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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인문학(15)] 소교(小巧)②-고수는 미소로 적을 벤다
  • 김태관
  • 승인 2018.12.04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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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용병(以奇用兵)=군대는 기계(奇計)로써 움직인다. 나라는 정도(正道)로 다스리지만 군대를 부릴 때는 계책이 필요하다. 뻔히 보이는 대로 움직여서는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 울어야 할 때는 도리어 웃어라. 기상천외한 웃음소리는 칼보다 강하다.

 

‘소교(小巧)’는 말 그대로 ‘작은 기교’이지만 그 효과는 크다. 이는 마치 배의 키와도 같다. 항해하는 배는 키를 조금만 틀어도 전체의 항로가 달라진다. 작은 방향키 하나가 큰 배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교에 이른 고수는 우직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살짝살짝 방향을 틀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직선적 반응보다 곡선적 사고를 할 줄 아는 것이 소교의 경지다. 위기의 상황에서 칼을 뽑는 대신 웃음소리를 내는 것으로써 상대를 무너뜨린 북송(北宋)의 명장 조위(曹瑋)의 일화가 그것을 보여준다.

 

조위는 장군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용맹하고 지략도 뛰어났다. 열아홉 살 때 어명을 받고 서북쪽으로 나아가 국경을 지켰는데, 조위가 이끄는 군대는 군율이 매우 엄정하고 절도가 있었다. 그래서 상대인 서하(西夏) 군대가 감히 국경을 침범하여 노략질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문제는 늘 생각지 못한 곳에서 터지는 법이다.

 

어느 날 조위가 장기를 두고 있는데 초병이 급히 달려와 보고했다.

“방금 병사 수천 명이 탈영하여 서하로 투항했습니다.”

조위 군대의 엄한 군기를 견디다 못한 병사들이 집단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장수와 병졸들은 “큰일 났다” 싶어 얼굴이 다들 흙빛으로 변했다. 조위도 내심 가슴이 철렁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별일 아니다. 그들은 도망간 게 아니라 내가 시킨 것이다. 다 생각해 둔 게 있어 꾸민 일이다. 그러니 누구한테도 발설하면 안 된다.”

병사들은 안심했고, 조위는 태연하게 두던 장기를 마저 두었다.

비밀이라고 못 박은 소문은 더 빨리 퍼지는 법이다. 조위의 말은 금세 국경을 넘어 서하 쪽으로 흘러들어갔다. 서하의 군대에서는 집단투항해온 송나라 병사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용맹하기로 소문난 조위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니 꺼림칙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원래가 의심이 많은 서하 사람들은 조위가 쳐놓은 덫에 걸려들었다고 수군거렸다. 마침내 서하 군대는 투항한 송나라 병사들을 모두 죽여서 그 시체를 국경에다 갖다 두었다. 조위의 노림수대로 사태가 끝이 난 것이다.

 

조위는 일부러 꾸민 웃음소리로 수천 명이 탈영하는 위기상황을 거뜬히 해결했다. 작은 기교를 써서 손가락 하나 까딱 않고도 사태의 명암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고수는 웃음소리 하나로도 상대를 무너뜨리는 기술을 갖고 있다. 웃음 띤 얼굴로 적을 제압하는 조위의 기교 하나를 더 감상해 보자.

 

한번은 서하 군대가 국경을 침범하여 소란을 피우자 조위는 군대를 이끌고 나아가 그들을 무찔렀다. 적들은 허둥지둥 도망가느라고 소와 양을 그대로 놓고 갔다. 이때 조위가 언뜻 납득이 안 가는 명령을 내렸다. 노획한 소와 양을 다 끌고 가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한 것이다. 걸음이 느린 소와 양을 끌고 회군하려니 당연히 이동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군사들의 대열이 자꾸 흐트러지자 조위의 부하가 건의했다.

“장군, 소와 양들이 너무 느려서 행군하기가 힘이 듭니다. 이대로 가다가 만일 적들이 쫓아오면 제대로 싸울 수 없습니다. 저까짓 가축쯤이야 차라리 버리고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조위는 개의치 말고 천천히 가라며 더 여유롭게 군사들을 이끌었다.

 

이 소식이 적들의 귀에 들어갔다. 조위의 군대가 전리품 챙기기에 급급해 소와 양을 끌고 가느라고 대열이 무너졌다는 희소식이었다. 멀리 달아났던 서하 군대가 방향을 돌려 조위의 군대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이를 안 조위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행군속도를 더욱 늦췄다. 그리고 전투에 유리한 지형에 이르자 비로소 이동을 멈추고 대열을 정비했다. 얼마 뒤 서하 군대가 코앞에 이르자 조위는 전령을 보내어 말했다.

“멀리서 급히 달려왔으니 힘들 것이오. 옛말에 선례후병(先禮後兵)이라고 했소. 먼저 예의를 차린 뒤에 싸움을 하라는 뜻이오. 우리도 비겁하게 그 쪽이 지친 틈을 타서 공격하고 싶지는 않소. 충분히 휴식을 취한 뒤에 결전을 벌이는 것이 어떻겠소?”

안 그래도 지친 서하 군대는 귀가 솔깃해서 냉큼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가쁜 숨을 고르며 자리에 앉아 두 다리를 쭉 뻗고 편안히 휴식을 취했다. 한참 뒤 조위가 다시 전령을 보내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제 쉴 만큼 쉬었으면 결판을 냅시다!”

이에 양쪽 군대는 북을 두드려 병사들을 모아 싸움을 시작했다.

그런데 승부는 예상 밖으로 싱겁게 결말이 났다. 조위의 군대는 별로 접전도 벌이지 않은 채 호박에 침놓듯이 쉽게 적을 무찔렀다. 너무나 손쉬운 승리에 조위의 부하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적들은 쉬면서 재충전까지 했는데도 무기력하게 패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까닭인지요?”

조위가 빙긋이 웃으며 설명했다.

“만일 우리가 소와 양을 버리고 갔다면 적들이 굳이 기를 쓰고 우리 뒤를 쫓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기세등등한 적들을 맞아 바로 싸움을 벌이면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먼 길을 달려온 사람이 갑자기 쉬면 다리가 풀려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법이다. 또한 사람은 휴식을 맛보면 전의가 떨어지게 돼 있다. 나는 이때를 기다렸다가 싸움을 걸어 손쉽게 이긴 것이다.”

 

지친 적을 바로 상대하기보다 오히려 휴식을 취하게 한 조위의 작전은 기발하기 짝이 없다. 웃음 띤 얼굴로 조위는 상대의 기세를 슬쩍 꺾어 놓았다. 조위의 웃음은 아무도 눈치 못 챈 승리의 변화구였다. 이런 식으로 고수는 직선적인 대응보다 예상을 비켜가는 곡선적인 방식으로 승리를 낚아챈다.

 

<손자병법> 병세(兵勢)편을 보면 “무릇 전쟁에서는 정(正)으로 적과 맞서고, 기(奇)로 승리를 일군다(凡戰者 以正合 以奇勝)”라는 말이 나온다. 정(正)은 정규군이나 기본 전투역량, 정공법 등을 의미하고, 기(奇)는 특공대나 기병 등의 비정규군, 적의 의표를 찌르는 기습 전략 등을 의미한다. 적도 알고 나도 아는 방법으로 싸우는 것은 정(正)이고, 적은 모르고 나만 아는 방법으로 싸우는 것은 기(奇)이다. 한마디로 드러난 군사행동이 ‘정’이라면 은밀한 작전은 ‘기’인 셈이다.

 

야구로 치면 ‘정’은 직구, ‘기’는 변화구라고 할 수 있다. 직구만 던지는 투수는 아무리 강속구라도 결국 타자에게 얻어맞듯이, 전쟁의 장수도 정공법만이 아니라 변화구를 적절히 구사할 줄 알아야한다. 적과 대치할 때는 ‘정’으로 맞서지만, 승부를 결정짓고자 할 때는 ‘기’를 사용한다. 기와 정을 병용하는 것이 백전불태의 필승전략이다.

 

손자에 따르면 군대의 기본인 ‘정’을 제대로 갖추면 패배할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승리를 일구기 위해서는 상대가 예상하지 못한 ‘기’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은 상식을 초월하는 대승을 거둘 수 있다. 앞에서 조위 장군이 웃음소리 하나로 너끈히 위기를 극복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

 

노자는 <도덕경> 57장에서 “정도(正道)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기계(奇計)로써 군대를 움직이며, 무사(無事)로써 천하를 취한다(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고 이른다. 기(奇)는 기(技)로 통한다. 기계(奇計) 곧 기교를 부릴 줄 알아야 군대를 부리는 장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기교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직선적 대응을 슬쩍 비켜가는 곡선적 방식에 눈을 뜨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요즘 세상에서 ‘소교(小巧)’의 경지는 어떤 것인지, 가까운 사례 하나만 더 감상하고 글을 마치자.

 

교수에서 CEO로 변신한 A씨는 가는 곳마다 조직을 빠르게 장악하며 승승장구했다. 책상물림은 현실을 잘 몰라 기존의 멤버들에게 배척받기 십상이라는 세간의 인식과는 정반대였다. 비결을 궁금해 하는 친지에게 그가 귀띔해준 이야기는 이랬다.

“직장인들이 가장 목매는 것이 뭐지?”

“그야 승진이지.”

“그런데 누구나 다 승진하는 것은 아니잖아. 어느 조직이든 빠르게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번번이 물먹는 사람도 있지.”

“응, 영원한 1등은 없다지만 영원한 2등은 있는 것 같아.”

“바로 그거야. 나의 빠른 조직 장악 비결이.”

“엉? 무슨 뜻이야?”

“조직의 2등을 내 사람으로 만드는 거지.”

“좀 더 설명해줘.”

“어느 조직에 부임해 가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직원 설문조사야. 모두가 부러워하는 핵심부서 부서장에 누구를 발탁하면 좋은지 묻는 거야. 그러면 조직에서 일 잘하고 유능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의 순위가 매겨져.”

“어느 부서든 자타가 인정하는 승진 1순위가 있지.”

“나는 그 1순위가 아니라 2순위로 꼽힌 사람을 캡틴으로 발탁하곤 하지.”

“허, 순리를 거스르는 셈인데?”

“그래. 예상을 벗어난 발탁인사에 다들 깜짝 놀라지. 하지만 그 효과는 생각 이상이야.”

“어떤 효과가 있는데?”

“뜻밖에 발탁된 사람은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다가 승진했으니 팔짝 뛰며 감격하지. 그래서 내 말이라면 죽는 시늉도 할 정도로 나의 심복이 되지. 찬밥신세였기 때문에 조직의 문제점, 불평불만도 누구보다 잘 알고. 굳이 내가 말 안 해도 앞장서서 그런 부분을 다독여주지.”

“허, 그럴 법하네.”

“반면에 1순위였던 사람은 승진돼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아. 당연히 될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니까. 늘 선두주자였기 때문에 자신의 능력이 특별하다고 믿고 있어서 윗사람 눈치도 잘 안 봐. 밑에 두고 부리기가 쉽지 않지.”

“듣고 보니 정말 기발하네. 신의 한 수일세.”

 

승진 1순위를 승진시키는 것은 정당한 한 수다. 모두의 예상을 슬쩍 비틀어 2순위를 발탁하는 것은 기발한 변화구다. 도덕적으로 맞는지는 여기서는 논외다. 이러한 작은 기교, 곧 소교(小巧)의 효과는 생각보다 크다.

 

남들이 예상하는 대로 움직이는 것은 고수가 아니다. 고수는 울어야 할 때 울지 않고, 화내야 할 때 도리어 웃음을 지을 줄 안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기상천외한 웃음소리로 적을 무너뜨리는 것이 고수의 수법이다. 고수일수록 행마가 노골적이지 않고 은근하다.

 

그대의 인생 행마는 어떤가. 그대는 남들이 울 때 홀로 웃을 수 있는가. 가슴으로는 눈물을 흘려도 얼굴로는 웃음을 지을 수 있다면 그대는 이제 ‘소교’의 고수라고 하겠다.

 

<필자 소개>

김태관은 신문기자로 한 세월을 살았다. 지금은 책 읽고 글 쓰다가 가끔 산책을 하며 또 다른 세월을 보내고 있다. 편집부장과 문화부장, 논설위원, 스포츠지 편집국장 등이 그가 지나온 이정표들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자신이 들어 있지 않다고 그는 생각한다. 진짜 그가 어디에 있는지, 오늘의 그는 열심히 찾고 있는 중이다. 고전의 숲을 헤매며 앞서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더듬고 있는 것도 그런 작업 가운데 하나다. 그 과정에서 뒷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이름으로 된 책들을 펴내기도 했다. 인류의 스승 장자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찾아보는 <곁에 두고 읽는 장자>, 한비자를 통해 세상살이를 엿본 <왜 원하는 대로 살지 않는가>, 바둑으로 인간수업을 풀어본 <고수>, 그리스 신화를 쉽게 풀어 쓴 <곁에 두고 읽는 그리스 신화>, 한 시대를 풍미한 철학자들의 말 속에서 삶의 지혜를 찾는 <늙은 철학자가 전하는 마지막 말>과 <늙은 철학자의 마지막 수업> 등이 그것이다.

김태관  kntimes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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