 러시아 등지에서 해결사를 불러 사건을 청부한다. 소문내지 않고 신속히 일을 처리하는 효과는 있지만 그만큼 부담이 있다. 비서실장은 그 점을 우려한 것이다.

“쓸데없는 걱정을 다하는군. 지금까지 진돗개를 투입시켜 탈난 적이 있었나. 이 일에는 진돗개가 적격이야. 박준이 양복 뿐 아니라 그놈 아랫도리까지 벗겨 치부를 샅샅이 알아내.”

 

자정을 넘긴 시각, 곤히 잠들어 있던 박준은 인기척에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누 누구야.”

“입 다물어. 소리치면 옥수수 알갱이 부러져.”

박준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렬한 후레시 불빛이 강타했다. 눈이 부셔 앞을 분간할 수 없었다.

“단단히 묶어.”

누군가 지시했고 박준의 입을 테입으로 칭칭 감았다. 얼굴에 검은 보자기가 씌워졌다. 박준은 숨이 막혔다. 옷장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고, 찰칵 찰칵 카메라 셔트 돌아가는 소리가 연속적으로 들렸다.

“이게 뭐지. 저 자식 변태 아냐.”

“그것도 찍어. 놈 불알도.”

위급한 상황에서도 박준은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하지만 오가는 말만으로는 무슨 짓을 벌이는지 판단이 가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강력한 전류가 몸을 관통했고 박준은 정신을 잃었다.

 

비슷한 시각, 강남 고급 룸살롱. 두 명의 사내가 얼굴을 맞대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발렌타인 30년산이 세병 놓여 있었다.

“선배님 이제 그만 하시죠. 집에 들어 가봐야 해요.”

“한 잔 더 해. 오성건설 노조위원장 술 실력이 이것밖에 안돼? 그래서 노조원들을 어떻게 설득하나.”

“염려마세요. 말빨로 죽이지 술로 죽입니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김택근 위원장이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이창신 사장 말이야. 여직원을 성추행한게 사실이야?”

“맞대두요. 그 여직원이 울고 불고 난리가 났어요. 이창신이 툭 하면 집무실로 불러서 껴안고 뽀뽀하고 별 희한한 짓거리를 다했대요. 너 지금 입고 있는 팬티 색깔이 뭐지? 그런 말도 했다는데. 나원참 명색이 사장이라는 사람이 그래도 되는 거냐구요.”

“증거가 있나. 이사장은 오리발을 내밀텐데.”

“아니오. 이번엔 그냥 넘어가기 어려워요. 그동안은 여직원이 불이익을 당할까봐 속으로 끙끙 앓았는데 견디다 못해 여직원 모임에서 실토를 했어요. 알고 보니 이사장이 상습범이더라구요. 피해를 본 다른 여직원도 가세해 단체 행동을 할 계획이랍니다. 우리 노조에 가입한 여직원 말로는 형사 고소도 하고 아고라에 알린다나 뭐 그쯤 되면 이사장 공개 사과해야 될 걸요.”

“사과만으로는 안돼. 사퇴하게 만들어야지.”

실장이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그러자 김택근이 정색하며 물었다.

“툭 까놓고 말할게요. 선배님께서 그렇게 나오는 저의가 뭡니까. 이창신사장은 로열패밀린데 회장 측근인 선배님이 왜 나서는 겁니까. 솔직히 말해주세요.”

“오성의 미래를 위해서야. 오성건설이 쓰러지면 어떻게 되겠어.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질 게 뻔한데 이대로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물론 나도 조심스러워. 자네가 내 고등학교 직속 후배니 믿고 하는 말이야. 이건 회장의 뜻이야. 회장이 정면에 나서 이창신을 자르기는 어려워. 대의명분이 필요하다구.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흐흐 알겠어요. 그러니까 노조위원장인 내가 앞장서서 분위기를 조성하고 사장 사퇴를 압박하라는 것 아닙니까.”

“당근이지. 그럼 자네 자리는 내가 확실히 보장함세. 자 이거 받아.”

비서실장은 봉투를 꺼내 김택근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큰 거로 한 장이야.”

그 말에 김택근의 입이 벌어졌다.

“선배님 화끈하게 밀어붙이겠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다음날 아침 오성그릅 회장 집무실. 탁자 위에 노란색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다. 숙종은 출근하자마자 비서실장을 불렀다.

“이게 진돗개가 작업한 건가.”

“예 회장님. 경찰이 요청한 건 빠짐없이 촬영했습니다.”

“양복 외에 다른 특별한 건 없었나.”

“달러뭉치가 발견됐습니다. 백달러짜리로 도합 7만 달러였습니다. 예금통장도 있었는데 입출금 내용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했습니다. 봉투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래? 돈까지 갖고 올 필요는 없었는데. 도난신고를 하면 어쩌려고.”

“진돗개는 한번 물면 놓치는 법이 없지 않습니까. 청와대 경호실 직원이 집에 7만달러를 소지하고 있는 것도 그렇고, 신고하면 출처를 조사받을텐데 제 생각엔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궁금하군. 그 돈이 어디서 났을까.”

“그것도 조사를 시켜볼까요.”

“됐어. 그건 진돗개 전문 분야는 아니지. 또 다른 건 없었나.”

“말씀드리기 민망하지만 나체사진도 있었습니다. 한복 입은 여자 초상화도 있었고요.”

“나체사진?”

숙종의 눈이 번쩍였다.

“예 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동일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봉투를 여는 숙종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숙종의 시선이 사진 속 여자 얼굴에 꽂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여자가 주요 부위를 총구로 가린 채 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누구지 이 여자는.

숙종이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혹시나 싶었지만 여자는 명신이 아니었다. 숙종은 또 다른 여인의 초상화에 눈길이 갔다. 궁중 의상 차림의 여인이 단정한 자세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눈매가 고와보면서도 차갑게 느껴졌다.

거참 알 수가 없군. 박준이 왜 이런 사진을 갖고 있는 거지?

숙종은 봉투를 덮었다.

“달러와 여자 사진은 따로 보관하고, 나머지 사진은 경찰에 전달해. CCTV 분석 결과는 나왔나.”

“예 회장님. 밤새워 CCTV를 판독했습니다. 진돗개가 침입 흔적을 없애려고 박준의 집 앞에 설치된 CCTV 테잎도 가져왔는데요. 김반장이 지목한 3월 17일 오전 2시 33분에 박준이 집을 나와 어디론가 가는 장면이 포착됐습니다.”

“수상쩍군. 그 시간에 집사람은?”

“사모님께선 그 시간에 집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3월 17일 전후에 찍힌 CCTV에는 사모님과 박준이 나란히 집을 나서는 장면이 담겨 있었습니다.”

“수고했어.”

“예 회장님.”

비서실장이 문을 닫고 나가자 숙종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시각 경찰청 특수수사과. 이세호 과장은 수화기를 든 채 연신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잘 알겠습니다. 네 네 죄송합니다. 사실 확인 후 즉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통화를 끝낸 이과장이 바깥에다 대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김훈이 어딨어. 당장 들어오라고 해!”

연락을 받은 김훈은 득달같이 달려왔다. 과장은 김훈을 보자마자 추궁을 시작했다.

“자네 박준을 수사하고 있나.”

“예 과장님. 칠궁사건에 용의점이 있어 수사 중입니다.”

“그럼 박준이 청와대 경호실 소속인 것도 알고 있겠군.”

“알고 있습니다.”

“그 사실을 나한테 왜 보고하지 않았나.”

“일부러 보고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과장님께 부담을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이명신에 대해 직접 조사를 않고 수사를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겁니다.

“좋아. 한 가지 더 묻지. 오늘 새벽 1시경 자네와 박찬일이 뭘 했는지 행적을 보고해.”

“박찬일은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저는 집에서 아내와 손잡고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었고요. 아마 박찬일은 자료 분석 중이었거나 아님 책상에 엎어져 잠을 잤겠지요. 칠궁사건으로 연일 수사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거든요.”

“사실인가. 확실해?”

“예 과장님. 그런데 무슨 일인지 제가 알아도 되겠습니까.”

“그 시간에 박준 집이 털렸어.”

“네에?”

김훈은 짐작이 갔다. 하지만 이숙종회장이 그렇게 빨리 손을 쓸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다.

“과장님께선 지금 박찬일과 저를 의심하는 겁니까.”

“의심 살만한 행동을 했으니까 묻는 게 당연하지. 박찬일이 스타일로 봐서 수사 목적으로 담장을 넘고도 남을 거고.”

과장이 비아냥거리듯 내뱉었다. 김훈은 순간적으로 열이 뻗쳤다.

“과장님, 저는 수사가 아무리 중해도 불법 수사는 하지 않습니다. 박찬일이도 마찬가지고요.”

김훈이 상기된 표정으로 반박하자 과장은 한 발 물러섰다.

“알겠네. 자네들이 박준의 집에 침입하지 않았다니 다행이야. 아침에 경호실이 발칵 뒤집어졌어. 경호실장이 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경찰에서 박준을 뒷조사하고 있다’며 거세게 항의를 했다더군. 조금 전에 청장 전화를 받았어. 그런 사실 있냐고. 이제 이해가 가나.”

김훈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어쨌거나 상관에게 보고를 하지 않은 건 불찰이었다. 그런데 경호실에선 박준 뒷조사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 김훈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과장이 주의를 줬다.

“조심해. 경호실 안에도 눈과 귀가 있어. 예전같이 막강하진 않지만 그래도 무시 못할 부처니까 갈등 빚는 일은 하지 말라고. 알겠나.”

과장실을 나오자 박찬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반장님. 과장님 고함소리가 바깥에까지 들렸어요.”

“자네, 박준 뒷조사를 누구에게 시켰지?”

“경호실에 우리 청에서 파견나간 제 동기가 있습니다. 왜요. 나발 불고 다닐 녀석은 아닌데.”

“정보가 샜어. 자네 동기가 불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그쪽 라인은 끊는게 좋겠어.”

김훈은 과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이야기를 듣던 박찬일이 흥분했다.

“아니 과장님은 돗자리라도 깔았습니까. 내가 월장을 하는지 안하는지 보지도 알고 어떻게 그리 단정적으로 말합니까.”

“청장한테 깨지다보니 그랬겠지.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자구.”

그때 휴대폰에서 진동음이 들렸다. 김훈이 받았다.

“오성 김실장입니다. 자료를 전해드리려고 하는데 나오실 수 있습니까.”

“어디죠? 바로 가겠습니다.”

“반장님 사무실 앞에 와 있습니다.”

김훈이 박찬일을 향해 신호를 보냈다. 특수수사과 정문을 나서자 깜빡이를 켠 승용차가 보였다. 김훈이 다가가자 뒷좌석 문이 열렸다.

“일단 타시죠.”

김훈이 차에 오르자 김실장이 노란색 봉투를 내밀었다.

“따로 설명 드리지 않겠습니다. 보시면 알 겁니다.”

“이걸 어디서 구했습니까.”

“답변 드리기 곤란합니다. 말하면 복잡해질 수 있어요. 그럼 이만.”

사무실로 돌아온 김훈은 노란색 봉투를 열었다. 내용물을 보는 순간 김실장의 말이 과장이 아님을 깨달았다. 박찬일의 입에서 탄성이 새나왔다.

“야 이걸 어떻게 구했지? 대기업 조직은 국가 정보기관 뺨친다더니 정말이네요.”

“감탄할 일이 아냐. 이숙종 회장이 많이 오버했어. 박준의 행적을 알아봐달라고 했더니 아예 싸그리 뒤진 모양이야.”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이게 모두 불법으로 수집한 증거물이다 이 말씀이죠.”

김훈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박찬일이 빙긋 웃었다.

“그럼 증거물로 채택하지 말고 사실 확인만 해보는게 어때요. 그런 다음에 정식으로 압수수색하든지 소환하면 될 거 아니겠어요.”

“바로 그거야. 얼른 출동하자구.”

 

16분 뒤 남산 H호텔 키톤 매장. 김훈 일행을 맞은 사장은 불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또 무슨 일로……”

“시간 많이 뺐지 않겠습니다. 사진만 확인해 주세요.”

김훈은 봉투에서 여러 종류의 사진을 꺼내 펼쳤다. 모두 정장 사진이었다.

“이중에서 키톤 제품이 있습니까.”

사장은 돋보기를 들고 사진을 한 장씩 확인해나갔다. 잠시 후 사장이 딱 부러지게 말했다.

“하나만 빼고 다 일반 기성복이군요.”

“확실합니까.”

사장이 줄무늬 양복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방면 일만 10년 넘게 했습니다. 양복 모양새를 꼼꼼하게 살펴봤는데 이 양복은 키톤사 제품이 맞습니다.”

“이곳 매장에서 판 제품입니까. 아니면.”

“한국에서 키톤 제품을 파는 곳은 여기밖에 없습니다.”

“혹시 고객 중에 박준이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못 듣던 이름입니다.”

“그럼 이명신 고객이 이 제품을 구입했습니까.”

사장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명신이 매장에 직접 와서 양복을 골랐습니까. 같이 동행한 사람은 없었습니까.”

“죄송합니다만 그 질문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사장은 난색을 표하며 거듭 손사래를 쳤다.

 

이날 오후 오성건설 사장실 앞. 노조원들이 피켓을 들고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이창근 사장은 성폭력 행위를 공개 사과하라!

-오성건설 여직원은 접대부가 아니다. 성희롱과 성추행을 일삼은 이창근 사장은 즉각 물러나라!

시위가 벌어지는 동안 이창근 사장은 임원들과 함께 대책회의를 했다.

“성폭력이라니 가당찬 주장이오. 여직원을 칭찬하는 차원에서 등을 두드리고 예쁘다는 말을 한 것뿐인데 저렇게 난리를 치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이창근 사장이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자 김익수 전무가 맞장구쳤다.

“일일이 대응할 필요 없습니다. 그랬다간 오히려 저놈들 수작에 말려들 겁니다.”

“김 전무의 말이 맞습니다. 피해를 입었다는 여직원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노조 간부들이 설쳐대는 건 목적이 다른데 있다고 봅니다.”

“다른 목적이라니 무슨 뜻이오.”

“약점을 잡고 임금 인상을 관철시키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허 말조심들 하세요. 나는 약점 잡힐 일은 하지 않았소.”

이창근이 정색하자 임원들은 사장의 눈치를 봤다. 이때 사장 옆에 앉은 임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성건설 부사장이었다.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여직원이 한명도 아니고 둘씩 출근하지 않고 있는 건 나름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직원들한테 들은 얘긴데 여직원들이 사장님을 상대로 고소할 방침이랍니다. 일단 피소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니 협상을 하는게 최선 아닐까요.”

“고소당하면 불리하니 맞불을 놔야 해요. 농성하는 무리들을 업무방해죄로 거는게 어때요.”

김익수 전무가 계속 사장의 편을 들었다. 사장은 고문변호사를 쳐다봤다.

“변호사님 생각은 어때요.”

“이번 사안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일단 대화를 해 보는게 어떨지요.”

“그게 좋겠습니다. 마침 김택근 노조위원장이 사장님 면담 신청을 했으니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죠.”

부사장이 찬성의 뜻을 밝히자 사장은 버럭 화를 냈다.

“나는 그렇게는 못합니다. 노조 나부랭이에게 머리를 숙이느니 차라리 법의 심판을 받겠소. 김전무가 나서 노조에 전하세요. 당장 업무에 복귀하지 않으면 전원 의법 조치하겠다고. 알아듣겠소.”

임원들은 일제히 머리를 조아렸다.

 

* <칠궁>은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작가 소개>

금강(錦江·필명) 웹소설 작가. 시나리오 작가 겸 문화평론가

금강 작가  kntimes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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