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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이야기] ‘하트 세이버 7’ 김미희 소방장“구급대원은 헌신으로 말한다”
  • 임해원 기자
  • 승인 2018.01.10 10:46
  • 댓글 2
2017 최고영웅소방관으로 선정된 김미희 소방장.

[코리아뉴스타임즈] 충북 제천 화재 이후 소방대원들의 근무여건 개선에 대한 여론이 환기되고 있지만, 소방관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치 않다. 부족한 인원과 장비, 위험한 현장과 잦은 부상 비해 미흡한 소방전문 의료시설, 소방 활동에 대한 사회적 이해의 부족 등 대한민국 소방관이 극복해야 할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어려움을 안고 수많은 소방관들이 시민의 안전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16년간 세 아이를 키워내면서도 구급대원으로서 현장을 떠나지 않은 충남 보령소방서 김미희 소방장(42·여)의 사례는 더욱 주목할 만하다. 만삭의 몸으로도 들것을 들고 환자를 이송할 정도로 ‘천상 소방관’인 김 소방장은, 심정지 환자 소생 시 주어지는 ‘하트세이버’ 배지를 7개나 단 심폐소생의 전문가이기도 하다. 김 소방장은 지난해 소방청, 한국사회복지협의회, 에스오일(S-Oil)이 함께 선정하는 ‘최고영웅소방관’에 뽑히기도 했다.

“구급대원으로 일하다보니 돕는 일이 몸에 밴 것 같다”는 그녀는 지난 16년간 7000여 건이 넘는 구급활동을 통해 수많은 생명을 살리면서도, 개인적인 시간에는 아이들과 함께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만나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멈췄던 심장도 다시 뛰게 만드는 ‘하트세이버’ 김미희 소방장을 만나 소방관으로서의 보람과 애환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소방관을 선택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에는 간호조무사로 일반 병원 외과와 정형외과에서 근무했다. 외래나 수술 보조를 하면서 병원에서 근무하다보니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또 병원에서 근무하다보니 직접 현장에 나가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도 강해졌다. 마침 당시에 막 응급구조학과가 생기고 있던 참이었다. 먼저 응급구조학과로 진학했던 선배의 조언으로 23세 때 진로를 바꾸게 됐다.

 

16년간 구급대원으로 일하면서 ‘하트세이버’를 7번이나 수상했다고 들었다. 비결이 뭔가. 또 심폐소생 전문가로서 위급 상황시 대처하는 방법은?

우선 심폐소생 가이드라인을 한번쯤 확인해두라고 권하고 싶다. 올바른 심폐소생술 가이드라인은 한가지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그 동안의 현장 경험과 연구 성과를 토대로 5년 마다 갱신되고 있다. 예전에는 15번 가슴 압박 후 2번 인공호흡을 시행했지만, 최근에는 30번 압박 후 2번 호흡으로 바뀌었다. 그게 더 소생률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경사항을 미리미리 업데이트해두면 좋을 것이다.

인공호흡도 최근에는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에게는 권하지 않는 추세다. 지나치게 호흡을 불어넣다 과호흡이 발생할 수도 있고, 심장처치가 급선무인데 인공호흡을 하다가 시간이 지체되는 경우도 있다. 교육 시에도 심정지 환자가 있을 경우 꼭 인공호흡을 하지 않아도 되니 최소한 가슴 압박만이라도 해달라고 가르치고 있다.

심폐소생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초기 4분이다. 심정지 후 뇌에 산소와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 뇌가 죽어간다. 그렇게 되면 소생해도 마비가 오거나 뇌사 판정을 받는 등 경과가 좋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목격자와 신고자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이들이 구급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가슴 압박으로 뇌에 산소와 혈액을 공급해주면 이후 구급대원이나 의료진이 소생시킬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 학교나 관공서에서 의뢰가 들어올 때마다 교육을 나가고 있는데, 항상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2017년 최고영웅소방관 시상식에 선 김미희 소방장.

하트세이버를 수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례는.

많은 사례가 있지만, 지난해 설날에 아동 심정지 환자를 소생시켰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지난해 1월1일 아이가 자꾸 토한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출동한 적이 있다. 겨우 만 5세밖에 안되는 어린 아이였는데, 구급차로 이송 중에도 계속 토하다가 그만 기도가 폐쇄됐다.

성인의 경우 심장이 멎으면 보통 심장 자체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아이들은 호흡기 문제로 인해 심정지에 이르는 경우가 더 많다. 이 아이도 폐쇄된 기도를 다시 확보하는 동안 그만 심장이 멎고 말았다. 구급차 안에서 심폐소생술을 하면서 병원으로 이송했는데, 도착할 때쯤 다행히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아이는 병원에서 금방 회복해 일반실로 이동했지만, 혹시나 걱정이 돼서 부모님에게 전화를 드려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할 수 있으니 소방서에 한번 들러서 심정지나 기도폐쇄에 대응하는 법을 배워가시면 어떨까요”하고 권했다. 나중에 아이가 퇴원한 뒤 부모님이 함께 소방서를 방문했는데 아이가 문을 열고 뛰어들어오더라.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에 데려갔던 아이가 뛰어 놀고 이야기도 하니까 마음이 뿌듯했다.

 

삼남매를 키우는 어머니로서 소방관이라는 힘든 일을 해나가는 것이 어려웠을 것 같다

2001년 결혼하고 나서 2년 만에 큰 딸을 낳았다. 당시에는 구급대원 인력도 지금 보다 적었고 여직원은 한 센터에 겨우 3명밖에 없을 정도였다. 이런 적은 인력으로 2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데 임신했다고 빠지는 게 다른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지금이야 임신확인서 제출해고 출동하지 않는 사무직처럼 좀 더 편한 근무로 이동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럴 수 없었다. 식사하다가 입덧이 오면 혼자 화장실에서 토하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서 배가 불러오는데 현장용 임부복이 없어서 큰 사이즈의 활동복을 입고 출동하기도 했다.

결국 큰애는 출산예정일 1주일 전까지, 둘째는 한 달 전까지 구급차를 탔다. 만삭이어도 들것을 들고 응급처치 하고, 현장에서 볼 것 안 볼 것 다 봤다. 임신하면 좋은 것만 보고 클래식 음악도 들으면서 태교에 신경쓰라고 하지 않나. 우리 아이들은 구급차 사이렌 소리를 태교음악으로 들으며 컸다. 당시에는 뱃속의 아이들에게 “엄마가 해야 하는 일이니 이해해 줘”라며 말하며 속으로 달래기도 했다.

 

육아하는 과정도 힘들었을 것 같다. 아이들은 어머니가 소방관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다행히 시부모님께서 아이들을 다 키워주셔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래도 아이들을 놔두고 출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출근할 때 아이들이 가지 말라며 많이 울었는데, 시부모님도 감성이 풍부하셔서 아이들이 울면 따라 우시기도 하셨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엄마가 일하는 게 좋아, 집에서 살림하는게 좋아?”하고 물어보면 아이들 모두 일하는 엄마가 더 좋다고 대답해준다. 남편도 강력계 형사로 오랫동안 근무했는데, 아이들이 부모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줘서 마음이 든든하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 재능기부로 심폐소생술이나 응급처치 교육을 1년에 한 번씩 하고 있는데, 내가 방문하면 아이들도 으쓱하고, 반 친구들도 많이 좋아한다.

김미희 소방장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을 가르치는 모습.

당시에 여성 소방관이 흔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최근에는 상당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성 소방관에 대한 편견 때문에 이런 현상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데.

소방서에도 여러 부서가 있는데 여성 소방관들이 모두 내근직만 하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더라. 내근에서 행정, 홍보 업무를 담당하기도 하지만 화재진압이나 구급대원으로 일하는 여성 소방관들도 많다. 직접 소방차를 몰거나 화재 현장에서 남성 소방관들과 함께 진압도 같이 한다. 물론 소방호스를 잡는 것처럼 힘이 많이 드는 일에 여성 소방관들이 어려워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서로 도와가면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융통성 있게 잘 헤쳐 나가고 있다.

예전에는 화재진압에 나가는 여성 소방관은 많지 않았고 대부분 구급대원이었다. 그마저도 남성 10명에 여성 1명 정도 수준이었다. 그래도 한 팀으로 24시간 같이 근무하다보면 남녀를 따지지 않고 서로 농담도 나누면서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된다. 팀 내에서 여성소방관이라고 특별대우를 받거나 힘들었던 적은 없다.

 

충북 제천 화재 이후 소방대원들의 근무여건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인력 부족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지금 내가 근무하는 곳도 인원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소방차량의 경우 한 센터에서 보통 굴절차, 배연차, 구급차, 펌프차 등 9~10대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화재 발생 시 먼저 출동해 진압하는 소형 펌프차 등의 1착대와 이후 현장 상황에 따라 출동하는 굴절차, 배연차 등의 2착대로 나눠서 운영한다. 문제는 인원이 부족해서 소방차량 두 대에 1명의 운전원을 배정하다보니, 1착대에 배정된 운전원이 2착대에도 동시에 배정되는 경우가 있다. 대형사고라도 나면 2착대 대형 차량들도 모두 출동해야 하는데 운전원이 부족하니 내근인원들까지 나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

구급대도 상황이 비슷하다. 외곽센터의 경우 구급차에 운전원과 구조사 2명 포함 3명의 인원이 탑승해야 하지만 인원이 없으니 보통 2명이 탑승한다. 현장에서 환자가 이동이 어려우면 2명의 구조사가 들것을 통해 이송해야 하지만 인원이 부족하니 업고 나오거나 신고자가 도와주거나 한다. 심정지의 경우도 가슴압박과 인공호흡을 나눠서 하면 더 좋은데 인원이 모자라니 어려운 점이 있다.

최근 소방서 근무가 2교대에서 3교대로 바뀌었는데 증원없이 근무형태만 바뀌다보니, 인원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은 여전하다. 순환보직도 인원 문제 때문에 잘 안 이뤄지는 문제가 있다.

 

늘 격무에 시달리다 보면 직업병이 생길 것 같다. 또 어떤 어려움이 있나.

구급대원들은 들것을 많이 들다보니 대부분 허리 통증을 직업병으로 가지고 있다. 또 응급환자를 이송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대원들이 다치는 경우도 많다. 나도 구급대원으로 일하면서 3번의 교통사고를 경험했다. 그래서 대원들이 대부분 목이나 허리에 통증을 달고 산다.

구급대원뿐만 아니라 소방대원 모두의 문제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PTSD)로 인한 고통을 겪는 대원들도 많다. 철도사고나 교통사고로 인한 시신 수습도 자주 하다 보니 현장이 머릿속에 많이 남는다. 거리를 지나가다보면 “저기서는 목을 맨 시신이 있었는데. 이곳에는 추락 사고가 있었고…” 이런 식으로 한 번씩 기억이 튀어나올 때가 있다. 항상 있는 일이라 쉽게 넘기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신입 대원들은 이런 문제를 많이 어려워한다. 한 후배는 발령 후 한 달 동안 심정지 환자만 11명을 보게 됐다. 이걸 잘 이겨내면 다행인데 자꾸 생각이 나다보니 너무 힘들어해서 결국 PTSD 검사를 받게 됐다. 지금은 검사 결과가 너무 높게 나와서 구급차에서 내려 치료를 받게 조치한 상태다.

현장 대원들이 PTSD 검사 결과가 높게 나오면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데,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과 진료 이력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경향이 있어 대원들이 검사를 꺼린다. 그래서 정신적 고통을 쉽게 넘기고 검사지에 ‘없음’ 칸에만 표기를 하기도 한다. 젊은 대원들은 특히 현장에서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떠올리면서 “이렇게 했으면 살지 않았을까” 회의를 많이 느낀다. 구급강사로 활동하면서 젊은 구급대원, 특히 여직원들과 상담을 자주 하며 이런 문제에 대해 조언을 많이 해주고 있다.

김미희 소방장(맨 왼쪽)과 동료들의 모습.

구급대원으로 일하면서 개인적으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인근 요양시설에 종종 찾아가는 편이다. 막상 가보면 중증 장애인들의 이동을 돕거나 청소하는 것 말고는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시간 될 때 장비를 가져가서 요양소 직원들에게 심폐소생 교육을 해드리고 있다. 또 아이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 해 함께 데리고 가 경험하게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독거노인 분들에게 요구르트를 제공하는 봉사를 하고 있다. 독거노인들은 가족이 있어도 따로 떨어져 지내는데다 사회복지사들도 자주 방문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요구르트 배달원들이 일주일에 2~3번이라도 배달을 가면 어떻게 살고 계시는지, 무슨 일은 없는지 확인이 가능하다. 그래서 동사무소 직원에게 부탁해서 명단을 받은 뒤 독거노인분들의 승낙을 받아 요구르트를 배달해드리고 있다. 한 달에 구급대원 수당으로 10만원 가량 나오는 것이 있는데, 그 돈으로 요구르트를 사 나눠드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방관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신규 대원들은 새로운 이론과 장비들을 배워오지만 현장에 대한 노하우는 선배들에게 많이 배워야 한다. 처음 발령받은 신입들은 다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데, 선배들에게 서슴없이 물어보면서 몸에 익숙해지도록 많이 배워야 한다.

그리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이라면 구급대원 일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환자들도 가지각색이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우러나는 환자도 있지만, 소위 ‘진상’ 환자도 있다. 하지만 환자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도록 다 받아주면서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구급대원으로서 항상 헌신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임해원 기자  champr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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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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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 수자 2018-01-11 19:53:37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했네요 당신의 노고에 히찬 박수를 보냅니다   삭제

    • 김창용 2018-01-10 22:56:30

      역시 고생많으신거 표나내요
      그래서 우리같은 사람들이 살기좋아 지는건가 봅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가까운곳에서 많은 도움 주셨음 좋겠습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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