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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한 힘강화바다에는 시인이 산다
  • 유성문 여행작가
  • 승인 2017.12.01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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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늙어 보인다/ 하늘 길을 가면서도 무슨 생각 그리 많았던지/ 함부로 곧게 뻗어 올린 가지 하나 없다/ 멈칫멈칫 구불구불/ 태양에 대한 치열한 사유에 온몸이 부르터/ 늙수그레하나 열매는 애초부터 단단하다 (…) 보라/ 가을 머리에 인 밝은 열매들/ 늙은 몸뚱이로 어찌 그리 예쁜 열매를 매다는지/ 그뿐/ 눈바람 치면 다시 알몸으로/ 죽어 버린 듯 묵묵부답 동안거에 드는 -함민복 ‘감나무’

강화도 한 바닷가에서 만난 감나무. 붉은 빛을 주렁주렁 매단 자태는 가히 장엄할 정도지만, 그 빛은 단지 ‘마지막 빛’일 뿐이다. 우듬지에 매달린 둥지가 오히려 애잔해 보일 정도로. ⓒ유성문

오랫동안 내 마음을 한껏 사로잡았던 소나무는 이제 서서히 감나무에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 사철 푸른 소나무의 의연함이야 따를 바가 없겠지만, 어떨 때는 그 고식적인 의연함이 오히려 눈에 거슬리기도 한다. 반면 감나무는 한 해의 인생살이에도 파란만장한 곡절을 엮어낸다. 희고 노란 꽃에서부터 붉디붉은 열매에 이르기까지는 말할 것도 없고, 푸른 잎을 떨구어낸 다음 드러나는 오롯이 검은 심재는 ‘하늘 길을 가면서도 무슨 생각 그리 많았던지 함부로 곧게 뻗어 올린 가지 하나’ 없으니, 그 짙은 영혼의 음영이 적조한 이의 마음을 울린다.

게다가 요즘은 시골 일손이 턱없이 부족한지라 어지간한 감나무는 입동을 훌쩍 넘기고도 가지가 꺾이도록 단심(丹心)을 매달고 있기 일쑤다. 까치밥 정도가 아니라, 잘하면 그 붉은 열매는 성탄트리의 전구가 되기도 한다. 스산하기만 한 겨울의 입구에서 그 붉은 빛은 행자에게 위로를 던져준다. 하지만 그 빛은 축복이 아니라 어둠을 보여준다. 탄생이 아니라 소멸을 비춰준다.

강화의 고인돌에서 이 땅의 새벽을 만난다. 묵묵한 고인돌은 마지막 시간에도 새로운 시간을 가리킨다. ⓒ유성문

해마다 세밑이 되면 나는 무슨 ‘의무방어전’이라도 치르듯이 강화도로 간다. 염하물목 건너, ‘강화도령’ 철종이 지게작대기를 지분거리며 놀았다는 용흥궁이며, 적석사의 낙조이거나 황청포구의 쓸쓸함, 석모도의 빈 소금창고들과 동막의 바랜 갯벌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저무는 시간을 깨우치지 않는 것은 없다. 그 저무는 시간 속에서 만나는 쓸쓸함이야 한 해의 끝에서 누리는 마지막 호사일 뿐.

강화도의 북녘 창후리 선착장에서 배로 15분 거리(그러나 이는 만조일 때이고, 간조일 때는 돌아서 가야 하니 50분이 넘게 걸린다)에 교동도가 있다. 아니, 배로 15분 거리에 있었다. 지금은 강화도와 교동도를 잇는 연륙교가 세워져 곁눈으로나마 바다구경을 할 틈조차 없이 단 몇 분 안에 차로 민통선 바다를 건넌다. 석모도도 마찬가지다. 예전 그 바다를 지날 때 뱃꼬리를 끈질기게 따라붙던 ‘거지갈매기’의 애교 섞인 구걸은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새 길을 찾아 꾸역꾸역 밀려드는 행각들에게 제 길을 내어주고 말았다. 다리가 놓이면서 ‘딸린 섬’에서 그야말로 ‘섬 속의 섬’이 된 지금, 섬들은 평등해졌을까.

서로 자기 쪽으로 당기는 힘이 아니라/ 서로 연결하려는 의지로 다리는 존재한다 -함민복 ‘다리의 사랑1’ 전문

예전 섬에서 섬으로 다니던 바닷길. ‘섬이 하나면 섬은 섬이 될 수 없다’(함민복 시집 ‘말랑말랑한 힘’ 후기 제목). ⓒ유성문

어쨌거나 다리를 건너 교동도로 간다. 교동도는 조선왕실 전용 유배지다. 연산군이 이 섬에 유배되어 생의 마지막을 보냈고, 광해군과 임해군, 고종 황제의 조카 이준용도 교동도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희대의 폭군’이라는 연산군은 훈구대신들의 반정에 밀려 1506년 9월, 교동도에 유폐되었다가 두 달 후인 11월, 전염병으로 죽었다. 족히 50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그의 적거지(謫居址)로 추정되는 곳에는 빈 터와 옛 정자(井字)우물 하나만이 남아있다.

괴이하게도 폐쇄된 우물 속에는 오동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으며, 누군가 그 오동나무 둘레에까지 철조망을 쳐놓았다. 아무리 ‘오동나무가 우뚝한’ 교동도(喬桐島)라지만 폐왕의 폐정까지 파고든 오동나무와, 그마저 가둬버린 철책의 의미를 나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쇠잔하여 검붉은 감나무이거나 우물에 발을 빠트린 오동나무이거나, 그 모든 것들이 보여주는 퇴락의 의미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이제 해는 지고 ‘눈바람 치면 다시 알몸으로 죽어버린 듯 묵묵부답 동안거에’ 들어야 할 시간일 뿐이니.

교동읍성 안에는 ‘연산군잠저지(燕山君潛邸址)’ 비가 서있는 연산군 적거지가 있다. 일부 학계에서는 이곳이 연산군의 적거지가 아니라 광해군의 적거지라는 설을 제기하고 있다. 또 ‘잠저지’라는 표기도 ‘유배지’나 ‘위리안치소(圍籬安置所)’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산군이든 광해군이든, 잠저지든 위리안치소든 섬은 이미 벗어날 수 없는 풍경으로 유배를 완성한다. ⓒ유성문

강화도의 남녘 동막엔 함민복 시인이 산다. 어린 시절부터 지겨운, 그러나 익숙해진 가난 속에 살아온 시인은 1996년 대산문화재단에서 창작지원금 500만원을 받은 것을 기화로 동막으로 흘러들어 왔다. 모처럼 거머쥔 목돈이라지만 서울에서는 도저히 정처를 마련하기 어려워 이곳에서 보증금 없는 월세 10만원짜리 폐가를 얻어 살기 시작한 것이다. 매일같이 동막의 바닷가에서 갯것과, 갯것에 기대 사는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어느새 시인은 그들과 한통속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주는 ‘말랑말랑한 힘’에 빠져들었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발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흙이 말랑말랑 가는 길을 잡아준다// 말랑말랑한 힘/ 말랑말랑한 힘 -함민복 ‘뻘’ 전문

생활비가 떨어지면 방 가운데 빨랫줄에 걸린 시 한 편을 떼어 출판사로 보내 받은 몇 만원으로 버텼다. ‘시 한 편에 삼만원이면/ 너무 박하다 싶다가도/ 쌀이 두 말인데 생각하면/ 금방 마음이 따뜻한 밥이 되네’(‘긍정적인 밥’)라던 시인은 몇 년 전 결혼해서 인삼가게를 열었다. ‘동갑내기 신랑신부의 합친 나이가 100살’이라는 그야말로 만혼(晩婚)이었다. 그래도 시인은 행복하다.

“자다가 가위에 눌려도 조금만 소리를 내면 깨워줄 아내가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합니다. 부부는 두 개의 심장으로 살아가는 느낌이죠. 혼자 살 때는 가위에 눌리면 성경이나 불경부터 찾았어요.”(국제신문 인터뷰에서, 2013.1.29자)

시인은 얼마나 더 말랑말랑해지려는 것일까.

동막갯벌의 노을. 동막해변에는 함민복 시인의 시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가 새겨진 석판이 있다. 강화라이온스클럽 회원들이 2011년에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굳이 시비를 세우지 않고 평평한 원형 석판에 시를 새긴 이유가 뭘까. 시인은 돌에 글 새기는 것을 비판하는 내용의 시 ‘돌에’를 쓴 적이 있다. 또 여러 편의 시에서 문명화의 상징인 ‘수직’을 비판했다. 이런 연유에서 시비 제작을 극구 사양했지만, 강화라이온스클럽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 바로 ‘수평한 시비’란다. ⓒ유성문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 쉽게 만들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물컹물컹한 말씀이다/ 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 조금 무쉬 한물 두물 사리/ 소금물 다시 잡으며/ 반죽을 개고 또 개는/ 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 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함민복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전문

 

<필자 약력>

-여행작가

-편집회사 투레 대표

-한국기록문화연구협동조합 이사

-<문향을 따라가다>(어문각) 간

유성문 여행작가  meonbi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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