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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광개토태왕> 1부13장 도둑떼들 - 4제1부 광야에 부는 바람③ - 13장 도둑떼들
  • 엄광용 작가
  • 승인 2018.02.1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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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계절은 성급하게 겨울로 치닫고 있었다. 비질하듯 능선으로부터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는 단풍의 붉은 기운이 골짜기에 머물러 주춤거리는가 싶을 때, 하늘로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무들은 채 낙엽이 되기도 전에 쭈글쭈글 시들다가 삭풍에 못 이겨 가지 끝에 매달린 이파리를 떨어내고 말았다. 잎이 다 지지 않은 가지 끝에 눈꽃이 피었다 지기를 몇 번, 그나마 팔랑대던 낙엽마저 매서운 칼바람이 할퀴고 지나가자 금세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를 댕강댕강 흔들며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견뎌내고 있었다.

며칠 동안 칼바람이 불던 날씨가 풀리자, 해가 높다랗게 뜬 대낮에는 가지 끝에 얹혔던 눈이 곧 물방울이 되어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추위 때문에 며칠을 주막에서 구들장 신세를 지고 있던 우신은 마침내 길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딸 소진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무명선사의 거처를 알아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주막을 나와 고개 마루를 바라보고 걷는데 곧 숨이 찼다. 마을길을 벗어나자 초입부터 경사도가 급한 가파른 길이 나타났던 것이다. 우신의 집사이자 호위무사인 장쇠가 급한 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대감마님, 같이 가셔야죠. 그렇게 혼자서만 몰래 주막을 빠져나오시면 어떡해요?”

장쇠가 숨을 헐떡이며 우신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너 아직도 대감마님 소리가 입에 붙었느냐? 내 그래서 너를 떼어놓고 혼자 가려고 했다.”

우신이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장쇠를 바라보았다.

“아이쿠, 내 정신 좀 봐. 저 형님이란 소리는 도무지……. 그냥 주인님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요?”

“장쇠야, 더 이상 나를 따라오지 말고 예서 발길을 돌리거라.”

“아닙니다. 저를 받아주십시오.”

“그럼, 나를 형님이라 부르겠느냐?”

“네, 혀, 형님!”

“그래, 아우야! 우린 이제부터 의형제를 맺은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네게 대감마님이 아니니, 그런 소리 함부로 입 밖에 내어서는 안 된다. 알겠느냐?”

“네, 대감, 아니, 혀, 형님!”

장쇠는 그러더니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얼굴을 붉히며 계면쩍은 듯 오른손으로 뒷머리를 쓱쓱 긁었다. 그의 왼손에는 대도가 들려져 있었다.

원래 집을 나설 때 우신은 장쇠를 떼어놓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사사롭게 딸을 찾아 나서는 마당에 장쇠를 끌어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집을 떠나기 전 날 장쇠를 앉혀놓고 신신당부를 했었다.

“이제 네 갈 길을 가거라. 나는 따로 할 일이 있느니라.”

그러나 장쇠는 꺼이꺼이 울면서 우신에게 매달렸었다.

“대감마님, 저를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저는 평생토록 대감마님 곁을 지킬 것이옵니다.”

“아니 된다 하지 않더냐? 오늘 밤으로 우리의 인연은 끝이다.”

우신은 일부러 장쇠를 매정하게 대했다. 두 사람의 인연이 깊은 만큼 이별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사람의 끈끈한 인연이란 무 자르듯 그렇게 싹둑 두 동강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신은 장쇠보다 자신 스스로가 먼저 매정하게 마음의 칼질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것이 두 사람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우신은 장쇠가 자는 틈을 타서 홀로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는 그날 이후 무명선사를 찾아 부여 땅 곳곳을 두루 헤매고 돌아다녔다. 딸을 찾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몇 달을 헤매고, 해가 바뀌어 다시 가을로 접어들 때까지 그는 무명선사의 발자취조차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신의 발자취를 찾아 헤매는 사내가 있었다. 바로 그의 집사이자 호위무사인 장쇠였다. 자신을 버려두고 홀로 떠난 주인을 찾아 그는 1년여를 헤매던 끝에 바로 얼마 전 주막에서 결국 찾아내고야 말았다.

장쇠는 먼저 책성에 머물면서 해평에게 무술을 가르치고 있는 사부 우적을 찾아가 우신이 어디로 갔는지 추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끈질긴 노력 끝에 우연히 들른 주막에서 우신을 찾아내 며칠을 함께 묶었다.

“자, 그럼 아우야! 출발하자꾸나.”

우신이 앞장을 섰다.

“혀, 형님! 그 괴나리봇짐은 제가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장쇠는 우신의 어깨에서 괴나리봇짐을 벗겼다. 무엇이 들었는지 제법 무게가 나가서 묵직했다.

“좀 무거울 게다.”

우신은 괴나리봇짐을 장쇠에게 넘겨주었다.

“이 안에 무엇이 들었는데 이리 무겁습니까?”

“보물이 들었지.”

우신은 장쇠를 뒤돌아보며 입술을 비틀고 웃었다.

산은 깊었다. 고개를 하나 넘었는가 싶었는데, 또 다시 더 높은 고개가 나타났다. 계곡을 따라 굽이굽이 돌던 길을 벗어나 시야가 트이는 곳에 다다르자, 또 저 멀리 사행(蛇行)으로 이어진 고갯길이 마주 바라다보였다.

두 사람이 큰 고개에 올라섰을 때였다. 갑자기 한 떼의 무리들이 나타나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놈들! 꼼짝 말고 게 섰거라.”

도끼를 든 텁석부리가 졸개들 예닐곱 명과 함께 고갯마루 위에 우뚝 서 있었다.

“웬 놈들이냐?”

장쇠가 우신의 앞으로 나서며 방어 자세를 취하였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놈들이로다. 어서 그 괴나리봇짐부터 내려놓아라. 순순히 몸에 지닌 것을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만약 몸 뒤짐을 해서 숨겨놓은 금붙이라도 나온다면 가만두지 않으리라.”

텁석부리 옆에 서 있던 황소처럼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자가 쇠도리깨를 빙빙 돌리며 엄포를 놓았다.

“장쇠야. 섣부르게 덤비지 말고 조심해야 한다.”

우신이 장쇠의 등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염려 마세요. 놈들은 농사나 짓던 핫바지들이 틀림없어요.”

장쇠가 속삭였다.

고갯마루에는 가지마다 울긋불긋한 천들이 매어져 있는 서낭나무가 서 있었고, 그 앞에 제법 평평해서 과객들이 쉬어가기에 적당한 곳이 있었다. 장쇠는 일단 공격과 방어에 유리한 지형을 골라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우신도 그림자처럼 장쇠의 뒤를 지켰다.

우신과 장쇠는 서로 등을 기댄 채 고갯마루의 넓은 쉼터 가운데 서게 되었고, 도적들이 그 주위를 빙 둘러싸는 형세가 되었다.

“우하하하! 감히 우리와 맞서 싸우겠다는 것이냐? 간덩이가 부은 놈들이 아니냐?”

도끼를 든 텁석부리가 수염이 흔들리도록 웃었다.

“순순히 말을 들을 터이니, 너희 두령에게 안내하라.”

우신이 협상을 하려고 나섰다.

“무엇이? 감히 네놈들이 우리 두령님을 만나겠다고?”

“나는 너희 두령을 만나러 왔느니라.”

우신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혹시 산적들의 두령을 만나면 무명선사의 행적을 알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감이 생긴 것이었다.

“네놈들 정체가 무엇이냐?”

“나는 무명선사를 만나러 이 산에 들어왔다. 너희 두령은 무명선사의 고명한 이름을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무명선사가 계신 곳을 알려준다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순순히 내놓을 것이니라.”

우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텁석부리가 소리쳤다.

“아무래도 수상한 놈들이다. 일제히 덤벼 두 놈을 사로잡아라.”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황소눈이 쇠도리깨를 휘두르며 달려들었고, 나머지 졸개들도 일제히 공격을 가해왔다.

그 순간, 장쇠는 대도를 잽싸게 빼어들었다. 서로 피를 흘리지 않기 위해 협상을 하려던 우신도 결국 호신용으로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빼어들 수밖에 없었다.

“얏!”

“이얍!”

“엿!”

도적들은 힘차게 기합을 넣으며 두 사람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그러나 우신과 장쇠는 숨을 고르며 방어 자세로 시간을 끌면서 그들의 실력을 점검하였다.

장쇠가 볼 때 기합 소리만 요란했지 오합지졸들이었다. 방어 자세를 취하던 그의 칼이 날카롭게 도적들을 향해 뻗어나갔다. 그의 칼끝은 매섭게 도적들의 어깨와 허리와 가슴을 노리며 파고들었다. 칼이 번뜩일 때마다 도적들이 비명 소리와 함께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순식간에 서너 명이 넉장거리로 나가떨어지거나 배를 움켜쥐고 엎어졌다.

비록 호신용으로 길이가 짧은 칼이지만, 우신의 공격도 만만치 않았다. 주로 방어를 하면서 상대의 허점을 노려 공격의 칼날을 세웠는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날 때마다 도적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이렇게 되자 쇠도리깨를 휘두르던 황소눈이 공포로 인해 더욱 커진 눈으로 텁석부리를 쳐다보았다. 이때 텁석부리가 두 손가락을 입술로 가져가더니 휘파람을 길게 불었다.

잠시 후 함성 소리가 들리며 수십 명의 도적떼들이 산비탈을 구르듯 고갯마루를 향해 달려왔다.

“저놈들은 부여의 관군이 파견한 기찰포교들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정보가 새어나가기 전에 저놈들을 죽여야 한다.”

잔뜩 기에 질려 있던 텁석부리가 원군의 함성을 듣고 소리쳤다. 그의 휘파람 신호를 받은 도적떼들은 순식간에 들이닥쳐 우신과 장쇠를 두 겹 세 겹으로 에워쌌다. 두 사람이 초전에 기를 죽여 놓기 위해 칼등으로 치거나 살짝 자상만 내어 쓰러뜨렸던 도둑들까지 일어나 합세를 하니, 더 이상 대항을 하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게 되었다.

“좀 전까지는 겁만 주어 목숨을 살려주었으나, 이제부턴 사정을 두지 않겠다. 자, 덤벼라!”

장쇠가 칼을 치켜 놀리며 엄포를 주었다. 이젠 무기보다 말로 위협을 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놈들, 그래도 정신을 못 차리는구나. 순순히 항복해라. 저 두 놈을 이 산에서 살아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 놈들의 목숨을 거두는 자에게는 크게 포상을 하리라. 사정 두지 말고 공격하라!”

텁석부리가 도끼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

다시 고갯마루에선 두 사람을 가운데 두고 수십 명의 도적떼가 겨루는 일대 혈전이 벌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바람 소리가 나는 것 같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말갈기 같은 긴 머리털을 날리는 사내 하나가 싸움판으로 뛰어들었다. 그의 칼 솜씨는 어지러웠다. 바람 가르는 소리만 날 뿐, 칼의 공격 방향이 어디인지 도무지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그가 몸을 스치고 지나갈 때마다 나무토막처럼 도적떼들이 쓰러졌다.

눈 깜짝 할 사이에 도적떼 십수 명이 땅바닥에 넘어져 뒹굴었다. 사내의 칼끝은 어느 사이 텁석부리의 목을 향해 겨눠지고 있었다.

“도끼부터 내려놓아라.”

사내가 차갑고 날카롭게 외쳤다.

텁석부리의 오른손에서 도끼가 힘없이 떨어졌다.

“제발 사, 살려 주세요.”

텁석부리의 목소리는 기가 질려 있었다.

“목숨이 아깝거든 어서 싸움을 멈추라고 해라.”

칼을 텁석부리 목에 댄 사내가 말했다. 그의 칼날은 조금만 그어도 숨통을 끊어놓을 것처럼 위태롭게 상대의 목울대에 턱걸이를 하듯 걸려 있었다.

“싸움을 멈추어라!”

텁석부리가 다급하게 외쳤다.

“무기를 버리라고 해!”

사내가 다시 칼날을 텁석부리의 목 가까이 들이대며 소리쳤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꿇어앉아라!”

우신과 장쇠를 둘러싸고 있던 도적떼들이 일제히 무기를 버리고 땅에 꿇어앉았다.

“두 분께선 땅에 떨어진 무기를 거두도록 하세요.”

텁석부리를 인질로 잡은 사내가 우신과 장쇠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신과 장쇠는 도적떼들이 쓰던 무기를 거두어 멀찍이 떨어진 곳에 모아두었다.

그렇게 한 바탕 회오리바람 같은 일전이 벌어지고 나서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 흐르는 사이, 어디선가 신선 같은 흰옷에 황색 두건을 쓴 노인이 홀연히 나타났다.

“내가 이 무리들의 수괴(首魁)이외다. 무사께선 칼을 거두시지요.”

스스로 ‘수괴’라고 말했지만, 외모로는 도무지 그렇게 보이지 않는 노인이 텁석부리를 위협하고 있는 사내 앞에 와서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노인께서……?”

사내는 문득 놀란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다가 이내 칼을 거두어들였다.

노인은 무릎을 꿇고 있는 도둑떼들 가운에 우두커니 서 있는 우신과 장쇠를 향해서도 허리를 굽혔다.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이 모두가 잘못 가르친 제 허물이오니, 졸개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오늘은 귀하신 손님들을 저희 산채로 모시겠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저를 따르십시오. 여봐라! 너희들은 세 분의 귀하신 손님들께 깍듯이 예의를 갖춰 산채로 모시거라.”

노인이 먼저 앞장을 섰다. 그러자 졸개들이 각자 무기들을 찾아 들고 우신과 장쇠, 그리고 그들을 도와준 사내를 정중하게 인도하여 산채로 향했다.

 

<엄광용 약력>

-1954년 경기도 여주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0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벽 속의 새」가 당선되어 문단 데뷔.

-창작집 『전우치는 살아 있다』, 장편소설 『황제수염』, 『사냥꾼들』, 『꿈의 벽 저쪽』, 『사라진 금오신화』 등이 있음.

-2015년 역사소설 『사라진 금오신화』로 류주현문학상 수상.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novelky

엄광용 작가  koreanewstimes@k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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