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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광개토태왕> 1부11장 자객의 무리 - 5제1부 광야에 부는 바람② - 11장 자객의 무리
  • 엄광용 작가
  • 승인 2018.01.1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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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떴지만 구름 속으로 숨어버려 국내성 일대는 캄캄한 어둠에 묻혀버렸다. 궁궐 곳곳에 화톳불이 밝혀져 있었으나, 그 불빛에 쫓겨 나무 그늘로 숨어든 어둠은 짙은 암회색을 띠고 있었다.

이경이 가까운 시각, 궁궐 담장을 넘는 검은 그림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복면을 쓰고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나무 그늘 밑으로 스며들자 그대로 어둠과 하나가 되어 버렸다. 삼엄하게 궁궐 경비가 펼쳐지고 있었지만, 어찌나 동작이 민첩한지 검은 복면들은 군사들에게 들키지 않았다. 간혹 맞닥뜨릴 경우 간단하게 단도로 목을 그어 끽, 소리도 낼 틈을 주지 않고 간단하게 목숨을 거둬버렸다.

검은 복면들의 침투로는 두 방향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 무리는 서문 쪽의 궁궐 담을 넘어 정전으로 접근해 갔고, 다른 한 무리는 동문 쪽으로 범궐하여 동궁전을 노리고 달려갔다. 그들은 추녀 밑으로 접근하는 자들과 지붕 위로 달리는 자들, 나무와 나무 그늘 사이로 숨어서 이동하는 자들 등 각양각색으로 목표 지점을 향하여 기민하게 움직였다.

국상 을두미는 정전 집무실에 불을 환하게 켜놓은 채 서책을 뒤적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밖이 시끄러워졌다. 어지러운 발소리와 날카롭게 칼날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전 문밖에서 지키고 있던 정호의 외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놈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뛰어드느냐?”

정호는 그렇게 외치며 을두미에게 복면 사내들의 범궐을 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을두미는 탁자 옆에 세워두었던 칼을 뽑아들었다. 그때 집무실 뒷문이 부서지듯 나가떨어지면서 복면을 쓴 괴한 세 명이 뛰어들었다. 한 녀석은 날렵한 몸놀림으로 탁자 위로 뛰어오르며 칼을 겨누었고, 두 녀석은 양쪽 탁자 사이로 접근해왔다.

벽을 등진 을두미는 세 녀석에게 포위된 형국이 되었다.

“웬 놈들이냐?”

을두미는 큰 소리로 외치면서 탁자 위에서 정면으로 칼을 내리치며 달려드는 괴한을 옆으로 슬쩍 피해 칼을 수평으로 그으며, 동시에 오른쪽에서 접근하는 녀석의 칼을 막았다. 탁자 위에서 몸을 날리던 녀석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엎어졌다. 바닥에 개구리처럼 처박힌 녀석의 옆구리에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칼을 쓰는 을두미의 동작은 그리 분주하지 않았다. 최대한 운동의 반경을 줄이면서 상대의 급소를 노렸다. 오른쪽에서 달려들던 녀석도 을두미가 막고 찌르는 한 칼에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졌다. 그는 다시 뒤로 돌아서면서 다가오던 또 한 녀석을 향해 칼을 비스듬히 내려 그었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옆구리로 칼이 지나가면서 상대는 뒤로 벌렁 나가떨어졌다.

정전 밖에서는 여전히 정호와 괴한들의 칼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칼과 칼이 부딪는 소리와 외마디 비명 소리, 거친 숨소리가 어둠을 갈기갈기 찢어놓고 있었다. 그 소리만으로도 정호 혼자서 여러 명의 괴한을 상대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었다.

‘정호가 위험하다!’

을두미는 정전 앞문을 제치며 밖으로 튀어나갔다. 앞마당 양 쪽에 화톳불이 타고 있었지만, 달이 없는 마당 한가운데는 그래도 어둠침침했다. 어둠이 채 익기 전이어서 을두미는 주춤했다. 바로 그때 복면 괴한의 칼이 그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본능적으로 몸을 벽 쪽으로 비스듬히 기울이면서 상대를 향해 칼을 갖다 댔다. 상대가 나무토막처럼 쓰러지면서 피비린내가 훅, 하고 코끝을 스쳤다.

그때 을두미는 한쪽 팔이 쓰라린 느낌을 받았다. 상대가 그의 앞으로 쓰러지면서 휘두른 칼에 자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벽에 기대어 앞마당의 싸움판을 바라보는 사이 점차 어둠이 눈에 익었다. 정호는 여러 명의 괴한에게 둘러싸여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어림잡아 예닐곱은 되는 것 같았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발은 그 두 배가 되므로 마당은 그들의 발자국 소리로 어지러웠다.

을두미가 정호를 둘러싼 괴한들을 향해 돌진할 때 지붕 위에서 막 뛰어내리는 괴한들의 무리를 보았다. 괴한들은 그의 앞으로 가로막으며 덤벼들었다. 순식간에 그는 괴한들의 한 무리 가운데 둘러싸이고 말았다.

정전 앞마당에선 두 무리로 갈라져 칼싸움이 벌어졌다. 을두미는 정호 쪽을 바라볼 겨를이 없었다. 사방에서 눈 코 뜰 새 없이 달려들은 괴한들의 칼끝을 피하기에도 바빴다. 그는 최대한 동작을 아껴 적의 급소가 아니면 함부로 칼을 휘두르지 않은 절약적인 검법을 사용했다. 아무래도 나이가 많아 체력이 금세 떨어질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러나 괴한의 수가 너무 많다 보니 상대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만으로도 절약적인 검법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해버렸다.

을두미는 팔에서 점점 힘이 빠져 달아나는 것을 의식했다. 감으로 휘두르는 그의 칼끝에 걸려 쓰러지는 상대가 두세 명 있었으나,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때 괴한의 칼 하나가 그의 옆구리를 씀벅 베면서 지나갔다. 눈앞이 아찔했다. 불에 덴 듯한 느낌이 들어 옆구리에 손을 대자 울컥, 하고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의식이 가물가물해진다고 느낄 때 을두미는 정수의 등에 업혀 있었다. 그 사이 정수가 괴한들을 물리치고 그를 위기에서 구출해낸 것이었다. 다시 또 다른 괴한들이 덮쳐오기 전에 정수는 을두미를 업고 그 자리를 일단 피했다. 지혈부터 하고 보는 것이 우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편 동궁전에서도 일대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왕제 이련은 동궁전 앞마당에서 괴한들을 맞았다. 유청하와 그가 이끄는 청년무사들도 합세하여 동궁전을 철저히 지켰다. 뒤늦게 을두미가 정호에게 일러 유생들을 보내지 않았다면 대적하기 힘들 만큼 괴한의 무리들은 많았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렇게 밖에서 칼싸움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후원의 내불전 법당에선 목탁 소리와 함께 석정의 염불 소리가 낭랑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다른 건물들은 불이 꺼져 캄캄한데 유독 법당만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어, 마치 괴한들의 침입을 도외시하기라도 하는 듯했다.

동궁전 앞마당에서 수십 명의 괴한들과 왕제 이련을 위시한 태학의 유생들, 그리고 유청하가 이끄는 젊은 무사들이 한창 어지럽게 칼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동궁전 지붕 위에 납작 엎드려 있던 괴한 둘이 몰래 처마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둥궁빈 하씨의 처소로 들이닥쳤다.

동궁빈 하씨는 그런 소란 속에서도 침소에 누워 잠이 든 척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옆에는 이불 속에 아기가 들어 있는 것처럼 불룩한 모양이 두드러졌다. 괴한 두 명은 살금살금 다가가 칼을 치켜들고 먼저 동궁빈 하씨를 위에서 아래로 내리찍었다. 그런데 그 순간 땅바닥으로 나뒹굴며 피를 흘리고 쓰러진 것은 두 괴한이었다.

두 괴한의 칼을 피하면서 동궁빈 하씨는 재빠르게 이불 속에 숨겨두었던 칼을 빼어 그들을 한 칼에 베어 넘긴 것이었다. 그 바람에 걷혀진 이불 안에는 작은 베개만 하나 나뒹굴고 있었고, 아기는 보이지 않았다. 그날 저녁 동궁빈 하씨는 시녀 길례로 하여금 몰래 왕손을 안고 내불전으로 가서 석정 스님에게 숨겨줄 것을 부탁하도록 했던 것이다.

동궁빈 하씨는 칼을 들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복면 괴한들은 갑자기 그녀가 싸움판 가운데로 뛰어들자 당황했다. 동궁빈 하씨의 칼 쓰는 솜씨는 날렵하였다. 가볍게 스치는 듯하면서 날카롭게 허공을 가르는 칼날에 괴한들이 한 명씩 차례로 쓰러졌다. 거의 대등했던 싸움판의 전세가 바뀌었다. 괴한들이 주춤주춤 뒤로 밀리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목탁 소리가 들려오는 내불전 법당으로도 복면을 쓴 괴한들이 뛰어들었다. 석정은 그러거나 말거나 목탁을 두드리며 염불을 하고 있었다.

“꼼짝 마라! 이 오밤중에 무슨 염불이냐?”

복면 괴한 중 우두머리인 듯한 자가 소리쳤다.

그러나 석정은 눈을 감은 채 태연하게 목탁만 두드렸다.

“이봐! 아무래도 여기가 수생해. 이곳 어디엔가 왕손을 숨겨놓았지?”

“부처님 앞에서 왜 이리 시끄러운가?”

석정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준열하게 꾸짖었다.

“아니, 이 중놈이? 너는 목숨도 아깝지 않느냐? 이 중놈을 당장 끌어내라.”

우두머리가 두 졸개에게 명령을 내렸다.

두 졸개가 석정에게 달려들어 양쪽 겨드랑이를 하나씩 끼고 일으켜 세우려 하였다. 그런데 석정이 어떻게 했는지 그들은 허방을 짚은 듯 앞으로 고꾸라지더니 둘 다 사지를 벌벌 떨었다.

“이 중놈이 미쳤나?”

복면 우두머리는 갑자기 긴장하여 칼을 치켜 올렸다.

“사내자식이 칼을 빼어들었으면 호박이라도 찔러야지. 왜, 내가 그리 무섭냐?”

석정이 역시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소리쳤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두 녀석은 바닥에 엎어져 사지를 버들버들 떨고 있을 뿐 일어나기 못했다.

“에에잇!”

복면 우두머리가 석정의 뒤통수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바로 그 순간, 석정은 앉은 자세 그대로 뒤로 몸을 빼면서 엉덩이로 상대의 무릎을 쳐서 칼과 함께 앞으로 나뒹굴게 하였다.

“네, 이놈! 부처님이 무섭지도 않느냐? 불제자로서 피를 보일 수는 없고, 어서 네 졸개들을 데리고 썩 물러가라. 이곳은 신성한 법당이니라.”

복면 우두머리는 놓친 칼을 주워들고 버들버들 떨고 있는 졸개 두 명을 걷어차며 소리쳤다.

“이곳에 왕손은 없는 것 같다. 어서 가자!”

그때까지 졸개들은 석정이 무서워 일어나지도 못하고 그렇게 버들버들 떨고만 있었다. 우두머리도 역시 도술을 부리는 듯한 석정의 괴력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얼른 법당을 벗어나고 볼 일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복면 사내들이 법당에서 밖으로 뛰쳐나갈 즈음, 동궁빈 하씨는 아들의 안위가 근심되어 들이닥치던 참이었다.

“이놈들, 꼼짝 마라!”

동궁빈 하씨는 법당 앞마당에서 세 명의 복면 괴한을 향해 칼을 뻗었다. 석정에게 주눅이 든 그들은 이미 싸울 힘을 상실하여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기만 하였다. 그러다가 상대가 여자인 것을 알자 일제히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어둠을 가르는 매서운 칼끝이 세 괴한에게로 달려들었다. 동궁빈 하씨의 동작은 바람처럼 빨랐고, 칼끝은 화살촉보다 예리하게 상대의 허점을 노리며 찌르고 베기를 거듭했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그 동작은 마치 춤사위 같기도 했다. 칼날의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칼과 칼이 부딪칠 때 나는 강한 쇳소리가 공중으로 튀어 오르면서 어둠을 상하좌우로 저울질 해대고 있었다. 그 소리에 비하면 복면 괴한들이나 동궁빈 하씨의 기합 소리는 땅으로 낮게 깔리는 듯했다.

‘흡!’ 또는 ‘헙!’하는 거친 소리는 복면들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는데, 상대의 예리함에 적이 당황한 듯했다. 그에 비하면 동궁빈 하씨는 ‘얍!’ 또는 ‘엽!’으로 응수하였으나, 그 소리는 거의 입안에서만 맴돌 뿐 밖으로는 잘 새어나오지도 않을 정도였다.

갑자기 복면들의 호흡이 거칠어지기 시작하였다.

“허억!”

복면 사내 하나가 가슴을 부여잡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러자 두 사내는 지레 겁을 먹고 등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꼼짝 마랏!”

동궁빈 하씨는 쓰러진 사내의 목을 향해 칼끝을 들이대며 소리쳤다. 그들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사로잡으려고 일부러 급소를 피해 상처만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사내는 자신의 칼로 목을 그어 자결해버렸다.

“츳, 츳, 츳! 나무관세음보살!”

법당 안에서 한동안 복면의 사내들과 동궁빈 하씨가 겨루는 모습을 내다보던 석정이 문밖으로 나서면 합장을 하였다.

“스님! 아기는?”

“동궁빈 마마! 왕손 아기씨는 부처님이 보호해주셔서 안전하십니다.”

석정은 동궁빈 하씨를 법당 안으로 안내하였다.

동궁빈 하씨는 피 묻은 칼을 땅바닥에 한 켠으로 던지고 법당 안으로 들어섰다.

석정은 제단 앞에 놓인 나무로 된 불전함을 치웠다. 그리고 제단 밑에 마련된 빈 공간을 열어 길례가 안고 있던 왕손 아기씨를 받아 안았다. 밖에서는 일대 활극이 벌어지는 소란의 와중에도 아기는 쌔근쌔근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더위에 고생했다.”

동궁빈 하씨는 석정으로부터 아기를 받아 안으며, 제단 밑에서 막 기어 나오는 길례를 바라보았다. 길례는 이마에서 뚝뚝 땀이 떨어질 정도로 온몸이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한여름밤의 끈적거리는 더위도 그렇지만, 법당에 들어와 석정을 위협하던 복면 사내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너무 두려움에 떤 나머지 얼굴까지 사색이 되어버린 것이었다.

“동궁빈 마마! 괜찮으세요?”

동궁빈 하씨의 옷에 온통 피가 튄 것을 발견한 길례가 두려운 목소리로 물었다.

“허허헛! 동궁빈 마마의 무술은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른 듯하더이다. 꽤나 훈련을 받은 자들일 터인데 세 녀석이 쩔쩔 매는 꼴이라니.”

석정이 껄껄 웃었다.

“스님, 부끄럽습니다. 법당 앞에서 험악한 꼴을 보였습니다.”

동궁빈 하씨는 아기를 안고 법당을 나서다 말고, 문득 되돌아서며 불상을 바라보았다. 부처가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엄광용 약력>

-1954년 경기도 여주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0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벽 속의 새」가 당선되어 문단 데뷔.

-창작집 『전우치는 살아 있다』, 장편소설 『황제수염』, 『사냥꾼들』, 『꿈의 벽 저쪽』, 『사라진 금오신화』 등이 있음.

-2015년 역사소설 『사라진 금오신화』로 류주현문학상 수상.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novelky

엄광용 작가  koreanewstimes@k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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