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마니아 임하영의 '책으로 세상읽기'
92세, 마하티르 총리의 새 도전
  • 임하영
  • 승인 2018.11.23 15:15
  • 댓글 0

2018년 5월 10일, 마하티르 빈 모하마드가 92세의 나이로 말레이시아 총리에 취임했다. 가만, 마하티르? 뭔가 익숙한 이름 같지 않은가? 맞다. 1981년부터 2003년까지, 무려 22년간 말레이시아를 주름잡던 바로 그 마하티르다. 그의 복귀가 확정되자 수많은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물론 그 환호성이 단지 마하티르 개인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말레이시아 시민들은 1957년 영국에서 독립한 이래 이루어진 첫 정권교체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주체가 연로한 전임 총리라는 점이 외국인인 나에게는 조금 의아했지만 말이다.

사실 마하티르는 그동안 서구 언론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경쟁자에게 동성애 혐의를 씌워 투옥시키고, 노골적인 민족차별 정책을 펼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9‧11 테러를 기점으로 마하티르에 대한 평가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강력히 휘어잡고, 금융위기의 수렁에서 나라를 건져내고, 연 8%의 경제성장을 견인한 불세출의 지도자라는 시각이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마하티르는 이런 이분법적 시선으로 재단할 수 없는 다면적인 인물이다. 그에게는 가혹한 독재자의 모습과 유능한 지도자의 모습이 동시에 존재한다. 최근 등장한 몇몇 이웃들, 특히 필리핀의 두테르테와 스리랑카의 시리세나와 비교해 본다면 후자가 두드러지겠지만 말이다.

2011년에 출간된 『마하티르와의 대화』는 이런 마하티르의 복잡다단한 면모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우선 민주주의에 관해 그는 상당히 부정적인 견해를 밝힌다. “민주주의는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나라들과 전쟁을 벌이고 그들을 민주주의 국가로 바꾸어버리면(가령 이라크 전쟁처럼),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건 착각입니다.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기 전에 사람들이 먼저 민주주의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자유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습니다. 모두를 위한 절대적인 자유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슬람을 굳게 신봉하며, 터키의 아타튀르크나 이란의 팔레비 왕조와 달리 종교적 기반을 중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슬람 과격파는 철저히 배격한다. “저는 사람들에게 코란의 진정한 가르침을 따른다면, 그리고 예언자가 보여주신 전통을 지킨다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적을 만들기를 원치 않고, 다른 이들과 싸움을 바라지 않으며, 다만 스스로를 지키고자 합니다. 침략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그 유명한 ‘말레이 우대정책’에 관하여 그는 말을 아낀다. 대신 이 책의 저자 톰 플레이트가 설명을 이어간다. 마하티르는 말레이시아를 구성하는 세 갈래 민족(말레이계, 중국계, 인도계) 중 본토인에게만 대학 입학과 공무원 채용 시 특혜를 제공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말레이계 사람들이 소득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도록 해주며, 집권여당에게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선사해주었다. 이러한 정책이 없었다면 중국계와의 불평등은 심화되었을 것이고, 과격파 이슬람 정당이 세력을 키웠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실제로 마하티르는 중국계 국민들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정책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고, 정치적‧경제적으로 일정한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진정 그러했을까? 마하티르가 뿌린 씨앗은 후임자들에 이르러 뒤틀린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권력이 한곳으로 몰리며 총리는 부패했고, 집권여당은 게리맨더링을 통해 선거구를 불공정하게 획정했다. 인종 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정부는 가짜뉴스 법안을 만들어 비판세력의 입을 막았다.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을 향한 온갖 협박과 회유가 등장했다. 그리고 십 수 년이 지나 야당 지도자가 된 마하티르는 이 쓰라린 부메랑을 온 몸으로 마주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는 결국 승리했다. 마하티르가 돌아왔다. 그는 과연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을까? 인권 상황을 개선시키고, 말레이 우대 정책을 폐지하고, 권력을 분산시킬 수 있을까? 집권 200여일이 지난 지금, 아직 전면적인 개혁 조치는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지만 부디 61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희망연대(Pakatan Harapan)가 이슬람 국가들에게 새로운 모델을 제시할 수 있기를. 마하티르의 새로운, 어쩌면 인생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도전이 어떻게 막을 내릴지 궁금해진다. 

임하영  kntimes22@naver.com

<저작권자 © 코리아뉴스타임즈,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임하영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오늘의 뉴스
강릉선 KTX 사고 원인
강릉선 KTX 사고 원인 "선로전환기 설계 잘못"
삼바 상장 유지, '성급한 결정' 비판 잇따라
삼바 상장 유지, '성급한 결정' 비판 잇따라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