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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쓰는 한자말> 염치 불고하다
  • 김선경 경향신문 차장
  • 승인 2017.11.1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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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 불고하다

 ‘일본 의원은 염치가 있다?’ 오래전 일본 정치권이 국민과 고통을 나누기 위해 자진해서 세비를 삭감한다는 내용을 다룬 한 일간지의 기사 제목이다. 그런데 나는 개인적으로 국회의원들이 세비를 얼마나 쓰느냐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국민들을 위해 제대로 일만 한다면 세비 많이 쓴다고 탓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세비만 축내는 염치없는 의원들이 문제일 뿐이지…. ‘염치’와 관련해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바로 ‘염치불구’다. “염치불구하고 좋게 봐달라” “염치불구하고 부탁드립니다” 등은 신문이나 방송에서 쉽게 보고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하지만 ‘염치불구하고’는 바른말이 아니다.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염치’다. 그런데 이 ‘염치’ 뒤에 흔히 쓰는 ‘불구하다’는 “(무엇에) 얽매여 거리끼지 아니하다”를 뜻하는 말이다.

 ‘몸살에도 불구하고’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인데도 불구하고’처럼 항상 ‘~에도’ ‘~음에도’ ‘~ㄴ데도’ 따위와 어울려 쓰인다. 보다시피 ‘불구하다’ 앞에는 바로 명사가 올 수 없다.

 ‘염치 불구하다’의 바른 표기는 ‘염치 불고하다’이다. ‘불고하다’는 ‘~을 돌아보지 아니하다’란 뜻이다. ‘염치 불고하고’는 염치를 돌아보지 아니한다, 즉 ‘염치없지만…’이란 의미가 된다. 본래는 ‘불고(不顧)염치’ ‘불고염치하다’이다. 명사 ‘불고염치’, 동사 ‘불고염치하다’는 한 단어로 붙여 쓴다. ‘불고염치하다’의 어순을 바꾸어 쓰더라도 ‘염치(를) 불고하다’라고 쓰는 게 맞다. 우리가 흔히 쓰는 ‘체면 불구하고’도 ‘체면 불고하고’가 바른말이다.

 

옥석구분

선거철이면 정치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 말고 ‘옥석구분’해서 자신을 뽑아달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 정치에 문외한인 나는 그들이 말하는 내용이 다 비슷비슷해 옥석을 가리기가 쉽지 않다.

그들의 말대로 ‘옥석구분’을 잘하면 정치인을 잘 뽑을 수 있을까? 서민들의 힘겨운 살림살이가 좀 나아질 수 있을까? 단언컨대 결단코 아니다. 심지어 우리는 아무도 선택할 수 없게 된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 격으로 공연히 필요한 사람까지 잃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옥석구분을 옥(玉)과 돌(石)을 구분(區分)한다. 즉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한다’란 뜻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한자말로 ‘옥석구분’을 ‘玉石區分’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옥석구분’은 그런 뜻이 아니다. ‘옥석구분’의 원래 한자는 ‘玉石俱焚’이다. ‘玉石俱焚’은 옥(玉)과 돌(石)이 함께(俱) 탄다(焚)는 뜻이다. 중국 고전 <서경(書經)> ‘하서(夏書)’의 “곤륜산에 불이 붙으면 옥과 돌이 함께 불타 없어진다”는 구절에서 나온 사자성어이다.

이는 옳은 사람이든 그른 사람이든 구별 없이 모두 재앙을 받음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와는 정반대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옥석구분’의 본래 의미를 살리고 싶다면 ‘옥석구분이 되지 않도록 후보자를 잘 골라야 한다’처럼 써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해서 이와 비슷한 뜻으로 쓰려면 ‘옥석을 구분한다’고 하든지, 아니면 ‘옥석을 가린다’라고 해야 한다. 이도 저도 싫다면 사자성어로 ‘옥석구분’을 쓰는 대신 최소한 ‘옥석 구분’처럼 띄어쓰기라도 해야 한다.

 

팔방미인

모처럼 아내와 단둘이서 외식을 했다. 음식점 차림표에 있는 ‘아구찜’을 시켰다. 식사 중 아내가 갑자기 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자격증도 여러 개고, 재주도 참 많아. 정말 팔방미인인데, 왜 안정된 직장을 못 구하는지 모르겠어.” 안타까워하는 아내에게 내가 조심스럽게 한마디 건넸다. “회사는 팔방미인이 아니라 그 분야의 전문가를 원하기 때문이지.”

 아내가 얘기한 ‘팔방미인’과 내가 말한 ‘팔방미인’은 글자는 같으나 의미가 서로 다르다. ‘팔방미인’은 “여러 방면에 능통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공부면 공부, 노래면 노래, 운동이면 운동, 그는 정말 못하는 게 없는 팔방미인이다”에 쓰인 팔방미인이 그런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렇게 알고 있고 아내도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이다.

 그런데 ‘팔방미인’엔 이와 반대되는 의미도 있다. “한 가지 일에 정통하지 못하고 온갖 일에 조금씩 손대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 역시 ‘팔방미인’이다.

즉 재주는 있지만 남보다 특별히 뛰어난 게 없어 있으면 도움은 되지만 없어도 그다지 아쉽지 않은 사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이처럼 ‘팔방미인’은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도 쓰인다. 아!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기를. ‘팔방미인’의 뜻이 그렇다는 것이지, 아내의 친구가 그런 사람이라는 뜻으로 폄하해 말한 것은 아니니. 아무쪼록 올해는 일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한국 경제가 꽃피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참, 머리 폭이 넓고 입이 큰 물고기를 일컫는 말은 ‘아구’가 아니라 ‘아귀’다. 따라서 ‘아구찜’이 아니라 ‘아귀찜’이 바른말이다.

 

필자약력

김선경, 현 경향신문 교열부 차장, 현 한국어문기자협회 부회장. 스포츠서울 스포츠칸 교열기자 ‘알고 쓰는 말글’ 연재(2012~2016년)

김선경 경향신문 차장  koreanewstimes@k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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