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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예방의학 개념을 담다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03.06 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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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19세기 말 인천 사람들은 자유공원 일대를 ‘약대인산’이라고 불렀다. 약대인(藥大人)이란 서양 의사라는 의미였는데, 바로 그곳에 인천 최초의 현대식 병원이었던 성누가병원과 서양 의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서양 의사는 바로 랜디스(Eli Barr Landis) 박사로서, 인천에 최초의 영어학교와 최초의 고아원을 만든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한국을 위해 또 하나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동의보감 일부를 세계 최초로 영역해 1897년 홍콩에서 발간된 ‘차이나리뷰’지에 게재한 것.

만약 그가 장티푸스에 걸려 이른 나이로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동의보감 전체가 영어로 완역되어 일찌감치 서양에 소개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의보감은 18세기 이후 현재까지 중국에서만 30여 차례 재인쇄되고 일본에서는 2회 이상 재판 간행되는 등 아시아의 여러 지역에서 40회 이상 재인쇄되었다.

동의보감은 양생의 철학을 바탕으로 의학에서 예방의 중요성을 전면적으로 인식한 세계 최초의 의학서적이다. ⓒ 문화재청

동의보감은 병신년이었던 1596년 9월 15일 선조가 허준을 불러 새로운 의서의 편찬을 명함으로써 탄생한 책이다. 당시 선조는 허준에게 “궁벽한 시골과 후미진 거리에 의원과 약재가 없어서 요절하는 자들이 많은 것은 우리나라에 향약은 많이 생산되지만 사람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니 분류하고 향약명을 기록하여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지시했다.

선조의 이 같은 지시 속에 동의보감의 세계적 중요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선조의 명에 따라 허준은 교육을 받지 못한 평민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책의 일부에서 한자와 함께 한글을 사용했다.

예부터 전해오는 의서의 경우 당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약재명이 매우 많았다. 하지만 동의보감에서는 중국산인지 조선산인지를 기록하였고, 조선산의 경우는 우리 고유의 약물 이름과 산지, 채취 시기, 가공법 등을 써놓아 쉽게 갖추어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19세기 이전에 왕실이나 귀족보다도 평민의 건강을 위해 국가적으로 몰두한 이 같은 편찬사업은 사실상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동의보감은 17세기에 벌써 국가가 공공 의료를 책임질 것을 선포하며 선구적 계획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또 하나, 동의보감은 양생의 철학을 바탕으로 의학에서 예방의 중요성을 전면적으로 인식한 세계 최초의 의학서적이라는 점이다. 양생의 철학에서는 인간의 질병이 단지 신체적 원인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요인과 사회적․정신적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이런 추론을 바탕으로 동의보감은 건강과 질병을 단순한 인과관계의 문제로 보는 기계론적 접근이 아닌 전체론적 관점에서 탐구했다. 또 인간의 건강과 질병이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회의학적 관점과 더불어 예방의학적 관점도 구현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건강의 정의에 대해 ‘신체적 측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으로도 좋은 상태라야 진정으로 건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건강에 대한 이 같은 정의를 17세기에 벌써 구현한 동의보감은 세계 의학사적으로 그 유래가 없는 서적이라 할 수 있다.

독창적인 분류 방법을 채택함으로써 다른 어떤 의학서보다 체계적으로 편집되었다는 점도 동의보감의 특징 중 하나다. 동의보감은 질병의 원인, 질병 일반, 특별 증상, 진단, 처방과 함께 침과 뜸의 시료 등 당시 동아시아에서 간행된 비슷한 종류의 다른 어떤 문서보다도 더 체계적으로 편집되었다.

또한 현대 인터넷의 ‘팝업창’처럼 네모 상자를 만들어 유용한 정보를 보충한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게다가 동의보감은 이전의 서적들과는 달리 특별한 정보 항목의 출처를 명확하게 보여줌으로써 이 분야의 지식 전통에 새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동의보감은 동아시아에서 2천년 동안 창안하고 발전시켜 온 다양한 의학 지식을 집대성해놓은 책이다. 따라서 17세기의 아시아인들이 우주와 세계, 인간을 보는 관점에 대해 통찰력을 제공해주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더불어 당시 아시아인들의 생활과 문화,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기도 한다.

선조의 명을 받은 허준은 14년 후인 1610년 동의보감을 완성했으며, 1613년에 목활자인 훈련도감자본으로 발행되었다. 2009년 7월 카리브해의 세계적 휴양지 바베이도스에서 열린 제9차 유네스코 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에서 동의보감은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등재된 동의보감 판본은 허준이 직접 간행에 관여해 나온 초판 완질 어제본으로서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및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각각 보관되어 있다.

지난해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중국의 투유유 박사는 1600년 전에 나온 중국 고대 의학서를 보고 영감을 얻어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특효약 아르테미시닌을 추출했다. 그런데 동의보감에도 개똥쑥이 발열로 인해 땀이 나는 증상을 해소하고 나쁜 기운인 사기와 귀독을 제거한다고 명시돼 있다. 이는 학질로 불렸던 말라리아의 대표 증상이다.

이처럼 전통의약지식을 활용해 신약을 개발할 경우 개발비용 및 개발기간이 엄청나게 단축된다는 이점이 있다. WHO는 세계 전통의약시장 규모를 2008년 2000억 달러 수준에서 2050년엔 5조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동의보감은 단순히 세계기록유산일 뿐만 아니라 엄청난 전통의약 지식을 담은 미래의 데이터베이스(DB)인 셈이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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