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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 칠궁 - 3장 호랑가시나무의 전설 ①
  • 금강 작가
  • 승인 2019.02.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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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흘 뒤 경찰청 특수수사과. 김훈 반장과 박찬일은 의견 충돌을 빚고 있었다. 칠궁에서 채취한 지문조회 결과 전혀 의외의 인물이 나왔다.

박준 33세.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 현 청와대 경호실 소속 요원.

생각지도 못한 의외의 인물이었지만 박찬일은 수사를 반대했다.

“반장님, 대체 뭐가 수상쩍다고 그래요. 청와대 경호원이 청와대 주변을 오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물론 그래. 하지만 한 곳도 아니고 육상궁과 대빈궁 두 곳에서 모두 박준의 지문이 발견된 건 어떻게 생각해. 우연의 일치치곤 이상하지 않아?”

“글세요. 박준이 경호실 소속이 아니면 모를까. 거기서 근무를 하고 있는데 좀 지나친 추측 아닐까요.”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 알지. 내 생각엔 CCTV를 피해 범행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칠궁 지리와 시설물에 대해 잘 아는 인물이라고 봐. 일반사람들이 칠궁 시설에 대해 잘 알겠나. 청와대 근무자들이 잘 알겠나.”

“그럼 반장님은 청와대 내부의 소행이라고 의심하는 겁니까.”

“단정하는 것은 아냐.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를 해봐야 된다는 것이지.”

“하지만 반장님, 만의 하나 청와대 직원의 짓이라면, 목적이 뭡니까. 범행 동기가 뭐냐구요. 난 그게 납득이 가지 않아요.”

“암튼 예단하지 말고 경호실에 파견된 우리 청 요원 통해 박준을 조사해봐. 정확한 근무지가 어딘지 등등. 알겠나.”

“뭐 그러죠. 대신에 반장님이 틀렸으면 밥 사세요. 제 시간 뺏은 거니까.”

“알았어. 밥도 사고 술도 사지.”

그때 박찬일의 휴대폰 벨이 울렸다.

“오성그룹 비서실입니다. 박찬일 수사관이십니까.”

“예 박찬일입니다.”

“키톤양복 건에 대해 보고를 드렸더니 회장님께서 만나시겠답니다.”

“아 잘됐네요. 언제죠?”

“지금 오실 수 있습니까.”

“곧바로 가겠습니다. 장소는 어딥니까.”

“오성빌딩 27층으로 오세요. 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박찬일은 김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반장님, 오성인데 뭔 일인지 모르겠네요. 며칠 전엔 뻰찌를 놓더니. 회장이 보자는 데요.”

“그래? 오성 회장 정도면 장관도 만나기 힘든데 잘된 거지. 얼른 가자고.”

30분 뒤 김훈과 박찬일은 오성빌딩에 들어섰다. 신분증을 확인한 직원이 전용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유니폼 차림의 여직원이 상냥한 미소로 인사를 건넸다. 박찬일의 시선이 여직원의 다리에 닿았다. 날씬하게 쭉 뻗은 각선미는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 충분해보였다. 그것도 잠시, 엘리베이터는 논스톱으로 27층에 멎었다. 비서실장이 기다리고 있었던 듯 정중한 태도로 맞이했다.

“안으로 들어가시죠.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회장실에 들어선 순간, 김훈과 박찬일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높은 천장에 대궐 같이 넓은 방은 궁전을 방불케 했다. 지금까지 수사상 혹은 다른 목적으로 숱하게 사무실을 방문했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규모의 방은 처음이었다.

“어서 오세요. 내가 오성그룹 회장 이숙종 입니다.”

숙종이 먼저 말을 건넸고 김훈이 명함을 건넸다. 숙종은 자리를 권한 뒤 비서에게 차를 주문했다. 짧은 찰라, 김훈과 숙종의 눈이 마주쳤다. 숙종은 중후한 인상을 풍겼다. 반면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여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조사할게 있다고 들었는데 무슨 내용이지요.”

“회장님께선 이탈리아산 키톤양복을 구매하신 적이 있습니까.”

“아니오. 그런 적 없습니다.”

“소지한 적도 없습니까.”

숙종은 즉답을 피했다.

흠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군. 지금 이 자는 유도심문을 하고 있어. 잘못하면 내가 오히려 당하겠는 걸.

숙종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며 김훈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김훈이 다시 물었다.

“그럼 키톤 양복을 회장님 부인께서 구매한 사실은 알고 계십니까.”

“그 말은 비서실장으로부터 보고 받았소.”

“부인에게 구매 여부를 확인해봤습니까.”

“확인하지 않았소.”

숙종은 그 말을 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박찬일이 나섰다.

“아니 회장님, 그럼 왜 만나자고 했습니까. 확인해 주려고 오라고 한 것 아닙니까.”

숙종은 박찬일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봤다. 우직해보이나 다소 미련 곰탱이 같은 인상이었다.

“물어볼 것 있어 만나자고 했소.”

“말씀해보세요.”

“우리 집사람이 그 양복을 산 게 분명합니까..”

“사실입니다. 저희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구매한 날짜가 언젭니까.”

“석달 전이고, 부인 명의의 카드로 구입했습니다.”

“그럼 우리 집사람하고 양복건에 대해 통화해봤소.”

“비서하고 통화는 했지만 부인과 통화하지는 못했습니다.”

비서가 차를 가져왔다. 숙종은 김훈에게 고개를 돌리며 권했다.

“자 드세요. 중국 지사에서 구입한 특급 보이차입니다. 그런데 대관절 무슨 일로 그 양복에 대해 조사를 하는 건지 말해줄 수 있습니까.”

“그건 좀 곤란합니다. 보안 사안이라서요.”

“그래요? 윤곽이라도 알면 좋은데. 그래야 나도 협조할게 있음 할 것 아니겠소.”

“회장님께서 사회적 지위가 계신 분이니 정부시설물이라는 정도만 말씀드리죠.”

“정부시설물? 혹시 그게 칠궁하고 관련이 있어요?”

김훈은 이숙종회장의 표정을 살폈다. 눈치가 아주 빠른 것 같았다.

“현 시점에선 말씀드리기 어렵고요. 회장님께선 칠궁을 다녀가신 적이 있습니까.”

“없소. 그런데 우리 집사람이 구입한 거면 그쪽에 확인하지 왜 나한테 확인하는 겁니까.”

“솔직히 말씀드려 대통령 직계가족이라서 부담스러운 점이 있고요. 또 구매한 옷이 남성용이라서 여쭤보는 겁니다. 지금 갖고 계십니까.”

“내가 그 양복을 갖고 있지 않다면 어떻게 되죠.”

“그렇다면 회장님 부인이 누구에게 그 양복을 줬는지 별도로 조사를 할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집 사람 카드를 다른 사람이 사용했을 수도 있잖소.”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카드를 빌려줬거나 도난당한 경우인데 카드사에 확인 결과 도난 신고는 없었고 자필 서명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숙종은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소. 바빠서 이만……”

“아니 회장님. 질문이 더 남았는데요.”

박찬일이 나섰다.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내려는 기색에 불만이었다. 숙종은 무시한 채 인터폰으로 비서실장을 불렀다.

“두 분 잘 배웅해드려.”

김훈은 어쩔 수 없이 일어섰다. 문 밖으로 나가려는데 숙종이 다가왔다. 숙종이 김훈의 귓속에 대고 은밀히 제의했다.

“혹시 말이오. 그 양복을 갖고 있는 사람이 확인되면 인적사항을 알려주시오. 꼭.”

김훈이 뭐라고 대꾸하기 전에 회장실 문이 닫혔다. 비서실장이 재빨리 봉투를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회장님께서 특별히 전하라고 해서 드리는 겁니다. 어서 받으시죠.”

김훈과 박찬일이 뻘쭘해진 표정으로 쳐다봤다. 박찬일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아니 이거 돈 아닙니까. 경찰한테 이런 것 주면 뇌물공여죄로 처벌 받아요.”

비서실장이 씨익 웃으며 박찬일의 손에 봉투를 쥐어주었다.

“염려마십시오. 오성에서 드리는 건 안심해도 됩니다.”

“안심하라고? 이거 보세요 실장님. 경찰을 뭘로 보고 이러는 겁니까. 묻는 말에 대답이나 시원하게 하지 이런 걸로 무마하려 하다니 당신 회장 사람을 잘못 봤어.”

박찬일은 봉투를 홱 집어던지며 눈을 부라렸다. 비서실장은 당황했다. 김훈이 박찬일의 손을 조용히 잡아 이끌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며 김훈이 비서실장에게 말을 던졌다.

“회장님 제안은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또 연락드리죠.”

바깥으로 나오자 박찬일이 김훈에게 물었다.

“반장님, 이회장이 무슨 제안을 했는데요.”

“회장이 부인을 의심하는 눈치야. 양복 임자를 찾아달라더군.”

“그럼 우리더러 심부름센터 역할을 해달라는 겁니까. 그래서 봉투를 줬나. 지 마누라 불륜 뒷조사해달라고.”

“뭔가 있는데 숨기는 것 같아. 자넨 이제부터 청와대로 가. 박준이 아무래도 맘에 걸려.”

김훈 일행이 나가자 비서실장은 바닥에 떨어진 봉투를 집어들었다.

“돈 싫다는 경찰은 처음이군. 이게 얼만데 머저리 같이.”

실장은 봉투건을 보고하려고 회장실로 향했다. 그때 휴대폰 소리가 울렸다. 실장은 걸음을 멈추고 전화를 받았다.

“한남동이에요.”

“아 네 작은 사모님. 어제 퇴원하셨다면서요. 어떠세요 몸은.”

“많이 좋아졌어요. 실장님 오늘 시간 있으세요?”

“일과 후엔 괜찮습니다만 무슨 일로.”

“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서 그래요. 10시까지 한남동으로 와줬으면 해요.”

“갈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밤 10시면 너무 늦지 않을까요.”

실장은 승낙을 하면서도 찝찝했다. 야심한 밤에 여자의 집에, 그것도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세컨드와 단 둘이 만난다는 점이 썩 내키지 않았다.

“난 괜찮아요. 오늘은 회장님이 오시지 않는 날이라. 왜 곤란하세요? 바쁘시면 굳이 오지 않아도 돼요.”

“아 아닙니다. 시간에 맞춰 가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참 ,오늘 오시는 거 회장님께 보고하지 마세요. 아시겠죠?”

실장은 헷갈렸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연아와 관련된 건은 작은 것 하나라도 보고하라고 회장은 엄명을 내렸다. 이 일로 자칫 문책을 당하면 회장께 뭐라고 변명해야 하나. 그렇다고 회장에게 사전보고하기도 애매했다. 그랬다가 연아 눈 밖에 나면 그것도 골첫거리다.

실장은 적당히 대답한 다음 전화를 끊었다. 실장은 은근히 불안했다.

장연아. 이젠 함부로 대하기도 어렵군. 말단 직원이었던 어린 여자가 회장의 눈에 든 뒤 신분이 백팔십도로 바뀌다니. 그나저나 늦은 밤에 무슨 일로 날 보자는 거지? 외로워서 심심해서? 그래서 늙은 회장보다 젊은 나를 상대로 작업 걸려고? 그럴 리가 있나. 지금까지 날 남자로 쳐다본 적이 없는데. 게다가 병원에서 퇴원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데 설마. 아니야 뭔가 속셈이 있어. 저녁때도 아니고 하필 그 시간에 오라고 한 까닭이 있을 거야. 그 이유가 뭘까.

실장은 별의별 추측을 다했지만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실장은 노크를 한 뒤 회장실로 들어갔다. 회장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어떻게 되었나”

“받지 않았습니다. 경찰을 뭘로 보냐면서 외려 화를 내 멋쩍었습니다.”

“화를 낸 자가 박찬일이라는 잔가. 아니면 상관인가.”

“화를 낸 건 박찬일이지만 반장이라는 사람도 동조하는 눈치였습니다.”

“흠 내 돈을 받지 않을 정도면 제법 심지가 굳세군.”

“참, 반장이 회장님 제안을 생각해보겠다고 했습니다.”

“알았네. 연락이 오면 즉시 보고하게. 그리고 연아 말이야. 생각해봤는데 경호원을 붙이는게 좋겠어. 내가 매일 들여다볼 수도 없고 저번같이 혼자 있다가 변을 당하기라도 하면 그땐……. 무슨 뜻인지 알아듣겠나.”

“예 회장님.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가급적 남자보다 여성경호원이 좋겠어. 보고할 사안이 더 있나.”

실장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숙종의 시선을 느꼈다. 뜨끔했다.

“없습니다 회장님. 24시간 신변 보호가 가능한 여성 경호원을 구해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밤 10시 한남동 빌리지. 김실장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현관 앞에 섰다. 벨을 누르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어서 오세요 실장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김실장은 흠칫 놀랐다. 연아는 한복 차림이었다. 그런데 한복의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일반 한복이 아니라 드라마에서 본 궁중 여인의 옷차림이었다. 우아한데다 기품 어린 모습에 실장은 어리벙벙했다.

“왜 그렇게 놀라세요.”

“아 아닙니다 사모님. 한복을 입은 건 처음 봐서 저도 모르게 그만. 어디 다녀오신 모양이죠?”

“아니에요. 입고 싶어서 그냥 입어봤어요. 자 이리로 오세요.”

연아는 거실 테이블로 김실장을 안내했다. 테이블 위에는 갖가지 빛깔의 과자와 간식거리가 식탁에 놓여 있었다. 김실장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아니 이게 다 뭡니까. 처음 보는 것도 많은데요.”

“이건 임금님께서 드시던 용수염이라는 과자구요. 저건 매작과, 그리고 해삼 모양을 한 건 규아상이고, 여기 율란은 과일을 익혀 만든 거예요.”

“이걸 모두 저 먹으라고 만드신 겁니까.”

“어서 맛부터 보세요. 지금까지 회장님께도 한번 해드리지 못한 거예요.”

“이렇게 황송할 수가. 잘 먹겠습니다.”

김실장은 율란부터 한 입 베어 먹었다. 혀에 사르르 녹는 것이 일반 과자처럼 마냥 달지 않으면서도 깊은 맛이 느껴졌다.

“맛이 일품이군요. 이걸 손수 만드신 겁니까.”

“그럼요. 예전엔 즐겨 만들어 먹곤 했었는데 요즘은 간편한 걸 추구하는 시대라서 잘 안하는 편이에요. 많이 드세요.”

“고맙습니다 사모님. 그런데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실장님을 불렀어요. 몇 달 있음 원자 아기씨도 나올 거고 해서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들어보려고요.”

“네에? 원자 아기씨라니요.”

“회장님 핏줄 말이에요.”

“아 네. 회사는 그럭저럭 잘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 회장님 덕분이지요. 경영 능력이 워낙 뛰어나셔서.”

“실장님.”

연아가 말을 잘랐다. 실장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연아가 똑바로 쳐다봤다.

“솔직히 말해 주세요. 요즘 회사 사정이 좋지 않은 거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실장은 난처했다. 그동안 회사 일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묻지 않던 연아였다. 그런데 갑자기 물어보는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대답하기 불편한가요.”

실장은 연아의 말투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말투 뿐 아니라 표정과 분위기도 예전의 연아와 크게 달라 보였다. 당당하고 위엄이 깃든 얼굴. 뭔가 모를 카리스마가 온 몸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실장이 고개를 떨구며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실은 좀 어렵습니다. 사모님 건강도 좋지 않은데 괜한 걱정 끼칠까봐 말씀을 드리지 않은 것뿐입니다.”

“어디가 어떻게 어려운지 구체적으로 말씀해 보세요.”

“업황이 좋지 않습니다. 저희 오성은 건설과 조선 업종이 주력인데 수년 전부터 그쪽이 불황이라 애를 먹고 있습니다.”

“경영자가 무능해서 회사가 어려워진 건 아닙니까.”

그 말에 실장은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경영자라니요? 각 계열사마다 경영을 책임진 임원이 있습니다만 누구를 염두에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요.”

“최고 경영자 말예요. 월급쟁이 사장이 아니고 그룹을 총 책임진 경영자의 능력을 묻는 겁니다.”

실장의 안색이 변했다. 연아는 그런 그를 엄한 말투로 꾸짖었다.

“유능한 경영자는 미래를 내다볼 줄 알아야 해요. 이젠 아파트만 지어 팔아 재미보던 시대는 끝났어요. 땅덩어리는 좁고 인구도 저출산인데 건설업종이 뭐가 그리 부가가치가 있습니까. 과감하게 매각하고 새로운 사업에 도전해야지. 조선업종도 마찬가지예요. 중국의 저가 수주에 애를 먹고 있죠. 오성조선이 지금 어려운 건 미래를 못 읽고 현실에 안주한게 결정적인 패인 아닙니까. 중국이 산업스파이를 보내 오성의 기술을 빼내며 커갈 동안 경영자는 뭘 했습니까. 업황 타령이나 하고 그래서 되겠습니까.”

실장은 놀란 나머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의 이 젊은 여자가 내가 알던 연아가 맞나? 오성의 내부 사정을 족집게처럼 짚고 그 원인을 경영자의 능력과 연관시키다니.

“사 사모님 말씀이 맞습니다. 하지만 회장님께선 오늘의 오성을 키운 분입니다. 어떻게든 회복을 시킬 분이시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어요. 하지만 원자 아기씨가 성장할 때까지 오성이 건재할 거라는 보장이 있습니까. 지금처럼 경영했다간 10년도 못가 사라지지 않겠어요. 내가 굳이 이런 말을 하는 까닭은 장차 보위에 오를 세자가 걱정돼 하는 것이지 회장님 잘잘못을 들춰내려고 하는 말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실장님을 비롯한 회사 주요 임원들이 아부나 하지 말고 직언을 제대로 하라는 말이에요. 이해하시겠습니까.”

“명심하겠습니다 사모님.”

실장은 황급히 고개를 처박았다.

“한 가지 더 물어볼 말이 있어요. 큰댁 식구들 말예요. 회사에 얼마나 있습니까.”

“큰댁이라니요.”

“회장님 처가 식구들 말입니다.”

“몇 분이 계십니다. 가깝게는 큰댁 사모님 오빠가 부회장으로 근무하고 있고 동생 분은 오성건설 대표이사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사촌들도 사내 이사로 활동하고 있고요.”

“흥 그래서 회사가 이 지경이 된 것이군. 김실장,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듣고 실천에 옮기세요. 가장 먼저 부회장과 오성건설 대표이사를 물갈이 하세요.”

“그 그걸 제가 어떻게. 그런 일은 회장님만 가능합니다.”

“방법을 찾아보라는 말이에요. 뒷감당은 내가 할 테니.”

“하지만 사모님. 솔직히 자신이 없습니다. 부회장님은 불같은 성미라서 제가 나선 걸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오성이 누구 회사입니까. 회장님 것 아닙니까.“

“네 그렇긴 합니다만 큰댁 식구들도 단순 월급쟁이가 아니라 오너십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실장, 회사 오래 다니고 싶으면 내 말 똑바로 들으세요. 오성이 계속 존재해야 실장님의 자리도 있는 겁니다. 자고로 외척이 발호하면 집안이든 나라든 망쪼가 들기 마련인데 오성이 딱 그 짝이에요. 혁명을 한다 생각하고 거사를 일으키세요. 오성의 미래를 위해.”

오성의 미래를 위해? 연아의 말엔 강한 설득력이 있었다. 자신이 보기에도 회장 처남인 이덕신 부회장은 권위의식만 가득했지 경영 능력은 형편없었다. 그런데도 매년 거액의 연봉과 스톡옵션을 챙겨 회사 재정만 축냈다. 오성건설 이창신 사장도 회사는 적자인데 본인 연봉은 턱없이 올려 직원들로부터 빈축을 사고 있었다. 회장도 그 사정을 환하게 알고 있었지만 꾹 참는 눈치였다. 아마도 큰댁 식구 부친이 청와대를 떠나면 그땐 숙청의 회오리가 불 것이다. 오성의 미래를 위해선 그 시기가 앞당겨질수록 좋다. 그런데 참 귀신같지 않은가. 연아가 그 모든 것을 꿰뚫어본 듯 정곡을 찌르고 있으니.

실장은 새삼스럽게 연아를 쳐다봤다. 궁중 의상의 연아가 위풍당당한 자세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압도된 실장은 마침내 결단했다.

“분부를 받들겠습니다. 오성의 미래를 위해 방법을 꼭 찾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소 김실장. 자 이것 받으시오”

연아가 황금빛이 감도는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를 연 김실장의 입이 떡 벌어졌다. 용의 머리를 새긴 비녀가 신비로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모님 대체 이게 뭐죠?”

“용잠이오. 용잠은 왕비의 상징이죠. 조선시대 왕비들은 소례복으로 당의를 입고, 머리에는 용잠이나 봉황잠으로 댕기를 둘렀지요. 돈으로 살 수 없는 귀한 물건이니 잘 갖고 있다가 집안의 가보로 물려주세요.”

“고 고맙습니다 사모님. 이 은혜는 꼭 잊지 않겠습니다.”

빌리지 정문을 빠져나온 실장은 행여 놓칠세라 상자를 꽉 움켜쥐었다. 이어 결연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나아갔다.

 

이튿날 아침 경찰청 특수수사과.

막 통화를 끝낸 박찬일이 수화기를 쾅 내려놓았다.

“반장님, 드디어 찾았습니다.”

“박준이 이명신 전담이랍니다.”

박찬일은 흥분한 듯 따발총처럼 쏘아댔다. 김훈이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박준이 이명신을? 좀 자세히 설명해봐.”

“예. 우리 청에서 파견된 경호요원 말로는 박준이 청와대에서 내근하다가 작년부터 이명신 담당으로 바뀌었답니다.”

“흠 어쩐지…….”

“이상한 점이 또 있습니다. 최근 경호실에서 순환근무 차원에서 박준을 다른 부서로 이동 명령을 내렸다가 없던 일로 되었다고 하더군요. 혹시 이명신이 박준을 옆에 두려고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닐까요.”

김훈은 어느 정도 그림이 그려졌다. 하지만 결정적인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근데 말이야. 이명신과 박준이 가까운 사이라고 쳐. 박준이 칠궁에 왜 갔지? 대빈궁 기둥은 왜 그 지경이 됐지?”

“그거야 박준을 수사해보면 꼬투리가 나오지 않겠습니까.”

“박준을 수사하기도 만만찮아. 정식으로 소환조사를 하려면 경호실에 통보해야 하고, 경호실장에게까지 보고되겠지. 그 과정에서 박준이 알아채고 증거인멸을 하는 등 미리 대비할 수 있어. 더욱이 이명신까지 박준을 비호하고 나오면 사건 규명이 매우 어려워질 거야.”

“지문도 발견됐고, 유력한 증거물도 있는데 뭐가 문젭니까. 반장님, 정면돌파 하시죠.”

김훈은 즉답을 하지 않았다. 과장은 이명신에 대한 공식 수사를 반대했다. 박준도 마찬가지일 거였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해. 자네 이이제이 알지.”

“이이제이요? 어디서 들어본 말 같은데.”

“잠깐만, 전화를 해보자구.”

김훈은 책상에서 명함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 <칠궁>은 매주 금요일에 연재됩니다.

 

<작가 소개>

금강(錦江·필명) 웹소설 작가. 시나리오 작가 겸 문화평론가

금강 작가  kntimes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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