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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의 클래식 산책 / 핸델 하프시코드 모음곡>
  • 김별(피아니스트)
  • 승인 2017.12.14 17:33
  • 댓글 1

G.F.핸델이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를 위해 작곡한 '모음곡' 중 제6번(HWV 431) 4악장 '지그' 연주입니다.

18세기 중반 '소나타'가 독주 기악의 중심 장르로 자리하기 전까지, 기악 음악의 중심에 있던 모음곡(Suite) 형식은 17세기 태동해 18세기 J.S.바흐와 핸델에 의해 꽃을 피우고, 현대에까지 다양한 갈래와 형태로 발전하였습니다. 모음곡은 대개 여러 춤곡 악장들이 양식 체계에 의해 배열돼 요건을 갖추며, 8분의 6박이나 8분의 12박 위주의 빠른 춤곡인 '지그(Gigue)' 악곡은 그 마지막 악장으로 애호되었습니다. 핸델의 기악곡들은 현대에 점차 소외되어가나, 그 기악곡들은 어느 작곡가에 견주더라도 단점을 찾기 힘든 완성형에 가까우며, 바흐와 슈베르트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듯한 고유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1685년 바흐와 같은 해 같은 독일에서 태어난 핸델은, 1726년 영국으로 귀화하여 33년의 여생을 보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지방 영주에 소속된 의사였기에 환경은 윤택했으나, 어려서부터 음악에 강한 재능과 애정을 보인 핸델에게 그의 아버지는 '음악은 굶어 죽기 딱 좋은 직업'이라는 21c에도 애용되는 말로써 그를 종용, 의사나 변호사로 아들을 키우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핸델은 아버지를 속여가면서까지 음악의 꿈을 내내 포기하지 않고, 결국 아버지는 그의 의지에 항복하게 됩니다. 가문에 단 한 명의 음악인도 없었던 핸델의 집안에 그렇게 처음이자 마지막의 음악가가 탄생합니다.

음악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핸델의 생은 승부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일생 동안 방대한 다작을 했고, 그는 지휘자이자 연주가였으며, 극장을 경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했습니다. 때문에 두 번이나 파산했고 세 번의 살해 시도를 당했으며, 목숨을 건 칼부림을 벌인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삶과 음악을 위해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승부사였던 그를 가장 고전케 한 상대는, 다름 아닌 오페라였습니다. 그가 반생을 걸었던 오페라와의 처절한 사투는 좀체 승부를 내지 못했고, 50세 즈음의 그는 결국 오페라에 완전히 항복하며 종교 곡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망할 때까지 20년간 종교곡에 몰두한 핸델은 약 20여 곡의 오라토리오 걸작을 작곡했는데, 그중에서도 <메시아>는 만인이 인정하는 불멸 명작이 되었습니다.
<메시아>는 현재까지도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세계 각국에서 연주되는데, 처음 이 작품이 연주된 당시의 이익금이 사회 사업으로 기부되었고, 핸델 역시 고아들의 병원 건립을 위해 이 곡을 십여 차례 직접 지휘하며 모든 이익금을 기부했던 전례를 따라, 지금까지도 이 곡은 자선 사업을 위하여 자주 공연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최고 걸작들을 쏟아내던 노년의 핸델은 공교롭게도, 독일에서 바흐가 저명한 안과 의사에게 눈 수술을 받은 뒤 완전히 시력을 상실했던, 바로 그 의사에게 영국에서 눈 수술을 받은 후 마찬가지로 완전히 시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작곡은 불가능 했고, 그는 마지막 8년을 암흑 속에서 생활하다 1759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일생 동안 독신이었기에 유족은 없었고, 철저히 사생활을 가렸던 그였기에 지금까지도 그의 사생활은 베일에 싸여 있습니다.

바흐는 일생 동안 핸델을 매우 존경하여 수차례 그를 만나고자 노력했지만, 우연과 필연의 연속으로 끝내 단 한 번도 그들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일생에 체험할 수 있는 온갖 종류의 고난을 겪으며 평생 무명의 음악 노동자로 산 바흐와 달리, 유럽의 수퍼스타였던 핸델은 그러나 후대에는 여타 바로크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바흐라는 거대 산에 가려지게 됩니다. 바흐가 음악 역사상 절대적인 존재임에는 이견을 달고 싶지 않으나, 후대에 이르러 당대 바로크 거장들과 이전 시대의 음악들까지 지나치게 소외를 시키고, 핸델을 음악의 '어머니'로 만들어 버린 배경에는, 신흥 개신교 세력의 제국주의와 패권주의 움직임이 영향을 미친 것 또한 사실입니다. 비발디 핸델 텔레만 스카를라티 등의 작곡가들이 현대에 더 많이 연구되고 회자된다면, 음악의 바다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넓게 보여질 것 같습니다.

 

피아니스트 김별

부모님의 영향으로 유년기부터 다양한 음악을 접하였고 초등학생 때 미국 힙합에 이끌리며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다양한 음악적 시도와 활동을 하였고 현재는 ‘마음 연주회’라는 개인 소극장 콘서트를 204회째 열고 있다. 김별 씨는 재능 기부에 적극적이다. 건국대 병원에서 환자와 아이들을 위해 7년째 연주 봉사를 해오고 있다. 그는 관객들이 연주를 듣고 위로와 힐링을 느낀다고 말할 때 큰 기쁨을 느낀다. <코리아뉴스타임즈>는 김별씨의 영혼이 담긴 연주를 매달 동영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김별(피아니스트)  koreanewstimes@k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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