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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마니아 임하영의 '책으로 세상읽기'
덩샤오핑의 도광양회와 시진핑의 일대일로
  • 임하영
  • 승인 2018.09.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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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 두 글자를 볼 때면 왠지 모를 막막함이 밀려온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닌 14억 인민, 베일에 싸인 권력구조, 그리고 복잡다단한 정책결정과정까지. 꼬불꼬불한 초행길을 아무 이정표 없이 걷는 느낌이 이럴까. 언론도 미로에 빠졌는지 심도 있는 분석을 찾기가 어렵다. 한창 한중관계가 좋을 때는 수출 전망을 내놓으며 열을 올리지만, 사드 보복을 얻어맞고 경제가 휘청거리면 돌연 천하의 못 믿을 국가로 돌변한다. 양국의 물리적 거리는 가깝지만 심리적 거리는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먼 듯하다.

조금의 실마리를 잡아보려 갈팡질팡하다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을 만났다. 그리고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외쳤다. 아하! 그만큼 중국 정치를 다룬 다른 책들보다 쉽고 재미있었다.

저자는 현대 중국이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추적하며 먼저 덩샤오핑이라는 인물에 주목한다. 1978년, 그가 권력의 정점에 올랐을 때 중국의 상황은 암울하기 그지없었다. 대약진운동으로 3,000만 명이 아사했고, 문화대혁명으로 사회가 깊이 분열되었다. 공산당에 대한 인민들의 신뢰는 걷잡을 수 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위기에 처한 국가와 당을 수습하고자 덩샤오핑은 세 가지 키워드로 대표되는 정책을 추진한다.

첫 번째인 선부론(先富論)은 ‘먼저 부자가 되라’는 뜻으로, 개혁개방정책을 상징한다. 그 핵심은 연안 도시들을 경제특구로 지정해 자원을 집중시키는 불균등발전 전략이었다. 산업을 일으키려면 미국과 일본의 자금을 끌어와야 했기에, 덩샤오핑은 도광양회(韜光養晦)로 대표되는 대외정책을 추진했다. 도광양회란 ‘칼날의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른다’는 뜻으로, 기존의 세계질서에 편입되어 조용히 힘을 기르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미국과 원만한 관계를 다져가며 비로소 중국은 초고속성장에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집단지도체제(集團指導體制)가 도입되었다. 문화대혁명처럼 절대 권력을 가진 지도자가 폭주하거나, 천안문 사태처럼 당이 분열되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중국은 한 명의 최고지도자가 아닌, 7인으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들이 공동으로 통치했다.

덩샤오핑의 삼두마차는 장쩌민 시대까지만 해도 순조롭게 굴러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2003년 후진타오의 집권 이후 여기저기서 잡음이 터지기 시작한다. 고위관료의 부정부패는 상상을 뛰어넘는 규모에 이르렀고, 연안과 내륙의 불평등 역시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부실시공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지진에 무너져 내렸고, 환경 문제도 점차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류샤오보와 같은 지식인들은 이러한 상황을 비판하며 공산당에 책임을 돌렸다. 사실 여기까지는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대만과 한국 같은 경우도 초기에는 국가의 영향력이 막강했지만, 도시화가 진행되고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권력이 분산되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민주화 이행과정’을 겪은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이와는 반대로 점점 당과 주석의 권한이 강력해지고 있다. 어쩌다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저자는 중국 공산당에 두 가지 노선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연원은 개혁개방 초기에 다다른다. 덩샤오핑으로 대표되는 개혁파는 정부의 가격통제를 해제하고 경제특구를 설립하는 등 성장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천윈을 중심으로 하는 보수파는 이러한 드라이브에 제동을 걸고자 했다. 경기 과열과 인플레이션은 긴축 정책으로 다스려야 하고, 특히 정치 자유화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입장이었다. 개혁파가 1980년대의 격렬한 학생 시위로 곤욕을 치르며 보수파가 승리의 미소를 짓는 듯 보였다.

앞서 지명한 개혁파 후계자들이 연거푸 낙마하자 덩샤오핑은 장쩌민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장쩌민과 그의 측근 그룹인 상하이방(上海帮)은 경제적으로는 자유화를 추진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공산당의 절대 권력을 유지하는 중도 전략을 펼쳤다. 건국 원로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태자당(太子黨) 역시 이에 만족하며 적절한 과실을 누렸다. 그러나 후진타오의 등장과 함께 공청단(共青团)이 새로운 권력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중국공산주의청년단에서 활동한 이들은 경제 개혁과 더불어 정치 자유화를 지지했다. 또한 무작정 개혁개방을 추진하기보다 불평등과 환경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집단지도체제 하에 후진타오는 제대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개혁파와 보수파가 서로 발목을 잡으며 이도저도 아닌 정책이 탄생했고, 군부 및 지방권력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대외적으로도 금융위기가 터지며 개혁파의 입지가 약화되었다. 미국이 지닌 소프트파워의 권위가 크게 실추된 것이다.

이런 혼란한 상황 가운데 와일드카드로 등장한 이가 있었으니, 그 이름은 바로 보시라이다. 충칭 시위원회 서기였던 보시라이는 당의 통제력을 더욱 강화하여 개혁개방의 부작용을 해소하겠다는 제3의 길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의 정책을 마오쩌둥과 공산주의 사상에 빗대어 적극 홍보했고,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성장률을 높이는데 치중했다. 또한 이미 시진핑으로 확정된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를 놓고 막판 뒤집기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는 공청단의 개혁파나 태자당, 상하이방의 보수파 모두에게 심대한 도전으로 간주되었다. 결국 보시라이는 실각하고 만다.

아슬아슬한 위기를 겪은 지도층 내부에는 강력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합의가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기존의 집단지도체제에서는 부패 문제를 도저히 건드릴 수 없었고, 강력한 개혁조치도 불가능했다. 2013년 새롭게 지도자로 등극한 시진핑에게는 당, 정부, 군대에 걸쳐 확실한 통제력과 주도권이 보장되었다. 개혁파의 아젠다인 환경 보호와 빈곤 퇴치, 지역 균형 발전과 같은 개혁을 추진하되, 강력한 국가와 중앙당을 중심으로 하는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중국에 민주주의가 정착하지 못한 이유, 또한 시진핑 개인의 권력이 강화된 이유는 이렇듯 파벌 간의 갈등과 합의, 그리고 몇몇 우연적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그렇다면 덩샤오핑의 선부론과 집단지도체제가 수명을 다한 지금, 도광양회는 어떤 운명을 맞았을까? 이 문제는 중국이 처한 두 가지 딜레마와 깊이 맞닿아 있다. 첫째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의 말라카해협을 둘러싼 문제다. 서쪽에서 오는 에너지, 식량 등 모든 물동량이 통과하는 이 비좁은 수로를 미국이 틀어막는다면 중국은 질식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별로 가능성이 없었지만,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상한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두 번째는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활동하는 문제다. 만약 중국이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것처럼 타국의 반인도주의적 행위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면, 중국인들은 자국민들에게도 역시 동일한 대우를 요구할 것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공산당 정권 자체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중국은 도광양회를 폐기하고 적극적인 대외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일대일로의 육상 실크로드는 신장에서 시작되어 중앙아시아, 이란과 캅카스, 러시아를 통과해 유럽까지 이어진다. 이 루트를 통해 중국은 우선 에너지를 수입하고, 교통과 물류 인프라도 함께 확대하는 계획을 세웠다. 해상에서도 공급로를 확보하기 위해 파키스탄과 미얀마와 협력하며, 인도양 저편의 아프리카 국가들에게는 산업화 모델을 수출하며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일대일로는 자금은 남아도는데 투자처가 없는 중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지정학적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는 초거대 사업인 셈이다.

이제 막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진핑 정부의 대내외 정책은 집권 2기가 시작됨에 따라 구체화될 전망이다. 공산당과 국가주석의 권한은 더욱 막강해질 것이고, 자국의 이익이 걸린 일이라면 국제 문제에도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다.

몇 가지 생각들이 머리를 맴돈다. 과연 10년 후의 중국은 어떤 모습일까? 시진핑의 중국몽은 실현 가능할까? 중국은 미국을 넘어 세계의 1인자가 될 수 있을까?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대한민국은 양자택일의 상황에 맞닥뜨릴 경우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갈 길이 먼데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거대한 코끼리인 중국을 만져본 장님들 사이에 활발한 대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책을 썼다고 했다. 나 역시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바라고 생각한다.

임하영  kntimes2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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