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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소금광산, 할슈타트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12.26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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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알프스 산자락과 70여 개의 호수를 품은 잘츠캄머구트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휴양지다. 빈과 잘츠부르크 사이에 위치한 이곳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으로도 나왔다. 그중 ‘잘츠캄머구트의 진주’로 꼽히는 할슈타트는 배낭 여행자들이 가장 동경하는 곳이다.

할슈타트 호수를 옆에 끼고 그림 같은 풍광이 펼치지는 작은 마을 뒤로 돌아서 케이블카를 타고 다흐슈타인 전망대에 오르면 세계 최초의 소금광산이 나온다. 여기에서는 광부 작업복을 입고 나무 미끄럼틀을 타고 광산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비롯해 소금 채취 장비 등이 전시된 박물관을 볼 수 있다.

요즘은 나트륨 섭취가 건강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소금은 인류의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백색의 황금’이었다. 세계적인 분자 요리가인 페랑 아드리아는 ‘요리를 변화시키는 단 하나의 물질’이라고 소금을 묘사했다. 소금은 쓴맛을 없애고 단맛을 강하게 부각시켜 음식의 전반적인 풍미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세계 최초 소금광산이 있는 할슈타트 마을의 전경. ⓒ ScienceTimes(이성규)

인간은 소금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다. 생리 대사 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물론 심장이 뛰지 않는다. 수렵 위주의 원시 시대에는 동물의 고기를 통해 소금을 섭취했다. 그러다 농경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류는 소금을 직접 생산해야 했다. 식물에는 칼륨이 풍부한 대신 나트륨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후 인류는 토지가 비옥하고 소금을 구하기 수월한 강 하구에 정착하기 시작했으며, 소금이 산출되는 지역은 무역의 중심지로 발전했다. 여러 단어에도 소금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급여를 뜻하는 ‘salary’를 비롯해 ‘soldier’ ‘salad’ 등은 모두 소금을 뜻하는 라틴어 ‘sal’에 어원을 두고 있는 것.

그런데 천일염 제조법이 개발되기 이전에는 암염을 통해 소금을 섭취해야 했다. 특히 유럽 지역은 바다에서 직접 소금을 채취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는 곳이 많아, 땅속에서 캐내는 암염을 이용했다. 아주 오래전 큰 호수나 바닷물이 고여 있던 지역이 지각변동 등으로 지형이 변하게 되면 소금이 단단하게 뭉쳐져 암염을 생산하는 소금광산이 된다.

할슈타트가 바로 그런 곳 중의 하나다. 빙하시대 이전 해수면 아래 잠겨 있던 이곳은 바닷물이 빠지면서 약 3억년 전에 소금층이 2㎞ 두께로 형성됐다. 중세시대 기록에 의하면 할슈타트라는 지명은 ‘소금’을 의미하는 서부 독일어 ‘hal’과 ‘정착지’를 의미하는 고대 독일어 ‘stat’에서 유래했다.

이곳에서는 선사시대인 기원전 제2천년기에 소금의 채취 활동이 시작됐다. 당시엔 천연 소금물을 용기에 담아 증발시키는 방식으로 소금을 생산했다. 지하에서의 소금 채굴은 구리 채굴에 적용된 수직갱 기술을 이용해 후기 청동기 말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정치적 사건 등에 의해 짧은 기간 동안 채굴 활동이 정지됐다가 기원전 8세기에 수평 갱도 및 갱내 채광 체계를 이용해 재개된 것으로 확인됐다. 할슈타트에서의 소금 채굴은 로마시대에도 계속되었으며 14세기 들어서는 더욱 활발해졌다.

당시 할슈타트의 일부 시민에게는 ‘잘츠페르티거’라는 특별한 지위가 부여됐다. 이 지위를 부여받은 이들은 각자에게 할당된 소금 건조 및 포장, 판매를 전담할 수 있었다. 이 지역에서 발달된 격조 있는 주택을 보면 그들의 지위가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소금을 증발시키는 용기를 만들거나 소금 광산의 갱도를 건설하고 지탱시키기 위해서는 재료로 사용할 엄청난 양의 목재가 필요했다. 따라서 오스트리아 관리들은 이 지역의 임업도 철저히 규제했다.

1846년에는 소금 산업 활동과 관련된 선사시대의 묘지가 발견됐다. 할슈타트 왕립 광산에서 감독으로 근무했던 게오르그 람자와가 마을 뒷산 중턱에서 켈트인들의 무덤을 찾아낸 것. 그 후 조사를 통해 2500기에 달하는 무덤과 수많은 유물들이 발굴됐다.

람자와가 발굴한 고대 켈트인들의 유적은 BC 800년경의 유적으로 판명됐다. 그런데 유적들을 분석한 결과 기존 학설과 달리 그때 이미 청동기 시대가 끝나고 철기시대로 접어든 상태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소금을 통해 얻은 경제적 풍요로움을 바탕으로 유럽 초기의 철기문화를 이룬 것이다. 이후 이 유적은 고고학자들에게 할슈타트 문화로 알려졌다.

발굴 작업 당시 청동기 시대 말기의 광산 갱도도 발견됐다. 전체 길이 약 3.7㎞, 총면적 3만㎢에 이를 정도로 광대한 갱도 속에서는 당시 켈트인들이 소금을 채취하면서 입었던 의복 및, 가죽띠, 도구 등이 나왔다.

19세기 초에 접어들면서 할슈타트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외부인들에게도 차츰 알려졌다. 이곳을 방문한 작가와 화가 등이 작품의 주제로 삼음에 따라 관광객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 이후 관광을 위한 숙박시설과 소금물 온천이 개발되면서 할슈타트는 주요 관광 휴양지로 인기를 얻게 되었다.

대신 19세기 초반까지 이곳에서 활발하던 소금 산업은 차츰 침체기에 빠졌다. 그러다 1965년에 소금 광산은 결국 폐쇄됐다. 그러나 계곡에서부터 관을 따라 인근 지역의 현대화된 공장으로 소금물을 보내는 방식으로 지금도 소금 생산이 이어지고 있다.

할슈타트는 소금 채굴 및 가공, 그와 관련된 목재 생산, 낙농업 증거 등 갖가지 요소를 적절히 가진 지역이다. 인류 역사상 중요한 역할을 한 자연의 힘과 인간의 과학적 관심이 함께 공존한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풍경과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할슈타트는 1997년에 ‘할슈타트-다흐슈타인 잘츠캄머구트 문화경관’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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