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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광개토태왕> 1부7장 서북풍 - 3제1부 광야에 부는 바람② - 7장 서북풍
  • 엄광용 작가
  • 승인 2017.12.06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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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중국 땅에 서북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후한(後漢) 이후 중국은 위(魏)·촉(蜀)·오(吳) 삼국과 서진(西晉) 시대를 거쳐 서북방의 흉노(匈奴)·갈(羯)·선비(鮮卑)·저(氐)·강(羌)의 이른바 5호(五胡)들이 잇달아 정권을 수립하면서 크고 작은 수많은 나라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혼란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흉노와 갈과 선비는 북방 세력이고, 저는 서방에, 강은 저보다 조금 서북쪽에 위치한 세력으로, 이들 모두는 중원을 장악하려고 호시탐탐 노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서진 말기에 이르러 이들 부족들은 우후죽순처럼 일어나 중원으로 진출, 각자의 정권을 수립하면서 그 위세를 과시하였다.

그 중에서도 전진(前秦)은 중국 서쪽에서 발흥한 저족(氐族)이 세운 나라로, 한(漢)왕조의 도성인 ‘장안’을 장악하여 가장 큰 세력을 형성했다. 후한 말기에 저족은 추장 아귀(阿貴)와 양천만(楊千萬)이 위나라의 조조를 반대하여 봉기를 일으켰다. 그러나 그들의 주류 세력이 하후연에게 패하여 서남쪽으로 달아나 결국 촉(蜀)나라로 망명하였다. 이렇게 되자 남아 있던 저족의 일부는 모두 조조에게 항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 저족은 한(漢)족과 더불어 살면서 차츰 동화되어 갔다.

그러다가 한족의 정권이 쇠퇴하면서 저족 수령인 부건(符健)이 351년에 장안으로 공격해 들어가 전진을 건국하고 스스로 대진천왕(大秦天王)이 되었다. 이때 나라를 세우는데 공이 컸던 부건의 동생 부웅(符雄)이 승상이 되어 황제인 형을 곁에서 도왔다.

부건이 죽고 뒤를 이어 그의 아들 부생(符生)이 제위에 올랐으나, 타고나기를 성질이 매우 포악하여 신하들을 함부로 죽였다. 나날이 그 정도가 심해지더니 나중에는 백성들까지도 원성이 높아 나라가 위태로울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승상 부웅에게는 부법(符法)과 부견 두 아들이 있었다. 그 중 특히 둘째 아들 부견이 영특하고 지혜로워 신하와 백성들로부터 신망이 매우 두터웠다.

황제의 자리보전에 위기를 느낀 부생은 사촌인 두 형제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밤 말은 쥐가 듣는 법이었다. 어느 날 부생이 술을 마시고 만취 상태에서 지껄인 것을 시중을 들던 시녀가 우연히 듣고 곧바로 부법 형제에게 가서 알렸다. 이때 부법과 부견 형제는 선수를 쳐서 함께 군사를 일으켜 황제 부생을 제거하였다.

부견은 먼저 형 부법에게 황제의 자리에 오르라고 권했다. 그러나 부법은 평소부터 동생이 자신보다 더 지혜롭고 백성들의 신망도 높아 군주로서 손색이 없다고 판단하였으므로 황제 자리를 극구 양보하였다. 신하들도 적극 부견을 황제로 추대하므로, 그는 기꺼이 제위를 물려받아 전진의 3대 황제가 되었다. 그의 나이 20세 때였다.

황제가 된 부견은 외치보다 우선 내치에 힘써 태학(太學)을 정비하여 학문을 장려하였고, 백성들로 하여금 농경에 주력하여 국고를 튼튼히 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런 연후에 동북방에서 큰 세력을 일으켜 고구려를 제압하고 중국까지 넘보는 전연(前燕)을 370년에 멸망시켜 화북을 통일하였다. 바야흐로 그는 강남에 자리 잡은 동진(東晋)까지도 공략하려고 다방면으로 세작을 보내 정보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바로 그 즈음에 고구려 승려 석정이 강남을 다녀왔다. 이 또한 겉모습은 석정 스스로가 아도를 만나기 위해 간 것이지만, 전진의 황제 부견이 비밀리에 주선한 일이기도 하므로 세작의 역할을 아니 맡았다고 할 수 없었다. 석정이 직접 황명을 하달받은 것은 아니나 천축승 순도를 통해 그런 임무가 주어졌음을 알았다. 강남 동진에서도 이국 승려에 대해서는 크게 의심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적절하게 이용한 계략이었다.

부처님 오신 날 행사가 끝난 후, 천축승 순도와 고구려승 석정은 황궁으로 들어가서 곧바로 황제 부견을 알현하였다. 양편에 신하들이 시립해 있는 가운데로 한참을 걸어들어 가서야 용상 앞에 이르렀다.

황제의 위에 오른 지 15년이지만, 부견은 그 경륜에 비해 젊어 보였다. 두 번째 알현이지만, 석정은 황제의 예지가 번뜩이는 눈빛에서 그 만만찮은 기상을 엿볼 수 있었다.

“고구려 사신단과 함께 왔던 승려라고 들었소만?”

부견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첫 번째 알현을 했을 때는 고구려 사신단을 이끌고 온 정사 우신과 대면을 했으므로, 석정이 황제의 질문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네, 황제 폐하! 소승은 석정이라 하옵니다.”

“짐은 고구려왕이 백제와의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심히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었소. 고인의 명복을 비는 짐의 뜻은 먼저 귀국한 고구려 정사에게 전한 바 있소. 그건 그렇고, 따로 대사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고구려는 영토가 크고 역사도 깊다고 들었소. 그런 고구려가 그에 미치지 못하는 백제에게 패한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시오?”

뜻하지 않은 질문에 석정은 속으로 뜨끔했으나, 곧 정신을 가다듬었다. 부견이 어떤 대답을 원하는지, 그에 합당한 말을 찾아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형적으로 크고 작은 것과 단단하고 힘이 센 것은 비교할 수 없는 문제라 생각하옵니다. 강풍이 몰아치면 키가 크고 잎이 무성한 나무도 가지가 꺾이거나 뿌리째 뽑힐 수 있는 법이옵니다. 오히려 그보다 작은 나무가 강풍에 더 굳건하게 견딜 수 있는 것은 가지가 많지 않아 바람을 적게 받고, 뿌리가 붙잡아주는 힘이 나무의 몸통이 받는 바람의 세기보다 강하기 때문이옵니다. 고구려가 백제보다 영토가 크고 역사가 더 오랜 것은 사실이나, 나무의 뿌리에 해당하는 국가 기강이 튼실하지 못했던 탓이옵니다. 국가 기강은 군사력만으로 평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고, 반드시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킬 수 있는 구심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또한 농사를 장려하고 풍부한 물산의 교류를 통하여 국가 재정을 튼실하게 해야만 강한 나라라고 할 수 있사옵니다.”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결집시킨다? 어찌하면 그리 될 수 있겠소?”

부견은 석정의 말에 깊은 관심이 가는 듯, 몸을 약간 앞으로 내밀었다.

“폐하께서 이미 국가 정사를 펼치고 계신 그대로입니다. 불교를 받아들여 백성들의 마음을 위안하고, 태학을 설립하여 유교 경전을 습득케 하여 나라의 인재를 두루 등용하는 것이옵니다. 그래서 위로는 황제 폐하의 마음이, 인재들로 이루어진 신하들을 통해 그대로 백성들에게까지 순일하게 전달되어야 하옵니다. 그래야 비로소 나라가 평화로워지고, 이웃나라가 감히 넘보지 못할 것이옵니다. 이는 저 곤륜산의 물줄기가 흘러내려 수천 줄기의 샛강이 되고, 샛강과 샛강이 만나 장강이 되고, 마침내는 장강의 큰 물줄기가 망망대해로 나가 하나로 통일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옵니다.”

부견은 석정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고구려에는 아직 불교가 정착되지 못했다고 들었는데, 대사께선 어떻게 불교에 입문할 수 있었소?”

“소승은 오래 전 연나라가 고구려를 쳐들어왔을 때 포로가 된 몸으로 용성에 거류하고 있었사옵니다. 그러다가 용케 장안까지 오게 되어 천축승을 만나 불교에 입문하게 되었지요. 바로 그 천축승이 며칠 전 강남에 가서 만난 아도란 승려이옵니다. 승려 아도는 천축에 있을 때 여기 순도 대사에게 수계를 받은 제자이기도 하지요.”

석정은 옆에 있는 순도를 가리켰다.

“폐하! 부처님은 불국토의 세상을 만들어 나라가 두루 평화롭게 되기를 기원했사옵니다. 석정 대사도 고구려를 불국토의 세상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옵니다. 아울러 고구려도 태학을 설립하여 인재를 기를 필요가 있으니, 많은 유교 경전이 소용되옵니다.”

순도는 이미 황제 부견의 명에 의해 전진의 사신단과 함께 고구려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 가기로 되어 있었다. 어차피 고구려승 석정과 동행해야만 하였으므로, 애써 부탁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던 것이다.

“순도 대사의 특별 부탁도 있고 하니, 짐이 왕 승상을 소개하겠소. 태학을 장려하고 국가 기강을 바로잡는 일은 왕 승상만한 이가 없으니, 석정 대사는 귀국길에 오르기 전에 충분히 배워가도록 힘쓰시오. 왕 승상, 아니 그러하오?”

부견이 승상 왕맹(王猛)을 바라보았다.

“폐하! 황공무지로소이다.”

왕맹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면 황제 부견을 향해 두 손을 맞잡고 예의를 갖춘 후 다시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부견이 순도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허면 순도 대사께선 언제 고구려로 떠날 참이시오? 그 날짜에 맞추어 사신단을 준비토록 명하겠소.”

“부처님 오신 날 행사도 끝났고 하니, 사신단이 꾸려지는 대로 즉시 떠날 수 있사옵니다.”

“그동안 범어 경전들을 역경하느라 수고가 많았소. 고구려에 가서도 불교를 널리 전파할 수 있도록 공력을 쏟아주시오. 여기 고구려승 석정 대사가 있는 것처럼 고구려에도 민간에 전승되는 불교가 있다고는 하나, 아직 국가적으로 공인을 받진 못한 것 같소. 이는 불경을 많이 보급하지 못한 것이 큰 이유라 할 수 있으니, 널리 불교가 유포되도록 역경사업에 힘써주시기를 당부하는 바이오. 고구려가 강국이 돼야 아국(我國)이 동북방에서 중원을 노리는 무리들을 경계할 수가 있기 때문이오.”

부견은 현명한 군주였다. 나라가 부강해지는 것을 군사력에 두지 않고 종교와 학문의 부흥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는 일찍이 불교를 국교로 받아들여 돈황에 천불동과 석굴을 조성하는 대불사를 일으켜 중원을 불국정토로 만들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승려라면 특급대우를 하고 있는 편이었다.

특히 부견이 고구려승 석정에게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데는 내심 깊은 뜻이 숨어 있었다. 눈앞에 닥친 시급한 과제가 강남의 동진을 공략하여 중원 전체를 통일하는 것이므로, 고구려를 적으로 만들지 않고 우방으로 삼아야만 하는 필연적인 이유를 갖고 있었다. 더구나 백제가 요서 지역까지 침탈하여 발해 연안의 해상권까지 장악하면서 고구려를 위협하는 한편, 강남의 동진과 교린 관계를 맺고자 노력하는 데 대하여 심히 우려하는 바가 없지 않았다. 따라서 고구려가 백제보다 강해져야 전진이 동진도 이길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었다.

부견이 순도를 통해 몰래 고구려승 석정을 강남에 잠입시킨 것도 백제가 동진에 사신단을 보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상승 왕맹은 동진에 대한 공략을 반대하는 편이었다. 강남의 패권을 쥐고 있는 동진은 만만하게 볼 수 없는 큰 세력이었다. 전진이 동북지역의 전연을 멸망시켰다고 해서 오만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전연 마지막 황제인 모용위(慕用暐)의 숙부인 모용수(慕容垂)를 휘하 장수로 거두어 선비군 3만을 이끌게 하고 있는 것은, 울안에 호랑이 새끼를 키우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모용수는 전연의 황제 모용황(慕容皝)의 다섯째 아들로, 그 지략과 용맹이 아버지 못지않다는 사실을 왕맹은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부견의 생각은 달랐다. 이미 전연은 전진에게 복속한 나라이므로, 그들의 군사력까지 합치면 강남의 동진을 충분히 깨뜨릴 수 있다고 장담하였다. 그동안 전연의 군사들은 동북방의 맹주로 떠오를 정도로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만큼 군사들이 전쟁 경험도 풍부하므로 십분 활용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처럼 부견은 중원을 통일하기 위하여 하루라도 빨리 강남의 동진을 손에 넣어야겠다는 야망에 불타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따로 자리를 마련하여 강남에 다녀온 고구려승 석정을 독대하였다.

“강남에 다녀오느라 수고가 많았소. 백제가 동진에 사신을 보낸 것은 사실이오?”

“네, 폐하! 사실이옵니다. 원래는 작년 가을에 백제에서 사신단이 강남으로 떠났는데, 도중 해상에서 폭풍을 만나 되돌아갔다 하옵니다. 그리고 올해 정월에 다시 사신단을 보내 두 달 전 동진의 황제를 알현하고 돌아갔다 들었사옵니다.”

석정은 강남에 머물고 있는 천축승 아도를 통해 들은 바를 그대로 전했다.

“백제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소?”

황제 부견이 날카로운 시선을 던졌다.

“우리 고구려의 생각과 결코 다르지 않사옵니다. 그 반대로 생각하시면 틀림이 없사옵니다.”

“흠, 그렇소? 고구려에서 우리보고 강남의 동진을 공격해달라는 것처럼, 백제는 강남의 동진으로 하여금 우리를 공격해달라고 부탁했겠군!”

부견은 뭔가 깊은 생각을 하는 듯 의자에서 일어나 팔짱을 낀 채 서성거리며 몇 번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석정은 눈치 빠르게 그 모습을 훑어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강남 진의 장군 환온(桓溫)이 작년에 황제 사마혁(司馬奕)을 폐위시키고 새 황제로 사마욱(司馬昱)을 옹립하더니, 지금 그 위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옵니다. 항간에서는 환온이 사마욱마저 폐위시키고 스스로 황제가 되려는 꿈을 꾸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나돌고 있을 정도이옵니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돌아선 부견이, 잠시 뜸을 들였다가 껄껄대고 웃었다.

“환온이 거듭 짐에게 큰 선물을 안길 모양이로군!”

부견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졌다.

석정은 왜 부견이 환온의 이야기에 그렇게 즐거워하는지, 그 속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일찍이 동진의 황녀와 결혼하여 부마도위에 오른 환온은 여러 차례에 걸쳐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둔 명장이었다. 그는 오래도록 동진의 병권을 장악해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 정도로 크게 위세를 떨쳤는데, 369년 보병 5만을 이끌고 북쪽으로 원정을 가서 전연을 공격해 승승장구하다가 끝내는 보급로가 끊겨 대패하고 돌아갔다. 그 뒤를 이어 이번에는 전진의 황제 부견이 전연을 공격해 멸망시켰는데, 이는 사실상 동진의 환온이 한 해 전에 전연의 전력을 크게 약화시켜주었기 때문에 어부지리로 얻은 결과라고 할 수도 있었다.

바로 부견은 그 사실을 두고 환온이 큰 선물을 안겨주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환온이 반역을 일으켜 나라가 어지러울 때를 틈타 전진이 공격을 가한다면, 이번에도 쉽게 동진을 멸망시킬 수 있을 것으로 예단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석정은 바로 그런 부견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강남의 동진은 아직 불교가 크게 성행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만큼 나라가 불안하고 기강이 덜 잡혀 있다고 보시면 되옵니다.”

“석정 대사! 바로 보셨소. 고구려가 불교를 공인하여 불국토의 세상을 만든다면 우리로선 대환영이오. 고구려가 강해져야 우리가 동북방을 근심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오. 고구려로 돌아가면 석정 대사도 역경사업에 힘써주시오. 그런 의미에서 짐이 특별히 붓과 벼루를 선물하겠소.”

황제 부견은 매우 기분이 좋아져서 석정에게 특별히 선성(宣城)에서 생산되는 선필(宣笔)과 검은 흡연석(歙硯石)에 용무늬를 새긴 벼루를 하사하였다.

 

6

 

전진의 승상 왕맹은 황제 부견의 명을 받아 석정에게 젊은 유생들이 유교 경전을 배우는 태학을 견학시켜주었다. 태학은 황실과 귀족의 자제들을 교육시키는 기관으로 국가에서 관리하며, 전체 유생이 이곳에 들어가 숙식을 제공받고 집중적으로 학문을 익히는 곳이었다.

장안성에서도 황궁과 가까우면서 울창하게 숲이 우거진 조용한 곳에 태학의 모든 시설이 들어서 있었다. 곳곳에 연못이나 꽃밭 등 정원도 잘 조성되어 있어서 유생들이 학문을 닦는데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조용한 가운데 숲속에서 뻐꾸기 소리가 한가롭게 들려오고 있었다. 적요를 깨는 그 소리는 오히려 태학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졌다. 봄꽃도 허공에서 파문을 일으키며 바람결을 따라 시나브로 꽃잎을 흩날리고 있었다.

유생들이 공부하는 교사(校舍)와 숙사(宿舍), 도서원(圖書院) 등을 석정에게 안내한 왕맹은 석정과 함께 연못이 있는 정원으로 나왔다.

“대사, 태학을 둘러본 소감이 어떠하시오?”

왕맹은 석정을 돌아보았다.

“규모도 대단하고, 유생들이 학문을 도야하기에 딱 알맞도록 시설이 아주 잘 정비되어 있군요. 특히 갖가지 많은 경서들이 진열되어 있는 도서원은 대단합니다. 저 경서들을 어떻게 다 마련했습니까?”

“필사처럼 가장 확실한 공부는 없다고 봅니다. 저 장서들은 모두 태학의 유생들이 필사한 것들을 책으로 묶은 것이지요. 따라서 경서의 필사는 유생들 누구나가 반드시 해내야 할 기본적인 과제입니다. 경서뿐만이 아닙니다. 황제의 칙서와 중요 서찰, 각종 역사서, 정사와 관련한 문서 등도 반드시 필사하여 보관해야 합니다. 경서는 물론 병서도 익히고 무술도 배우지요. 기본적으로 문무를 겸해야만 정사를 살필 수 있으니, 무술 또한 중요한 공부에 속합니다. 일종의 정신 훈련과 심신 단련으로도 무술 만큼 좋은 것은 없으니까요.”

왕맹은 경서를 통독한 문사이지만, 젊어서부터 병서도 즐겨 읽어 황제가 원정을 나갈 때 작전을 세우는 군사 역할도 맡았었다는 사실을 석정은 잘 알고 있었다.

전부터 왕맹에 대한 이야기는 장안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일반 백성들뿐만 아니라 삼척동자들에게까지도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석정의 귀에도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왔다.

어려서부터 왕맹은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삼태기나 키 같은 것을 만들어 가족의 생계를 겨우겨우 꾸려나갔는데, 어린 왕맹도 아버지가 만든 것을 가지고 거리로 나가 팔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어느 날인가 왕맹이 삼태기를 가지고 나가 팔고 있을 때의 일이었다. 그때 어른 한 사람이 돈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며 자신을 따라오면 비싼 값에 삼태기를 사겠다고 했다. 왕맹은 그 사람을 따라갔는데, 그 집에는 백발의 노인이 평상에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고 무슨 이야기인가를 들려주고 있었다.

왕맹을 데리고 온 사람은 백발노인에게 그를 소개하였고, 노인은 그 자리에서 흔쾌히 열 배나 되는 가격에 삼태기를 샀다. 뭔가 깊이 느끼는 바가 있어 그는 노인이 준 백은으로 병법서를 사서 읽었다. 삼태기를 팔면서 틈틈이 병법서를 읽은 그는, 청년이 되었을 때 뜻한 바가 있어 화음산(華陰山)으로 백발노인을 찾아가 본격적인 학문을 익혔다.

입산수도를 끝낸 후 어지러운 세상을 구하겠다는 풍운의 뜻을 품고 하산한 왕맹은, 자신과 함께 세상을 논할 주군을 찾았다. 마침 그 무렵, 동진의 대사마 환온은 화북의 맹주 전진을 공격하기 위해 장강을 건넜다. 그는 장안에서 그리 멀지 않은 패상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널리 인재를 구한다는 소문을 냈다.

그 소문을 접하고 왕맹은 허름한 옷차림으로 환온을 찾아갔다.

이때 왕맹은 옷 위로 이가 기어 다니는 것을 잡아가며, 환온과 중원의 어지러운 시국에 대하여 논했다.

“나는 천자의 명을 받아 십만 대군을 끌고 장안의 잔적들을 치러왔소. 헌데 대의를 갖고 있는 호걸들이 다투어 찾아오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소.”

환온은 많은 인재들이 자신을 찾아올 줄 알았는데, 거지꼴을 하고 와서 시국을 논한다며 옷 위로 기어 다니는 이나 잡고 있는 왕맹이 매우 못마땅했던 것이다.

“공은 장강을 건너 수천 리를 달려와서는, 정작 장안을 코앞에 두고는 군대를 좀처럼 움직이지 않고 있소. 호걸들은 공의 본심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달려오지 않는 것이오.”

“강남에는 그대와 견줄 자가 없는 것 같소.”

환온은 사실 장안을 공격할 자신감이 없어 망설이고 있었는데, 왕맹이 한눈에 자신의 본심을 꿰뚫어 본 것에 감탄하여 그를 군사 자문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환온은 패상에 너무 오래 지체하고 있다가 전진의 승상 부웅의 공격을 받아 1만여 군사를 잃었다. 그는 결국 장안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환온은 마차를 내주며 왕맹에게 동진으로 같이 가자고 제의했다. 그러나 왕맹은 더 공부를 해야겠다며 환온의 청을 거절하고 다시 산중으로 들어갔다. 환온의 우유부단한 성격이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전진의 부건이 죽고, 그의 아들 부생이 즉위하였다. 이때 새로 황제가 된 부생은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운 사촌 동생 부견을 두려워하여 그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 소문을 듣고 부견의 참모인 여파루(呂婆樓)가 자신의 친구인 왕맹을 추천하였다.

왕맹을 만나본 부견은 첫 대면에서부터 평생지기처럼 마음이 통했다. 몇 마디 시국에 대해 논하는 사이 두 사람은 곧바로 의기투합이 되었다.

“내 공을 만난 것이 마치 유비가 제갈공명을 만난 것과 다르지 않소.”

부견은 왕맹과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는 왕맹의 지혜로 자신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던 황제 부생을 선제공격하여 척살한 후 전진의 황제로 등극하였다.

그때부터 왕맹은 중서시랑의 중책을 맡아 전진의 기틀을 다지는 데 전력을 다하였다. 나라가 어지러워 도둑이 도처에서 극성을 부리자, 왕맹은 그들을 엄격한 법으로 다루어 가차 없이 처단하였다. 그러자 일부 백성들 사이에서 너무 가혹하다는 불평이 쏟아졌다.

그러나 부견은 왕맹을 전적으로 믿었다.

“왕맹은 관중(管仲)과 자산(子産)에 견줄만한 인물이다.”

부견은 왕맹을 한 해 동안 다섯 번이나 승진시킬 정도로 신임했다.

369년 동진의 환온이 전연을 공격했을 때, 전연은 호뢰(虎牢: 하남성 사수현) 서쪽 땅을 전진에게 떼어주겠다는 조건으로 구원병을 요청했다. 이때 다른 신하들은 전연이 다급하여 구원병을 요청하였으나 전쟁이 끝나면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극구 반대하였다. 그러나 왕맹은 오히려 동진을 크게 약화시키면서 동시에 전연을 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판단하고, 부견에게 다음과 같이 적극 구원병을 보낼 것을 주청하였다.

“전연이 강하긴 하나 동진의 환온만 못합니다. 만약 환온이 전연을 공략하여 산동을 거점으로 확보하는 날에는 아국이 그들을 버텨내기 힘들게 됩니다. 이번에 반드시 전연을 도와 환온의 군대를 격파해야 합니다. 환온의 군대가 강력하므로 연군이 그들과 대적하면 군사력이 크게 약화될 것입니다. 환온의 군대가 물러가고 나면 전연은 다시 욕심이 생겨 아국과의 약속을 지키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아국에게 명분이 있으므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연을 치면 쉽게 무너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부견은 왕맹의 계책을 높이 평가하여, 전연에 구원병을 보내 환온의 군대를 격퇴시켰다.

왕맹의 말은 맞았다. 전연은 전진과 약속한 호뢰 서쪽 땅을 내주지 않았다. 따라서 전진은 약속을 지키지 않은다는 이유를 들어 곧바로 군사를 일으켜 전연을 정복하였다. 이때 환온의 군대를 크게 물리친 전연의 명장 모용수도 전진의 핍박을 견디다 못해 끝내는 부견에게 투항하고 말았다.

진진이 전연을 멸망시킨 후, 황제 부견은 왕맹의 공을 크게 치하하며 그를 최고 지위인 승상으로 제수하였다. 승상이 된 왕맹은 나라 안팎을 정비하는 데 힘썼다. 밖으로 군대를 개혁하고 안으로 유학을 장려하여 나라의 체제를 정비해 나갔다. 그는 또한 농민들에게 농사와 누에치기를 권장하고 상공업을 적극 육성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이러한 왕맹의 치적을 알고 있는 석정은 부러운 나머지 은근히 그를 우러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문득 왕맹이 석정에게 의외의 질문을 던졌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동방의 나라들은 모두 왕조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왕조가 그렇게 오래 갈 수 있는 비결은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중원의 나라들은 이백 년 이상을 간 왕조가 아주 드뭅니다. 그런데 고구려만 하더라도 건국 이후 지금까지 사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난감한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석정은 어떻게 답변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고구려 이전에 부여가 있었고, 또 그 이전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었지요. 아직도 부여는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만, 부여나 조선 모두 아주 오랜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요. 조선은 개창할 당시 ‘홍익인간(弘益人間)’,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이념을 국가의 정신으로 삼았습니다. 그 정신의 바탕에는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지향하는 사상이 담겨 있지요. 전쟁은 평화를 깨는 개념입니다. 불교에서도 부처님과 불법이 다스리는 평화로운 이상세계를 ‘불국정토(佛國淨土)’라고 하는데, 아마도 홍익인간의 개념 역시 그와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전쟁이란 불가피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하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불행하게 만들려는 전쟁은 불국정토의 사상에 위배된다고 봅니다. 악덕군주 밑에서 신음하는 백성을 구하기 위해 일어서는 것이 바로 불국정토의 사상에 입각한 전쟁이지요. 걸주(桀紂)에 대한 은나라 탕임금이나 주나라 무왕의 봉기가 바로 그런 전쟁 아니었을까요? 조선의 홍익인간 정신도 그와 같아서, 전쟁보다는 평화의 시대를 염원하는 국가 정신이 대를 이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에 고구려를 비롯하여 백제·신라·가야가 모두 오랜 역사를 간직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옳으신 말씀이오. 전쟁이란 일으키는 나라나 공격을 당하는 나라나 그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하기는 매일반이지요. 그래서 전쟁은 평화를 전제로 할 때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만약 전쟁을 일으키더라도 백성들을 오래도록 고통스럽게 하지 않으려면 속전속결로 결판을 내야 합니다.”

왕맹의 석정을 쳐다보는 눈길에는 깊은 신뢰감이 실려 있었다.

“승상께서 전연을 경략할 때와 같은 그런 전쟁을 말씀하시는군요?”

“그렇습니다. 전연은 모용황 때부터 오만했어요. 그래서 고구려가 큰 피해를 입기도 했지요. 오만하다는 것은 자기 실력을 과신하고 있다는 것이고, 이는 곧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지금 아국도 황제 폐하께서 동진의 환온 군대를 몰아내고 중원 전체를 통일하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때가 이릅니다. 강남 사마씨의 동진은 여전히 강합니다. 힘을 기르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폐하는 지금도 기회만 되면 군사를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환온은 오만합니다. 그 오만이 언젠가는 나라를 위험 속에 몰아넣을 것이고, 그때를 기다려 기습공격을 감행해야 합니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그래서 자꾸만 폐하를 설득하려고 하지만, 끝내 야심을 버리지 않으시니 그것이 큰일입니다.”

왕맹은 말끝에 긴 한숨을 빼어 물었다.

연못에서는 잉어가 뛰어놀았다. 왕맹과 석정의 그림자가 물속에 거꾸로 비쳐 흔들리고 있었다. 어디선가 또 다시 뻐꾸기가 울었다. 저 멀리 태학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한가로운 오후의 숲속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엄광용 약력>

-1954년 경기도 여주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0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벽 속의 새」가 당선되어 문단 데뷔.

-창작집 『전우치는 살아 있다』, 장편소설 『황제수염』, 『사냥꾼들』, 『꿈의 벽 저쪽』, 『사라진 금오신화』 등이 있음.

-2015년 역사소설 『사라진 금오신화』로 류주현문학상 수상.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novelky

엄광용 작가  koreanewstimes@k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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