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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예술운동 ②] 이마로 작가의 ‘일필휘지’
  • 임해원 기자
  • 승인 2017.12.12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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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로 작가(24). <사진=에이블아트센터>

[코리아뉴스타임즈] 에이블아트센터에서 가장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는 이마로 작가(24)는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다. 타인과의 소통과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고, 종종 정서적 불안정을 겪거나 한 행동에서 다른 행동의 전환이 곤란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마로 작가의 작품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이지혜 팀장은 스스로 닫혀있다는 뜻의 ‘자폐’라는 단어는 이마로 작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마로 작가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주변인들의 표현에 따르면 “심각한 수준”으로 높기 때문이다.

이마로 작가가 그려내는 대상은 주로 우리 주변이 아니라 좀 더 멀리 떨어진, 다른 문화권의 이국적인 풍경과 인물들이다. 평소에는 외국 영화를 보고 인상 깊었던 장면이나 인물들을 재현하지만, 어느 유적지의 상징적인 건축물이나 문화재에 깊이 빠져들기도 한다. 이 팀장은 “이마로 작가는 알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너무 많다. 어느 때는 메디치 가문에 꽂혀서 문양을 그리다가, 다른 때는 분청사기에 빠져서 박물관을 가야겠다고 조르기도 한다. 매 순간마다 관심을 가지는 것들이 다르다”며 이마로 작가의 호기심을 설명했다.

이마로 작가가 영화 '트럼보'를 관람한 후 그린 작품. 연필 드로잉 위에 마커로 채색. <사진=에이블아트센터>

이마로 작가가 처음 몰두했던 것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이었다. 어린 시절의 그는 두꺼운 공책의 절반을 빼곡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들의 그림과 설명으로 채우고, 나머지 절반을 그가 창작한 캐릭터들의 이야기로 채우는데 골몰했다. 일반적인 아동들의 낙서와 달리 캐릭터 설명과 서사로 구성된 완결된 책을 만들어냈던 것은, 사물을 정돈하고 배열하려는 이마로 작가의 강박이 오히려 ‘편집자’적 기질로 나타난 것. 이러한 기질은 점차 타국의 역사와 문화로도 뻗어나가, 어린 이마로 작가의 방 안은 곧 세계지도로 도배가 됐다.

이마로 작가가 '라라랜드' 관람 후 그린 작품. 연필 드로잉 후 마커와 수채물감 채색. <사진=에이블아트센터>

이마로 작가는 연필로 드로잉을 한 뒤 마커나 수채물감 등으로 채색하는 평면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 그의 작업과정을 지켜본 이들은 한결같이 이마로 작가의 작품을 ‘일필휘지’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세밀한 선으로 정교하게 형태를 재현하기보다는, 간결하고 대담한 선으로 자신이 인식한 세계를 그대로 표현하는 스타일이기 때문. 자신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대상의 특징을 부각시켜 그려내는 그의 작품 안에서 머뭇거리거나 우물쭈물하는 선들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이마로 작가의 강박이 종종 작품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연필로 드로잉을 하다가 선이 어긋나거나 모양이 맘에 들지 않는 경우 작게 × 표시를 해두는 귀여운 습관을 가지고 있다. 반면 채색하는 과정은 전혀 다르다. 그는 연필선에 딱 맞추기보다는 어느 정도 벗어나게 채색하는 것을 즐긴다. 수채물감과 마커를 주로 쓰지만 금속성 색채를 띤 안료를 섞는 등 소재 선택도 자유롭다. 종종 물감이 번지거나 서로 다른 색이 침범하는 경우가 생겨도 이를 자연스럽게 자신의 작품 안으로 녹여낸다. 이 팀장은 “강박이 심한 작가의 경우 열심히 그리다가도 조금만 채색이 삐져나가면 작품을 찢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마로 작가는 그런 면에서 자신의 작품을 너그럽게 수용하는 편이다. 유연한 채색으로 자신이 받은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서울시 구로구 갤러리 구루지에서 열린 '낮고 높고 좁은 방' 전시회에 출품된 이마로 작가의 작품. <사진=구로문화재단>

지난 4월은 이마로 작가의 작품활동에 있어서 한 전환점이었다. 영화나 유적, 문화재, 역사처럼 자신이 평소 몰입하던 주제와는 달리 동료 작가가 제시한 주제에 따라 작품을 창작해 전시한 것. 이마로 작가는 지난 4월 구로문화재단이 주최한 ‘낮고 높고 좁은 방’이라는 전시회에서 구로공단과 가리봉동의 쪽방촌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전시했다. 자신이 인터넷으로 리서치한 구로공단과 쪽방촌의 모습들을 30m 길이의 롤지에 연이어 그려낸 ‘구로탐방’은 그의 편집증적 기질과 자유로운 표현이 동시에 드러나는 인상적인 작품이다.

에이블아트센터에서 작업 중인 이마로 작가. <사진=에이블아트센터>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자유로운 표현으로 그려내는 이마로 작가의 재능이 처음 발견된 것은 언제였을까? 이마로 작가의 어머니 서은주씨는 그의 예술가적 기질을 처음 파악했던 순간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초등학교 시절, 소나기를 피해 서있던 어린 이마로 작가가 갑자기 빗속으로 뛰어들었다가 돌아온 뒤 “(옷 위에) 얼룩무늬 그림을 그렸다”라며 자랑스레 웃었다는 것.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그림으로 풀어내는 특출한 재능을 가진 이마로 작가를 위해 서씨는 에이블아트센터와 연을 맺었다. 서씨는 “전업작가로서의 진로를 정해준다는 생각보다는 이마로 작가가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아주기 위해서였다”며 에이블아트센터에 이마로 작가를 보내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처음부터 에이블아트센터에서 이마로 작가의 작품 활동이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었다. 자폐성 장애를 가진 그는 행동을 전환할 때 종종 강박에 걸려 어려움을 겪는다. 집에서 출발하기 위해 차를 탈 때, 차에 내려서 교실에 들어설 때, 교실에 들어선 뒤 연필을 잡을 때 이마로 작가에게는 남들보다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

채색 중인 이마로 작가. <사진=에이블아트센터>

초기에는 세 시간 수업에 두 시간을 화장실에 틀어박힌 채로 보내기도 했다. 이마로 작가를 지원해온 김미라 작가는 “처음 에이블아트센터에서 일했을 때는 나도 작가들이 더 많은 작품을 만들도록 독려하는데 집중했다. 이마로 작가가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데 시간이 걸렸다”고 설명했다. 화장실에 틀어박힌 이마로 작가를 나오게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어서 나와서 같이 그리자”는 독려나 재촉이 아니라 기다려주는 자세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선생님들이 자신을 기다려준다는 신뢰가 쌓이자 닫혀있던 소통의 문도 열리기 시작했다. 화장실에서 보내는 시간도, 강박 때문에 작업이 연기되는 경우도 줄어들었다. 이마로 작가에게는 강박에 빠질 경우 이를 해소하기 위해 기도문을 읊거나 숫자를 세면서 몸의 먼지를 털어내는 등 자신이 만들어낸 일종의 '의식'이 있는데, 그것을 행하는 빈도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김 작가는 “선생님들과 이마로 작가가 서로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요새는 강박이 없는데도 와서 의식을 같이 해달라고 장난을 칠 정도로 좋아졌다”고 말했다.

결국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예술적 재능을 이끌어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그저 ‘기다림’이었다. 서씨는 “나라고 다른 사람 눈에 이마로 작가가 장애인으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하는 욕심이 왜 없었겠나. 그 때문에 어린 이마로 작가를 혼내거나 때린 적도 있다”며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아이를 통제하기 보다는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점을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서씨는 “많은 부모들이 장애 아동을 온전한 세상으로 꺼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를 꺼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아이와 함께 들어가서 같이 나오는 것”이라고 전했다. 기다림의 결과, 이마로 작가는 이제 누구보다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드러내게 됐다. 누구보다도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이마로 작가는 오늘도 자신을 사로잡은 주제를 그려내는데 열중하고 있다. 당신이 그의 작품에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면서.

임해원 기자  champr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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