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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부서지지 않는 끈질긴 부서짐이여성주사터에서 무량사로
  • 유성문 여행작가
  • 승인 2018.03.09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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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사는 무량사(無量寺)가 아니라 무량사라는 이름일 뿐/ 바람을 웃어젖히는 희미한 단청들을 보아라/ 저 무량한 것들의 지수화풍(地水火風)을 어이 있다 할 것인가/ 부서지지 않는 끈질긴 부서짐이여/ 개울물은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를 지껄이고/ 물소리 같은 염불소리 햇볕에 증발하고 있다/ 실눈 뜬 아미타불이 숨을 내쉴 때마다/ 소슬빗꽃살창은 삐거덕거리고/ 금칠까지 한 아미타불은 외계인처럼 큰 귀로도/ 아무 소리도 듣지 않는다/ 그 귀에 대고 아미타불 명호 부르며/ 무량한 생명들 무수히 죽어갔으니/ 만수산 돌멩이들 모두 그 이름 없는 이름이리라/ 나무들 풀들 꽃들 모두 그 이름의 자식들이라/ 그 이름 어이 다 부르리/ 그 모든 지수화풍 뭉뚱그려 무량사라 부르니/ 한손으로 겨우 처마를 잡은 풍경(風磬)이 깔깔거리고/ 풀숲에 숨은 산꿩도 구구 웃을만한 풍경(風景)이건만/ 만수리 장승도 산신각 할아버지도 빙긋이 웃건만/ 산신각 옆 이름 없는 전각을 홀로 차지하고도/ 우스운 세상을 끝내 웃지 않는 놈/ 이천 개의 수염 한 올도 움직이지 않는 놈/ 오백년 전에 좌선한 매월당 김시습 -차창룡 ‘무량사의 김시습 웃음소리’ 전문

성주사터는 소슬하되 다사롭다. 빈 절터에 남아있는 석탑들과 겨울나무가 봄을 기다리고 있다. ⓒ유성문

백제 멸망의 징조는 그 절에서 비롯되었다.

(의자왕 15년 5월에) 흰말이 북악에 있는 오합사에 들어가서 불우(佛宇)를 돌며 울다가 며칠 만에 죽었다. -삼국사기

(의자왕 19년에) 오합사에 큰 붉은말이 있어 밤낮 여섯 시에 사원을 돌았다. -삼국유사

그 오합사가 바로 지금은 빈 터로 남은 성주사(聖住寺)다. 백제가 멸망(660년, 의자왕 20년)하고 꼭 330년이 지난 후에 이번에는 방랑자 최치원이 성주사를 찾아 사산비문(四山碑文)의 하나인 낭혜화상부도비(朗慧和尙浮屠碑)의 비문을 지었다.

도(道)는 담담하여 맛이 없으나, 모름지기 억지로라도 마시고 먹어야 하니, 다른 이가 마시는 술은 나를 취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이 먹는 밥은 나를 배부르게 할 수 없음이라.

계족산 봉우리에서 미륵불을 기다리니 장차 동방의 계족산이 바로 이곳이로다.

하지만 그 미륵불은 이제 실컷 얻어맞아 눈이 퉁퉁 부운 몰골로 빈 절터를 지키고 있다.

성주사터의 미륵불. 울고 싶은 이의 얼굴을 닮아있다. ⓒ유성문

성주사터에서 검은 물줄기를 따라 만수산 기슭에 이르면, 헤아릴 길 없는 절, 무량사가 나온다. 거기서 우리는 또 다른 방랑의 넋, 김시습을 만난다.

(김시습이) 매일 꼭 명수(明水)를 갖추고 예불을 하고, 예불이 끝나면 곡을 하고, 곡이 끝나면 시를 짓고, 시를 짓고 나면 다시 곡을 하고 그 시를 태워버렸다. -양희지

‘오세신동(五歲神童)’ 김시습은 도의정치를 꿈꾸었으나, 그의 꿈은 그가 21살이 되던 해에 일어난 세조의 무단적인 왕위찬탈로 물거품이 되고 만다.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책을 불살라버린 뒤, 승려의 행색으로 길고 긴 방랑길에 올랐다. 잠시 귀경해보기도 하지만, 그는 영락없이 망오(亡汚)의 현실을 직면할 뿐이었다.

젊어서는 사직을 붙잡고(靑春扶社稷) 늙어서는 강호에 묻힌다(白首臥江湖) -한명회

그는 권신 한명회의 벽시를 보고 선뜻 붓을 들어 ‘부(扶)’를 ‘망(亡)’으로, ‘와(臥)’를 ‘오(汚)’로 고쳐버렸으니, 그 뜻을 풀자면 ‘젊어서는 사직을 망치고 늙어서는 강호를 더럽힌다’였다. 그러나 그는 세상에 대한 조롱에 앞서, 스스로 꿈을 이루지 못한 자조에 더욱 시달린다. 긴 유랑의 끝에 다다른 무량사에서 그는 그를 좌절케 한 세상에 대한 적개로만 가득한 자신의 초상을 발견한다.

네 모습이 지극히 약하며 네 말은 분별이 없으니 마땅히 구렁 속에 너를 버릴지어다.

성주사터와 지척인 무량사지만, 성주사터는 보령 소속이고 무량사는 부여 소속이다. 하긴 소속이 무어 대수이랴. 소슬하고 고즈넉함으로 서로 가까웁나니. ⓒ유성문

그의 부도와 함께, 그가 무량사에서 유거(幽居)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그의 초상은 무량사의 이름 없는 한 전각 안에서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어둡고 쓸쓸한 빈 방을 응시하고 있다. 그나마 평생 세상을 떠돈, 떠돌 수밖에 없었던 자신에 대한 한 조각 연민이라도 남아있었던 것일까. 그는 후인들에게 자신이 죽은 뒤, 비문에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적어 달라 부탁했다.

 

<필자 약력>

-여행작가

-편집회사 투레 대표

-한국기록문화연구협동조합 이사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 간

유성문 여행작가  meonb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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