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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멀리 나는 나비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10.12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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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왕나비는 세계에서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곤충이다. 사진은 멕시코의 월동지에 빽빽히 앉아 있는 왕나비의 모습. ⓒ UNESCO / Author : Allen Putney

미국에서는 결혼식 때 왕나비를 풀어서 날리는 이벤트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왕나비를 잡아서 원하는 소망을 속삭인 후 놓아주면 신에게 날아가서 전해준다는 인디언의 전설 덕분이었다. 즉, 왕나비가 새로운 출발을 하는 이들이 꿈꾸는 희망의 전령자 역할을 하리라고 믿은 것이다.

많은 나비 중에서도 특히 왕나비(Monarch Butterfly)가 이 같은 전설의 주인공이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먼 거리를 이동하는 거의 유일한 곤충이기 때문이다. 북미 지역의 왕나비는 록키산맥을 기준으로 서쪽에 사는 개체군과 동쪽에 사는 개체군으로 구분된다.

추운 겨울이 되면 이들은 긴 여행에 나서게 되는데 향하는 목적지가 각각 다르다. 서쪽 개체군의 경우 캘리포니아 연안으로 가지만, 동쪽 개체군은 멕시코의 중부 산악지역까지 날아가서 겨울을 난다.

캐나다와 미국의 국경 지대에 서식하는 왕나비의 경우 북미를 횡단해서 멕시코까지 날아가 다음해 봄에 다시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것을 합치면 이들의 이동거리는 무려 5000㎞에 달한다. 손으로 살짝 만져도 찢어질 듯한 가녀린 날개로 그처럼 먼 거리를 이동한다니 좀처럼 믿기 힘든 사실이다.

대를 이은 그들의 정확한 비행 능력은 더욱 놀랍다. 나비가 성충으로 사는 기간은 대략 4주~8주다. 겨울 동안 남쪽에서 동면기를 갖는 나비의 경우 7개월에서 최대 9개월까지 살 수 있다. 그렇게 계산하면 왕나비들이 늦가을에 처음 이동을 시작해서 원래 서식지인 캐나다 남부로 돌아오는 다음해 초여름이 되면 이미 3세대 내지 4세대를 거친 개체들이다.

그럼에도 모든 왕나비들은 자신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을 정확한 이동 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더구나 자기가 떠났던 서식처의 바로 그 나무까지 정확히 찾아간다. 왕나비들이 어떻게 2대 내지 3대의 조상들이 살았던 장소를 찾아오는지는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지난해 워싱턴대학을 중심으로 한 공동연구진이 ‘셀 리포트’ 지에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왕나비들이 길을 찾아내는 비밀은 태양의 위치에 숨어 있다. 눈에 있는 방위각 뉴런으로 태양의 위치를 감시하면서 더듬이에 있는 시계 뉴런을 이용해 시간을 알아내는 방법으로 비행하는 방향과 위치를 알아낸다는 주장이다. 그밖에도 자기장을 이용한다거나 화학물질을 분비해 냄새를 맡아 길을 찾는다는 이론이 제기된 바 있다.

이처럼 왕나비의 정확한 이동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세우겠다고 공약한 멕시코 국경 장벽이 왕나비의 이동에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무려 3000㎞에 달하는 장벽이 강의 지류 등에 변화를 줘서 왕나비가 내비게이션으로 삼는 자연 표시물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작은 몸체로 장거리를 이동하는 왕나비의 날개에 숨은 공기역학적 특성을 항공기에 적용하려는 시도도 있다. 미국 앨라배마 대의 항공우주공학과 에이미 랭 박사는 왕나비 날개의 표면을 덮고 있는 미세한 비늘에 주목하고 있는 과학자 중 한 명이다. 특별하게 배열된 비늘이 항력을 줄이는 대신 추력과 양력을 증가시킬 것이라는 추측 때문이다.

실제로 랭 박사는 솔질로 날개의 비늘을 털어낸 왕나비와 보통 왕나비를 실험시설에서 날리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동일한 비행을 하기 위해서는 솔질로 비늘을 털어낸 왕나비가 날개를 약 10% 정도 더 펄럭거려야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비행 중에 소비되는 에너지를 그만큼 줄일 수 있다는 것은 다른 곤충들보다 엄청나게 먼 거리를 이동하는 왕나비에게는 매우 큰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이 같은 왕나비의 모델링된 비늘을 응용할 경우 군사용 정찰 및 감시 목적으로 사용되는 초소형 드론 등의 공기 유동을 크게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록키산맥 동쪽의 왕나비 개체군이 월동을 하기 위해 찾는 곳은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북서쪽으로 100㎞ 떨어진 지역의 오야멜전나무 숲 14곳이다. 덕분에 이 지역의 오야멜전나무는 겨울마다 날아드는 수천만 마리 이상의 왕나비들로 인해 나뭇가지가 휘어질 정도다. 또 왕나비들이 갑자기 하늘로 날아오르면 퍼덕이는 날개짓으로 빗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 지난겨울엔 멕시코에서 월동한 왕나비의 개체 수가 그 전해에 비해 27%나 감소했다. 이는 지난해 3월에 발생한 태풍으로 월동지의 숲이 피해를 보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처럼 최근 들어 잦아지는 한파와 집중호우, 가뭄, 겨울 태풍 등의 이상 기후 현상은 왕나비의 보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또한 왕나비의 애벌레가 서식하는 풀인 박주가리가 해로운 잡초로 여겨져 마구 뽑히는 것과 더불어 불법 벌목으로 인해 오야멜전나무 숲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멕시코 정부는 왕나비가 월동하는 지역 중 160㎢를 ‘왕나비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이 보전지역은 2000년에 563㎢로 확대되었으며, 2008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하지만 왕나비는 장거리를 이주하는 곤충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가장 극적인 곤충 이주 현상을 계속 볼 수 있기 위해서는 왕나비들이 거쳐 가는 이동 경로에 있는 미국과 캐나다 등의 국가들도 왕나비를 보전하는 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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