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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의 신 네트워크 '역참망'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10.1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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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역사상 가장 광활한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는 과학기술자의 중용이 꼽힌다. 당시 그의 군대는 한 지역을 점령한 후 반드시 현지 기술자들을 포로로 붙잡아서 본국으로 데려갔다. 또한 일반 포로 중에서도 일일이 기술자를 추려내는가 하면, 자진해서 투항하는 기술자는 특별대우를 하는 정책을 폈다.

중국 네이멍구 대학 몽골사학 전문가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칭기즈칸은 1214년 사상 최초로 500명의 포병부대를 편성해 금나라와 서하에서 노획한 대석포로 무장시켰다. 이처럼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로 무장한 강력한 포병부대와 공병부대 덕분에 그는 아무리 견고한 도시 성곽도 쉽사리 점령할 수 있었다.

그가 정복지의 사이마다 설치한 조밀한 역참도 거대한 제국을 다스린 과학적인 비결 중 하나다. 그는 새로운 정복지가 생겨날 때마다 중간 중간에 역과 파발마를 두어 정보와 물류를 신속하게 유통시켰다. 한반도에서 헝가리까지 사실상 아시아 전 지역을 차지했던 칭기즈칸 제국의 광활한 영토는 이 같은 역참망에 의해 하나로 묶여졌다.

동양과 서양의 모든 문화를 흡수한 오르콘 계곡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 가치의 교환이 일어났던 장소다. ⓒ flickr.com(Scott Presly)

정보의 전달은 출발지와 최종 수신지만 정해졌으며, 그것이 전달되는 중간 코스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어떤 구간이 전쟁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막혔을지라도 그곳을 우회하는 최단 경로를 따라 정보가 유연하게 전해질 수 있었다. 당시의 역참제를 흔히 현대의 초고속 네트워크망으로 비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같이 촘촘한 역참망을 통해 매일 각지로부터 식량을 비롯한 지역 특산물이 모여드는 곳이 있었다. 바로 몽골제국의 첫 수도였던 카라코룸이다. 몽골의 현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남서쪽으로 300여㎞ 떨어진 곳에 오르콘 강이 흐른다.

몽골 북부를 흘러 바이칼 호로 이어지는 이 강의 계곡은 몽골에서 아주 중요한 장소다. 몽골의 유목민들과 동물들에게 아주 귀한 물을 공급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몽골의 영토는 90% 이상이 목초지이거나 사막이며, 평균 고도는 1500m에 달하니 물이 귀할 수밖에 없다.

몽골제국 때 세계 곳곳에서 상품과 상인들이 모여들었던 카라코룸은 오르콘 강 상류의 우안, 캉가이 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카라코룸은 몽골어로 ‘검은 자갈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지금은 현지 발음으로 ‘하르호린’이라 불린다.

카라코룸을 수도로 정한 이는 칭기즈칸의 둘째 아들이자 제2대 대칸인 우구데이로 알려져 있다. 우구데이는 1235년에 이곳을 수도로 선포하고 1년 만에 만년궁이란 궁전을 지었다. 그러나 칭기즈칸의 손자인 쿠빌라이가 국호를 원나라로 바꿈에 따라 수도도 카라코룸에서 대도(현 베이징)로 옮겨졌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오르콘 계곡 문화 경관’은 면적이 약 1220㎢로서, 오르콘 강 양안의 넓은 목초지다. 6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수많은 고고 유적이 남아 있는 이곳에는 칭기즈칸 제국의 수도였던 카라코룸을 비롯해 위구르 제국의 수도인 카르발가스도 위치해 있었다.

아시아는 물론 유럽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회에 영향을 미친 오르콘 계곡은 광대한 교역망을 개발하고 거대한 행정․상업․군사․종교 중심지를 만든 유목 문화가 얼마나 튼튼하고 오래 지속되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동양과 서양의 모든 문화를 흡수한 이곳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류 가치의 교환이 일어났던 장소다.

제국이 약 2세기 동안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과 이란, 러시아 등의 이질적인 문화를 다양하게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민족이나 종교, 문화, 언어, 신분 등의 차별을 두지 않고 오로지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제국을 구축했다. 수도 카라코룸에 지어졌던 불교 및 이슬람 사원, 교회 등을 통해 제국이 지향했던 다원주의와 통합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에 의해 다시 몽골 초원으로 쫓겨난 몽골은 20세기 초 결국 주변국에 의해 분단되었다. 몽골의 남부인 내몽골(현 중국의 네이멍구)은 중국에 예속되었으며, 외몽골(현 몽골)은 1921년까지 사실상 러시아의 통치를 받았다. 그러다 1924년 러시아의 통제 아래 몽골인민공화국이 수립됐으며, 1946년 독립국가가 되었다.

현재 중국의 영토인 내몽골 인구는 약 400만명으로서, 약 280만명인 몽골보다 더 많은 몽골인들이 살고 있다. 이처럼 작은 인구로 그 옛날 몽골은 어떻게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까. 비밀은 당시의 기후변화에 숨어 있다.

서기 900년부터 1200년 사이에 전 세계적으로 따뜻한 기후가 지속된 탓에 고위도 지방에 살던 몽골족의 인구는 급증했다. 빙하가 녹아 물이 풍성해짐에 따라 유목과 농업이 활기를 띠었기 때문.

그러다 1200년 이후 온난기가 끝나고 소빙하기가 시작됨에 따라 급격히 불어난 몽골족은 먹고살 방법이 없었다. 이때 몽골을 통일한 칭기즈칸은 타개책으로 중앙아시아와 따뜻한 중국 등지로의 진출을 단행했던 것이다.

오르콘 계곡의 발전을 지탱한 것은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전해져온 몽골의 강한 유목문화였다. 이 문화는 몽골 사회의 중심 역할을 했는데, 몽골의 유목민들은 지금도 오르콘 계곡에서 가축을 방목하고 있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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