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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치 천문대, 343년의 역사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07.04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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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영국 런던 외곽에 있는 그리니치는 예로부터 교통의 요충지로서 템스강의 하항(河港)으로 발전했다. 그리니치 공원의 외곽 언덕에 자리 잡은 왕립천문대의 안뜰에 가면 관광객들이 하나의 선을 중심으로 양쪽 발을 걸쳐놓고 사진 촬영을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선이 바로 지구를 동경과 서경으로 나누는 경도 0도의 표시선인 본초자오선이다. 즉, 관광객의 한쪽 발은 서반구, 다른 한쪽 발은 동반구에 위치하는 셈이다. 언덕에 자리 잡은 덕분에 템스강을 오가는 선박들에서도 훤히 올려다 보이는 이 건물의 지붕 위 첨탑에는 빨간색의 보시구(報時球, time-ball)가 달려 있다.

그리니치 왕립천문대의 안뜰에 그어져 있는 본초자오선. ⓒ GNU Free Documentation License

이 보시구는 매일 12시 55분이 되면 기둥을 따라 절반쯤 올라가서 3분간 머무른다. 그러다 꼭대기로 올라가서 2분간 더 정지한 다음 정확히 오후 1시가 되면 아래로 떨어진다. 태양이 본초자오선의 바로 위에 있는 순간이 정오이며, 천문대 직원들이 정확히 그것을 관측해야 하므로 보시구가 시각을 알리는 의식은 오후 1시에 진행되고 있다.

그리니치 자오선이 국제협정에 의해 지구 경도의 원점으로 확정된 것은 1884년이다. 그전만 해도 지구상에는 지역마다 수많은 자오선과 그것을 기준으로 한 시간이 있었다. 태양이 머리 바로 위에 위치해 그림자가 없는 시간을 정오로 정해 자기 지역의 기준 시간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정오가 되면 도시나 항구의 가장 높은 곳에 달려 있던 보시구가 떨어져 시간을 알려주었고 사람들은 그 시간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런데 각 지역마다 정오의 기준이 달라서, 보시구가 정오를 알리는 소리는 지구 자전에 따라 마치 돌림노래처럼 울려 퍼지곤 했다.

지구의 자전 속도는 분당 약 20㎞인데, 서쪽으로 해를 따라 1분에 20㎞씩 움직일 경우 매순간 정오였던 셈이다. 그래도 당시는 인간의 이동수단 속도가 워낙 느려서 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철도가 확산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철도회사마다 각기 다른 지역의 시간을 기준으로 열차를 운행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대륙횡단철도가 개설된 이후 미국의 A라는 철도회사는 필라델피아 시간을 기준으로 열차를 운행하고, B 철도회사는 시카고 시간을 기준으로 열차를 운행했다.

그렇게 되면 각지에서 오는 열차를 갈아타야 하는 역에서는 그곳 시간을 기준으로 A철도회사의 시각표, B회사의 시각표를 일일이 꿰맞추어 자신의 열차 시각을 계산해야 했다. 이 문제는 승객의 불편뿐 아니라 만약 시간이 뒤엉킬 경우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했다.

캐나다 국유철도의 주임 기사로 활동한 샌포드 플레밍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장섰다. 그는 지역 시간을 폐지하고 경도를 기준으로 삼은 표준시간을 도입하자는 논문을 최초로 발표하고, 1879년에는 ‘본초자오선의 선택’이라는 연구서를 통해 표준시를 제안했다.

그의 노력 덕분에 1884년 10월 워싱턴DC에서 전 세계 정오의 기준선이 되는 본초자오선을 설정하기 위한 회의가 개최됐다. 19개국이 참가한 이 회의에서 영국의 그리니치 표준시가 본초자오선으로 채택됐다. 파리 자오선을 세계기준으로 삼으려는 프랑스의 반발이 심했으나, 당시 영국의 막강한 국력과 과학기술을 전 세계가 인정했던 것이다.

그리니치에 왕립천문대가 건축된 것은 1675년이다. 건축가 크리스토퍼 렌과 과학자 로버트 후크가 합심해 세운 이 천문대의 옛 이름은 그리니치 천문대였다. 그러다 20세기 중반 런던의 안개와 공해를 피해 천문관측시설이 다른 곳으로 이전한 후 왕립천문대로 이름이 바뀌었다.

지구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측정하고 세계 항해의 발달에 기여한 그리니치 천문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국은 19세기 중반에 그리니치 평균시를 토대로 하나의 철도시간을 도입했는데, 이것이 국제표준시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왕립천문대의 지붕에는 매일 오후 1시에 그리니치 표준시를 알려주는 빨간색의 보시구가 있다. ⓒ 위키피디아(Kjetil Bjørnsrud)

그리니치는 천문학과 항해술에 기여한 왕립천문대뿐만 아니라 인류 최고 수준의 예술과 창조적 노력을 증명하는 우수한 건물들이 모여 있는 매우 독특한 유적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것이 영국의 진정한 첫 번째 르네상스식 건물이자 이전 세대의 건축 양식에서 분명하게 탈피한 ‘퀸스하우스’이다.

17세기에 이니고 존스가 설계한 퀸스하우스는 영국 최초의 팔라디오 양식 건축물로서, 이후 2세기에 걸쳐 영국 곳곳에 지은 고전 양식의 집과 저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팔라디오 양식이란 이탈리아 건축가 안드레아 팔라디오가 고대 건축을 연구하여 이룬 독자적인 고전주의 양식으로서 유럽 여러 국가의 도시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이밖에도 영국에서 가장 탁월한 바로크 양식 건축물 중 하나로 꼽히는 왕립병원과 1660년대에 앙드레 르노트르가 설계한 왕립공원이 템스강을 따라 대칭으로 늘어서 있다. 유럽 건축의 중요한 발달 단계를 보여주는 그리니치 해변 유적은 인간과 자연의 교류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자 최고 수준의 과학적 성과와 관련이 깊다는 점을 인정받아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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