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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에 담긴 한글의 우수성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05.16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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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한국 영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은 ‘서편제’에서 유봉(김명곤 역)은 양딸 송화(오정해 역)를 통해서라도 득음의 경지에 이르고 싶은 소리꾼이다. 그가 택한 방법은 송화의 약에 일부러 부자라는 재료를 더 넣어 장님을 만드는 것이었다.

가슴에 한을 심어 송화가 득음의 경지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시력을 상실한 송화는 정말 명창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 그런데 과학적 연구 결과 이 같은 시력의 상실은 음악적 영감을 발휘하는 데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연구진은 건강한 어른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한 그룹은 일주일 동안 어두운 환경에 쥐를 가두고 다른 그룹은 정상적으로 자연적 햇살을 쬐일 수 있게 했다. 그 후 전극을 활용해 일차 청각피질의 뉴런 활성화를 측정한 결과 놀라운 사실이 밝혀진 것.

판소리는 방이건 야외이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공연이 가능하다. ⓒ 문화재청

여러 음역대의 주파수와 다른 강도의 소리를 쥐들에게 들려줬더니 어둠 속에 갇혀 있었던 그룹의 쥐들이 훨씬 작고 은은한 소리까지 듣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이 그룹의 쥐들은 음의 높낮이를 식별함에 있어 좀 더 선명하게 구분해내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전 연구에서는 유아기 때 실명한 가수 스티비 원더처럼 청각피질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보았다. 즉, 어린 시절에 장님이 되어야 청각이 더 발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 실험 연구에 따라 어른이 된 후 실명해도 시냅스 연결의 변화에 의해 청각피질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연구결과는 2014년 ‘뉴런’ 지에 소개됐다.

판소리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말이다. 어원에서 알 수 있듯이 판소리는 서양의 오페라와는 구분되는 차이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오페라의 경우 많은 출연자와 무대장치 및 관현악단이 필요하지만, 판소리는 노래로 이야기를 하는 소리꾼과 북 치는 사람인 고수 등 단 둘만 있으면 된다.

때문에 오페라는 극장 같은 특정 장소에서만 공연을 할 수 있으나, 판소리는 방이건 야외이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공연이 가능하다.

또 하나, 오페라는 관객들이 조용히 듣기만 하는 일방적 공연이지만, 판소리의 경우 관객들이 ‘얼씨구’ ‘좋다’ 등의 추임새를 넣으며 함께 즐기는 양방향의 소통적 공연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바로 판소리의 독특한 기능이 숨어 있다.

판소리는 피지배층인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모든 계층이 두루 즐기는 예술로서, 이를 통해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서로의 생각을 조절했다는 점에서 판소리는 사회적 통합의 기능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판소리는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전승되었는데, 지역적 창법의 특징에 따라 3가지로 구분된다. 먼저 전라도 동북지역의 판소리는 ‘동편제’, 전라도 서남지역은 ‘서편제’, 경기도 및 충청도는 ‘중고제’라고 부른다.

비교적 우조(羽調)를 많이 쓰는 동편제는 발성을 무겁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으며 굵고 웅장한 시김새로 짜여 있는 반면, 서편제는 계면조를 많이 쓰고 발성을 가볍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고 정교한 시김새로 짜여 있다. 이에 비해 소박한 시김새로 짜여져 있는 중고제는 소리의 진행이 덜 기교적이고 평평하지만 시대의 변화 및 대중의 기호를 쫓아 변하기보다 자신만의 색채를 고수하면서 맥을 유지했다.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의 노래는 노래 가락인 ‘창’과 중간 중간에 이야기를 하는 ‘아니리’, 노래나 이야기를 하면서 하는 몸짓인 ‘너름새’의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소리꾼은 고수의 북 소리에 맞추어 이 세 가지로 사람들을 웃고 울린다. 또한 소리꾼은 아주 다양하고 독특한 음색을 터득하고 장시간의 복잡한 내용을 모두 암기해야 하므로 오랜 기간 동안 혹독한 수련을 거쳐야 한다.

때문에 영화 ‘서편제’의 송화처럼 신체적 상실을 겪는 경우도 허다했다. 대표적인 예가 중고제 판소리의 천재로 꼽히는 김성옥이다. 19세기 전반에 활약한 그는 젊은 시절 계룡산 암굴에서 고생하며 수련한 탓에 다리는 뼈만 앙상하고 무릎은 부어올라 통증이 심한 학슬풍에 걸려 앉은뱅이가 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성옥은 판소리에 진양조장단을 도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나, 35세를 넘기지 못하고 요절하고 말았다.

과학적 분석에 의하면, 호남에서 특히 판소리가 발달한 데는 이유가 있다. 호남 지방에는 중안과 하안이 큰 얼굴형이 다른 곳보다 많다는 것. 중안과 하안이 크면 구강을 공명시켜 발성하기에 좋다. 판소리의 경우 주로 구강을 공명시켜 발성한다. 이에 비해 경기도에는 비강이 넓은 사람들이 많아 콧소리가 섞인 서도창이 발달했다고 한다.

판소리는 한국어의 표현 가능성을 최대치로 발휘한 민족적인 표현방식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 역사와 희노애락을 함께해온 판소리는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2013년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판소리는 인류 보편의 문제에 접근하는 예술로 승화되었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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