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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의 가전제품 탄생시킨 문화
  •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 승인 2018.02.13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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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원문은 인터넷 과학신문 <The Science Time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원문 보기)

 

198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서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가전제품이 탄생했다. 냉장고는 냉장고인데 냉기를 뿜어냄으로써 냉장을 하는 일반 냉장고와는 달리 냉장실 자체를 차갑게 만드는 방식의 냉장고가 선보인 것. 이런 방식을 사용한 것은 김치를 보관하는 데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김치냉장고가 탄생한 까닭은 한국 사람들만의 독특한 김장문화 덕분이다. 김치는 알맞게 익었을 때 비타민 함량과 영양가가 가장 높으며, 너무 익으면 시어서 맛이 없어질 뿐더러 영양가도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한다. 따라서 우리 조상들은 김칫독을 땅에 묻어 보관했는데, 아파트로 대변되는 도시에서는 이 같은 김장독 문화를 접하기 어려워져 김치냉장고라는 발명품을 등장시켰다.

우리 민족과 오래 전부터 함께해 온 김치는 주식인 밥과 궁합이 가장 잘 맞는 음식이다. 밥으로부터는 에너지를 얻고, 김치의 재료인 채소로부터는 각종 비타민과 무기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김장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공동 작업 문화이다. ⓒ 2012 by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김치가 가진 또 하나의 장점은 단백질이나 지방 등 열량을 내는 영양소는 적은 대신 칼슘과 인이 비교적 풍부하다는 사실이다. 서양 식단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칼슘과 인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쌀밥과 김치만 함께 먹어도 그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으니 새삼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김치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문헌상으로는 고려 중엽 이규보가 지은 ‘가포육영’이란 시에 ‘염지’라는 용어로 처음 언급되어 있다. 염지(鹽漬)에서의 ‘지’는 오늘날의 장아찌나 오이지처럼 짠맛이 강한 건더기만을 건져 먹는 채소 발효식품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도 김치 같은 채소 절임 음식을 오래도록 먹어 왔다. 예를 들면 중국에는 배추나 오이를 식초에 절인 ‘파오차이’가 있고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에는 ‘아차르’라는 채소 절임 음식이 있다. 또한 독일에는 양배추를 소금에 절여 만든 ‘사우어크라우트’가 있는데, 발효되면 신맛이 아주 강해지는 특징이 김치와 유사하다.

그런데 김치가 전 세계의 수많은 채소 절임 식품 가운데서 으뜸으로 꼽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주된 재료로 쓰는 배추와 무를 비롯해 파, 마늘, 생강, 고추, 젓갈 등 식물성 식품과 동물성 식품이 어우러져 맛의 깊이를 더해주는 것은 물론 유산균까지 풍부한 건강식품이기 때문이다.

김장을 직접 담그는 것은 초겨울이지만, 사실 김장 준비는 1년이 걸리는 과정이다. 봄이 되면 새우․멸치 등의 해산물을 소금에 절여 발효시켜야 하며, 여름에는 2~3년 동안 저장할 천일염을 구입해 쓴맛을 뺀다. 늦여름에는 빨간 고추를 말려서 가루로 빻아 두고, 초겨울 김장철이 되면 다함께 모여 추운 겨울 동안 먹을 김치를 담근다.

김장을 담그는 이 같은 지식과 기술은 세대를 통해 전승되는 중요한 가족 유산이기도 하다. 그런데 김장에 사용되는 방법과 재료는 지역적으로 또는 가정마다 차이가 존재한다. 따라서 이 같은 김장의 다양성은 한국인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특히 외국에 정착한 한국인의 경우 한국식 김장법과 정착 지역의 관습을 결합해 더욱 창조적인 변형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다.

김장은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공동 작업이기도 하다. 광범위한 도시화와 서구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대부분은 가족이나 친지가 집에서 담아주는 김치는 먹는다. 이는 김장이라는 문화가 현대 사회에서 가족 협력 및 결속을 강화하는 기회임을 보여주는 사실이다.

문화재청이 2011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약 73.8%의 한국인이 동거하거나 또는 동거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 및 기타 지인과 함께 정기적으로 김장을 담는다고 답했다. 우리나라에서 김장을 위한 전통적 친족 관계와 협업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셈이다.

또한 김장은 나눔의 정신을 깨닫고 실천하는 요소로서도 작용하고 있다. 김장철마다 지역사회 및 자원봉사 단체 등에서 대규모의 김장 행사를 조직해 김치를 담그기 힘든 상황에 처한 가난한 이웃들에게 김치를 증정한다. 이 같은 대규모 행사에서 담근 김치를 나누는 풍습을 통해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더욱 끈끈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이처럼 김장 문화는 사회적 나눔, 구성원 간의 협력 증진, 김장 기술 전수 등의 다양한 목적을 갖고 지역 및 사회경제적 차이를 넘어 대한민국 국민 전체를 포괄한다는 큰 특징을 지니고 있다.

김장은 한국인들에게 정체성과 소속감을 준다는 점과 비슷한 천연재료를 창의적으로 이용하는 식습관을 가진 국내외 다양한 공동체들 간의 대화를 촉진함으로써 무형유산의 가시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13년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성규 The Science Times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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