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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학자가 발굴한 '폼페이 최후의 순간'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12.2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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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6㎞쯤 떨어져 있는 베수비오 산은 지난 100년간 섬을 제외한 유럽 본토에서 화산 활동이 있었던 유일한 화산이다. 1944년 한 번 분출한 뒤 현재는 분출을 멈춘 상태지만, 여전히 증기를 뿜어내고 있는 활화산이다.

베수비오 산은 약 1만7000년 전 화산 활동을 시작한 이래 여러 차례 분출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사건이 바로 로마제국의 폼페이를 매몰시킨 AD 79년의 화산 활동이다.

폼페이는 남부 이탈리아에 많은 식민 도시를 건설한 그리스인들의 지배를 받기도 하다가 BC 89년 로마의 공격에 굴복함으로써 시민권이 부여된 로마의 정식 공동체 도시가 되었다. 로마의 영토로 편입된 이후 폼페이에는 대형 원형경기장, 포럼식 목욕탕, 극장 등의 석조 공공건물이 들어서고 사모 강의 물을 끌어오는 수로가 건설되면서 더욱 화려한 도시의 면모를 갖췄다.

폼페이 유적을 찾은 관광객들과 폼페이 거리의 전경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그런데 AD 79년 8월 24일 폼페이 인근의 베수비오 산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이상한 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며칠 전부터 이미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린 폼페이 시민 중에는 이미 다른 도시로 몸을 피한 이들도 많았다.

그날 정오로 접어들면서 베수비오 산의 구름이 더욱 커지면서 땅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곧 거대한 폭발로 이어졌다. 베수비오 산이 뿜어낸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바위 등의 분출물은 폼페이 전체를 흔적도 없이 삼키고 말았다.

그 후 폼페이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건 1592년이었다. 운하를 건설하는 공사 과정에서 우연히 매몰되어 있던 건물과 회화 작품 등이 발견되었던 것. 하지만 그때는 발굴 기술이 여의치 않아,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된 건 1748년부터였다.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하던 프랑스의 부르봉 왕조가 독점으로 발굴 사업을 벌여 귀중한 유물들을 프랑스 왕궁으로 가져가 버렸다.

그러다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발굴대장으로 임명된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의 조직적인 발굴 작업으로 폼페이 유적에 대한 본격적인 수리 및 보존이 이루어지게 됐다. 뒤덮인 화산재를 걷어내자 폼페이는 폭발 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자리 잡은 화려한 주택들은 물론 유흥가를 따라 줄지어 늘어선 술집과 여인숙들까지 당시 시민들의 일상이 그대로 담겨 있었던 것이다. 집에 들어가면 빵을 굽던 주방과 실내에 그려진 희미한 벽화도 볼 수 있었다. 또 화산 폭발 당시 폼페이는 선거철이 다가올 무렵이어서 벽에 새겨진 수많은 구호와 함께 상스러운 낙서까지 생생히 남아 있었다.

이처럼 폭발 당시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된 것은 바로 엄청난 두께로 쌓여 있던 화산재 덕분이다. 폼페이를 덮은 화산재는 장소에 따라 1~7m까지 쌓여 있었는데, 평균 두께만 해도 6m나 된다.

그런데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피오렐리 교수는 이상한 의문을 품게 됐다. 건물과 도로, 심지어 식탁 위의 음식을 담았던 그릇까지 그대로 놓여 있었지만, 사체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도대체 2만명 이상에 달했던 폼페이 시민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같은 미스터리는 피오렐리 교수가 발굴 현장의 흙더미 속에서 이상한 형태의 빈 공간들을 발견함으로써 풀렸다. 빈 공간에 석고를 부어서 굳힌 다음 주변의 흙을 긁어내자 폼페이 최후의 날에 죽어간 사람들의 형체가 그대로 드러났던 것이다.

아이를 꼭 안고 있는 엄마를 비롯해 서로 껴안고 있는 연인들, 그리고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골목길에서 엎드린 채로 발견된 의사까지 폼페이 시민들의 최후의 순간이 석고를 통해 재현됐다. 그날 폼페이에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은 당시 인구의 약 1/10인 2000여 명으로 추정한다.

일본 연구진이 지난 2002년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폼페이 유적이 화산 분화 후 매몰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30분이었다고 한다. 이전까지만 해도 폼페이 유적은 그날 오후 1시쯤 화산이 분화하면서 떨어져 내린 화산재와 돌더미에 의해 다음날 오전에 도시 전체가 매몰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일본 연구진은 폼페이에서 수거한 화산 분출물을 지질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단 30분 만에 매몰됐다는 결론을 내렸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 당시 폼페이와 함께 이탈리아 캄파니아 지방의 고대 도시 헤르쿨라네움도 매몰됐다. 경관이 좋아 부유한 로마인들이 머무는 휴양지였던 헤르쿨라네움 유적은 그 규모가 폼페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도시를 덮은 화산재의 특성 때문에 보존 상태는 더 좋은 편이다.

발굴을 통해 드러난 이 두 도시의 유적은 마치 특정 순간의 장면을 사진으로 찍은 듯 그 당시의 일상생활과 사회를 완벽하고 선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생생하고도 현장감 있는 유적이다. 특정한 과거 시점의 사회상 및 생활상에 대한 생생하면서도 완전한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을 인정받아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의 유적들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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