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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키니 환초의 비극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10.2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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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마셜제도는 하와이에서 남서쪽으로 약 2100㎞ 떨어진 지역에 1200개 이상의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인구 약 7만 명의 작은 섬나라다. 전 세계 스쿠버 다이버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명소이자 낙원 같은 휴양관광지인 비키니 환초도 바로 이 국가에 속해 있다.

환초란 산호초로 둘러싸인 섬의 중앙부가 지각 변동으로 인해 해수면 아래로 완전히 침강하면서 산호초만으로 이루어진 둥근 고리 모양의 산호섬을 말한다. 따라서 비키니 환초 가운데에는 길이 34㎞, 너비 17㎞에 이르는 초호(산호초로 둘러싸인 호수)가 있는데, 이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은 60m에 불과하다.

총 23회의 핵실험이 행해진 비키니 섬은 아직도 사람이 거주할 만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 ⓒ UNESCO / Author : Ron Van Oers

비키니 환초가 속해 있는 마셜제도는 19세기 말 독일 보호령이 됐다가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일본의 위임 통치를 받았다. 그 후 일본의 군사기지로 변한 이곳은 태평양전쟁 때 미국 해군에 의해 함락됐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인 1946년 7월 1일,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이 모두 비키니 섬에 집중됐다. 미국이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했던 것과 같은 급의 원자폭탄을 기자단이 보는 앞에서 투하하는 공개 핵실험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원자폭탄 두 발로 이미 일본을 항복시킨 미국이 비키니 섬에서 떠들썩하게 공개 핵실험을 진행한 데엔 이유가 있었다. 원자력 무기를 소지한 유일한 국가인 미국과 구소련이 국제무대에서 사사건건 충돌함으로써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는 냉전시대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 미국은 핵실험 재개를 결정했으며, 그 실험지로 선택한 곳이 바로 미군이 점하고 있던 마셜제도의 비키니 환초였다.

비키니 섬에서 공개 핵실험이 행해진 지 4일 후 파리의 한 수영장에서 자신이 새로 디자인한 파격적인 수영복을 선보이기로 한 프랑스의 루이 레아르는 핵폭탄에 맞먹는 디자인이라는 의미에서 그 수영복에 ‘비키니’라는 이름을 붙였다. 가슴과 국소 부위만 가린 이 파격적인 수영복으로 인해 무명의 아마추어 디자이너였던 루이 레아르는 패션계에서 유명인사가 되었다.

1949년 구소련도 핵무기를 개발하자 미국은 그보다 더 큰 위력을 지닌 수소폭탄의 개발에 성공했다. 그리고 1952년 10월 ‘아이비 마이크’라는 암호명으로 첫 수소폭탄 실험을 실시했다. 히로시마에 터트린 원자폭탄보다 무려 800배나 더 강한 위력을 지닌 이 수소폭탄의 실험 역시 비키니 섬에서 행해졌다.

1954년 3월에는 미국이 만든 가장 강력한 폭발력을 지닌 핵실험이 다시 비키니 환초에서 이루어졌다. ‘캐슬 브라보’로 명명된 그 수소폭탄은 15메가톤의 위력을 지녀 히로시마에 투하했던 원자폭탄보다 1000배 이상 강력했다.

얼마나 위력이 강했던지 비키니 섬의 환초 중 1개가 아예 증발했으며, 9000여 ㎞ 떨어진 미국 테네시주에까지 방사성 낙진이 날아갈 정도였다. 또한 당시 비키니 섬으로부터 약 130㎞ 떨어진 곳에서 참치 조업을 하던 일본 어선 제5후쿠류마로의 선원 23명 전원이 방사능 피폭을 당해 그중 한 명이 6개월 만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46년 7월부터 1958년 8월까지 미국은 비키니 섬에서 총 23차례의 핵실험을 행했다. 비키니 환초에서 서쪽으로 약 300㎞ 떨어진 에니웨톡 환초에서도 1958년까지 총 44차례의 핵실험을 행함으로써 마셜제도에서만 총 67회의 핵실험이 시행됐다.

미국은 핵실험을 하기 위해 1946년 3월 비키니 환초 거주민 1000여 명을 근처의 롱겔라프 섬으로 이주시켰다. 당시 미국은 주민들에게 핵실험이 끝나면 곧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으나, 이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1970년대 초 롱겔라프 섬에 거주하던 주민들은 비키니 섬으로 되돌아가도 괜찮다는 허가를 받았다. 하지만 귀환한 주민들의 몸에서 세슘이라는 방사능 물질이 위험할 정도로 증가해 1978년에 그들은 다시 이주해야 했다.

지난 2015년 콜롬비아 대학 연구팀이 마셜제도의 방사선 수치를 조사한 결과, 비키니 환초는 아직도 사람이 거주할 만한 조건이 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핵실험 후 철저한 정화작업을 실시했던 에니웨톡 환초는 감마선 수치가 7.6밀리렘, 롱겔라프는 19.8밀리렘으로 확인돼 안전기준보다 낮았으나, 비키니 환초는 184밀리렘으로 확인된 것.

아름다운 풍경과 외딴 지정학적 조건으로 인해 낙원처럼 여겨졌던 비키니 환초가 냉전시대 탄생의 유형적인 증거인 핵실험지가 되어 지금까지도 방사능 노출 지역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비키니 환초에서 이루어진 핵실험은 강한 반핵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마셜제도 주민의 방사능 노출을 우려하는 국제적인 여론이 제기됐으며, 아인슈타인은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핵실험에 반대하는 항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처럼 냉전시대의 시작과 핵 군비 경쟁의 상징이 된 비키니 환초는 201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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