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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광개토태왕> 1부5장 동맹제 - 31부 광야에 부는 바람 ① - 5장 동맹제
  • 엄광용 작가
  • 승인 2017.11.13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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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궁궐에서 보낸 사신이 하가촌을 다녀갔다. 하대용의 딸 연화가 왕자비로 정해졌으므로, 10월 동맹제 이전에 국내성으로 와서 혼례를 올리라는 어명이 있었다.

국내성에서 온 호위 군사들만도 기백이었다. 이젠 왕자비로 간택되었으므로, 연화는 그에 준하는 보호를 받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가촌 곳곳에는 호위 군사들이 보초를 섰으며, 특히 하대용의 저택은 철저한 경비태세가 갖추어져 있었다.

국내성으로 떠날 채비를 하느라 하가촌은 분주했다. 때마침 하대용의 장남 하명재(河明載)가 서역으로 대상단을 이끌고 갔다가 돌아온 지 불과 보름밖에 안 된 상태였다. 서역에서 많은 보물과 진기한 물건들을 구입해온 것이 있어 국내성으로 가져갈 봉물은 더욱 다채롭고 푸짐했다. 사슴 문장이 들어 있는 금제 화살통, 금박으로 손잡이를 만든 환두대도, 사슴뿔 형태의 금제 각배 등은 북방 초원지대에서 가져온 귀한 물건들이었다.

“이 금제 보물들은 특별히 대왕 폐하와 태자 전하, 왕자님께 선물로 드리면 좋겠지요?”

하명재가 아버지 하대용에게 의향을 물었다.

“멀리서 어렵게 구해 가져온 보물이니, 그리 하려무나. 모두가 네 사랑하는 누이동생을 위한 일이니. 그나저나 이번에 국내성으로 무엇을 가져가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구나.”

하대용은 벌써부터 마음속으로 근심하던 바를 털어놓았다.

“아무래도 종마장을 경영하고 있으니, 말이 어떨지요? 대왕 폐하가 타실 명마를 포함하여 기마대에 필요한 말들을 보내는 것이 좋을 듯싶습니다. 또한 왕실 재정에 도움이 될 금괴도 의미가 있을 것 같구요.”

“그래, 그것이 좋겠다. 말은 몇 두나 보내고, 금괴는 또 얼마나 보내야 할지 깊이 한 번 생각해보자. 북방 초원로를 따라 서역으로 가다 보면 금이 많은 나는 산이 나온다고 하였지?”

“네, 아버님! 그 산을 알타이라 하옵니다. 그 지역에 살던 돌궐족들이 ‘알탄’이라고 한 데서 유래되었는데, 알탄은 바로 ‘황금’을 뜻하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 높은 산지 도처에 금맥이 묻혀 있는데, 그 금 알갱이들이 계곡물에 씻기면서 모래와 함께 섞여 흘러내립니다. 그래서 그 지역 사람들은 금광을 개발해 땅굴을 파서 금을 캐내기보다는 모래에서 쉽게 금을 채취하는데, 이를 ‘사금(砂金)’이라 부릅니다. 이번에 초피와 호피, 곰가죽 등을 팔아 많은 금괴와 바꿔왔으니 전에 비축해둔 것까지 합하면 왕실에 보낼 양은 충분하리라 봅니다.”

하명재는 이제 하대용을 이어 2대 대상으로 우뚝 서 있었다.

“음, 그래! 네가 일찍 돌아오길 잘했구나. 지난 전쟁으로 국고가 피폐해졌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상단에서 왕실에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야. 이번 국혼을 치르고 나면 이련 왕자의 위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고, 왕실이 안정을 되찾으면 고구려의 기강도 바로 서게 된다. 여기에 또한 백제와의 전쟁에서 서남방의 땅을 회복하게 된다면 서해와 발해만을 통해 산동까지 해로가 열릴 것이다. 우리 상단도 이젠 초원로를 통해 서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해로를 통해 저 중원과의 교역도 활발하게 진행해야 되지 않겠느냐? 언젠가 이련 왕자가 왕위를 이어받을 날이 오겠지. 그때를 대비하여 우리는 부지런히 재화를 비축해두어야 한다. 우리 고구려가 강국이 되려면 군사력만 키워서 될 일이 아니다. 당연히 군사력을 키우려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므로, 경제력이 뒤따라주지 않으면 안 될 것이야.”

하대용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새겨두었던 바를 아들 하명재에게 털어놓았다. 그는 이번 국혼 준비로 마음이 약간 들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었다. 딸이 왕자비가 되는 마당이니,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노릇이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님, 이번에 가져갈 봉물이 너무 과대하면 우리 하가촌이 구설수에 오를까 염려가 됩니다.”

“구설수라니?”

“…이런 말 하긴 뭣하지만.”

하명재는 잠시 망설였다.

“너와 나 둘 사인데 뭘 망설이느냐?”

“혹시 백성들 사이에 재물을 주고 딸을 팔았다느니, 하는…….”

하명재는 그러면서 슬쩍 아버지 하대용의 눈치를 살폈다.

“너도 그 생각을 했구나. 나도 한편으로 그런 생각이 들긴 했다만, 이번 백제와의 전쟁에서 패하는 바람에 국내성 왕실 재정이 말이 아닐 것이다. 이런 때 돕지 않으면 백성의 도리가 아니다. 우리는 도울 만하니까 도울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라. 그러니 말도 한 이백 두 준비하고, 금괴도 여러 수레에 실을 만큼 싣도록 해라. 말은 더욱 새끼를 쳐서 기르면 될 것이고, 곡간이 비면 다시 채우면 되지 않겠느냐? 세상의 이치란 비워야 채울 수 있는 거다. 배고 고파야 밥이 들어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사람은 배가 부르면 딴 생각을 하게 되고, 재물은 곡간에 가득차면 곧 썩거나 녹 쓰는 법이다. 재화란 돌고 돌아야 세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것이야.”

하대용의 말에, 그때서야 하명재도 적이 안심이 되는 듯 밝은 얼굴이 되었다.

이렇게 부자가 국혼 준비로 바쁠 때, 역시 안에서는 여자들끼리 또한 바지런하게 움직였다. 하대용의 아내와 하명재의 아내, 고부간에도 연화의 옷이며 이불이며 국내성으로 가져갈 혼수품을 챙기느라 부산하였다. 결혼 당사자인 연화도 옆에서 거들면서 어머니의 가르침을 받기에 정신이 없었다. 중원에서 들여온 고급 비단으로 옷을 짓느라 하가촌 여자들이 하대용의 저택으로 몰려들어 연일 북적댔다.

이처럼 하대용의 저택에서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오직 한 사람 추수만은 우울한 기색이 얼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남몰래 연화를 짝사랑하고 있었는데, 왕자비로 간택된 마당이니 이제는 완전히 그런 연모의 마음마저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사랑이라는 것은 도무지 지울 수 없는 어떤 것인 모양이었다. 그리움이라는 마음의 그림자는 지우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새록새록 가슴에 화인처럼 새겨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추수는 괴로웠다. 연화가 국내성으로 떠나게 될 날이 가까워질수록 그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저 그는 저 혼자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런 중에 연화를 말에 태워 멀리 도망가는 상상도 수십 번씩이나 하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추수는 연화와 가까이에 있으면서 그저 먼빛으로나마 바라보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언감생심(焉敢生心), 그는 연화에게 자신의 연모하는 마음을 고백할 수 없었다. 다만 가까이에서 연화를 볼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큰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럴 수도 없는 처지가 되었다. 어차피 며칠 후면 연화는 국내성으로 떠나야 한다는 것이 명명백백한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다.

때마침 국내성으로 가져갈 봉물이며 하가촌에서 짐꾼으로 따라갈 인원들이 배정되었다. 하대용 부부가 연화와 함께 동행하고, 대신 하명재 부부는 하가촌에 남아 살림을 꾸리기로 했다. 또한 말 2백 두와 봉물을 실은 10대의 수레를 끌고 갈 인력으로, 종마장에서 말 사육의 책임을 맡고 있는 호자무와 20여 명의 사육사 및 상단이 따라가기로 했다. 그 중 상단은 하명재와 함께 초원로를 따라 서역까지 다녀온 무술이 뛰어난 자들로 가려 뽑았다.

은근히 그 상단에 자신의 이름이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던 추수는 실망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 고민을 거듭한 끝에 그는 연화를 따라 국내성에 가서 왕자 이련의 무술을 가르치는 사범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왕자비가 된 연화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국내성으로 갈 상단에서 제외된 추수는 그런 희망마저 사라지자, 끝내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그는 앞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스승 을두미에게 달려갔다.

“스승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추수는 숨찬 목소리로 을두미 앞에 덥석 무릎을 꿇었다.

“숨이나 돌리고 얘기하거라.”

“저도 이번 국내성으로 가는 상단에 참여시켜 주십시오.”

“너는 안 된다.”

을두미는 슬쩍 몸을 틀며 추수의 눈길을 피해 먼 산을 바라보았다.

가을 하늘은 푸르렀고, 너른 들판으로 금빛 화살촉 같은 햇빛을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 햇빛을 받고 알맹이가 찬 곡식들은 더욱 단단해져 가고 있었다.

“스승님!”

추수가 안타깝게 소리쳤다.

“날씨가 좋구나. 가을볕에 곡식은 무르익고, 전쟁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평화로운 세상이겠느냐?”

을두미는 추수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딴소리만 해대고 있었다.

“스승님, 저를 국내성으로 보내주십시오. 이련 왕자님의 무술 사범이 되도록 추천을 해주십시오.”

추수는 이미 결심한 바가 있어 단호하게 말했다.

“무엇이? 무술 사범?”

“네, 자신 있습니다.”

“추수야! 내가 네 맘을 모르지 않는다. 며칠 전 하대인께서 너를 이번 국내성 행차에 상단의 책임자로 맡기려고 하시는 걸, 내가 말렸다. 네가 이번 상단의 책임을 맡으면 안 된다는 걸 내가 알기 때문이다. 너는 국내성에 가면 어떤 이유를 대서든지 이 하가촌으로 돌아오지 않을 작정이 아니었더냐?”

“스승님께서 그걸 어찌……?”

“네 마음을 내가 모르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 너는 오래 전부터 연화를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더냐? 그래서 이번에 이련 왕자의 무술 사범이 되겠다고 자처하는 것도 실은 연화와 가까이에 있고 싶어서가 아니겠느냐? 멀리 떨어져 있으면 마음도 멀어지는 법, 네 신상이 편하려면 이번 기회에 깨끗이 연화를 잊는 것이 좋다. 국내성에 가면 네 마음만 더욱 괴롭다는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느냐?”

“스승님!”

추수는 무릎을 꿇은 자세로 을두미 앞에 엎드렸다. 그는 가슴 저 안에서 치밀고 올라오는 울음을 참을 길이 없었다. 그는 어깨를 들먹이며 울었다. 안타까움과 서러움이 한데 엉켜 북받쳐 오르는 울음이었다.

“보기 싫다. 사내 녀석이 그만한 일로 눈물을 보이다니! 못난 녀석!”

을두미는 측은한 눈길로 흔들리는 추수의 어깨를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다시 먼 하늘을 쳐다보았다.

한참 침묵이 흐른 뒤 추수는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들어 스승을 바라보았다.

“스승님께서 저에 대한 생각이 그렇게 깊으신 줄 몰랐습니다. 부끄럽습니다.”

“그러면 이제 연화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있겠느냐?”

“……!”

“왜 말을 못하느냐?”

“마음은 종이처럼 접을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 뭐라 했느냐?”

“마음이 나무막대기라면 칼로 싹둑 자르겠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마음을 어찌 일도양단하듯 자를 수 있겠습니까? 스승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국내성으로 보내주십시오.”

추수는 이마를 방바닥에 대고 찧듯이 머리를 숙였다.

“더 이상 네 꼴이 보기 싫으니 썩 물러가거라.”

을두미는 마구 호통을 쳐서 추수를 방에서 쫓아 내보냈다.

국내성 행차를 하루 앞두고 하대용이 추수를 불렀다.

“대인 어른! 부르셨습니까?”

추수가 허리를 굽혔다.

“호자무가 아무래도 여기 남아야겠다. 그동안 종마장 관리할 일손이 부족하니, 호자무가 필요해. 추수, 네가 이번에 국내성으로 가는 말 사육사와 상단의 총책을 맡아 지휘하거라.”

하대용의 말에 추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네? 스승님께서 허락지 않으실 텐데요?”

“을두미 선생께는 이미 내가 허락을 받았다. 염려 말거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추수는 가슴이 몹시도 두근거렸고,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읍하였다. 며칠 전 호되게 야단을 치던 을두미가 하대용에게 특별히 부탁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다음날 아침 국내성 행차를 하는 행렬이 하가촌을 출발하기 직전에, 을두미는 추수를 불러 서찰을 하나 주었다.

“이련 왕자에게 보내는 추천장이다. 성심껏 모셔야 하느니라. 이제 연화는 곧 왕자비 마마가 되느니라. 엄연히 네가 상전으로 모셔야 하니, 사심을 버리고 충심을 다하도록 해라.”

을두미는 추수의 어깨를 투덕거려 주었다.

“스승님, 고맙습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을지…….”

“은혜는 무슨? 내가 너를 보내는 것은 이련 왕자 때문이 아니라, 연화 때문이다. 이제 왕자비 마마가 되시면 궁궐에서 많이 외롭고 힘들 것이다. 물론 하가촌에서 부리던 여종이 따라가기는 하지만, 네가 위로를 해드려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연화의 신변에 간혹 위험이 닥칠 일도 있을지 모르니, 그때를 대비해 너를 보내는 것이다. 충성을 바쳐 섬기거라.”

추수는 을두미에게 큰 절을 올렸다.

“충심을 다해 받들겠습니다.”

절을 하고 일어서는 추수는, 벌써 마음이 둥둥 떠서 국내성에 가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6

 

백제 태자 수가 대왕 구와 독대를 하고 있었다.

두 달 전 수곡성 전투에서 고구려에 대승을 거두고 돌아온 대왕 구는 아직까지도 그 통쾌한 기분을 즐기고 싶었다. 그래서 태자 수를 바라보는 눈빛이 잔뜩 의욕에 차서 광채를 발했다.

“그래, 기쁜 소식이라도 가져온 것이냐? 태자의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구나.”

대왕 구는 기대감으로 가득 찬 눈길을 태자에게 보냈다.

“폐하! 지금 고구려는 왕자 이련의 혼례와 동맹제를 연계하여 대축제를 기획하고 있다 하옵니다. 고구려왕은 수곡성 전투에서 패하고도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하옵니다. 이 기회에 평양성을 쳐서 패수(浿水: 대동강) 이남을 확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혈기 넘치는 태자 수의 얼굴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바라보던 대왕 구는 빙그레 미소를 짓더니 마침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수곡성 전투 이후 우리 백제군의 기세를 살려 평양성을 공격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 고구려보다 무서운 것이 화북을 통일한 진나라의 부견이다. 작년에 연나라를 멸한 후 기세가 등등하여 요서까지 노리고 있다. 잔나라의 장군 왕맹(王猛)이 연나라를 공격할 때 연의 태부 모용평(慕容評)은 고구려로 망명했다. 그런데 고구려왕 사유는 귀화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그를 결박해 진나라 부견에게 보냈다. 사냥꾼도 품속으로 날아드는 새는 잡지 않는다고 했다. 헌데 얼마나 화북의 맹주 진나라가 두려웠으면, 저 스스로 찾아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모용평을 부견에게로 보냈겠느냐? 이는 고구려가 진나라와 우호관계를 맺자는 의도가 분명하다. 이처럼 고구려가 진나라와 손을 잡게 되면 우리 백제는 고독해진다. 만약 두 나라의 우호관계가 성립된다면, 고구려는 일단 서북방의 위협이 사라지면서 남진을 노리게 된다. 고구려는 신라와 우호적인 반면 우리 백제와는 적대 적 관계가 되었다. 지금 고구려는 약하지만 인접한 나라이므로 우리에겐 가장 위협적인 적이다. 따라서 고구려를 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요서 지역의 안전을 위해서는 강남의 진나라(東晋)와 우리 백제가 우호관계를 맺어 부견의 세력을 북방에 묶어둘 필요가 있다. 강남의 진나라 힘을 빌려 화북의 진나라가 더 이상 요서 지역을 넘보지 못하도록 한 연후에 고구려 평양성을 치는 게 순서다.”

중국의 5호16국 혼란기에 요서(遼西)와 진평(晉平) 2군을 둔 백제왕 구의 고민은, 장강을 두고 중원이 북쪽의 전진과 남쪽의 동진으로 세력이 양분되면서 사실상 요서 지역의 경영에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예전에 요서 지역은 중국 영토였으므로, 요동의 연나라까지 멸망시킨 전진이 요서로 화살을 돌릴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다 동진 또한 강북의 전진을 위협하면서 그 이동(以東)의 요서 지역으로 진출을 꾀할 경우 도무지 대책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상 새롭게 일어선 중국의 두 나라에 비하면 연나라 모용황 때문에 세력이 급격히 약화된 고구려는 큰 부담이 되지 않았다.

“아바마마! 그러하오나 고구려를 칠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 아쉽습니다. 이런 기회가 아무 때나 오는 것이 아니질 않사옵니까?”

이미 30대 중반을 넘어선 태자 수는 대왕 구로부터 철저하게 왕자(王者)로서의 수업을 받아왔고, 전쟁터에 나가서도 크게 공훈을 세운 바 있어 식견과 지략이 뛰어나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대왕 구는 아들 수를 태자로 책봉한 이후 세상을 두루 경험할 수 있도록 요서 지역으로 보냈었다. 요서 지역은 태자 수의 대부와 외삼촌이 각기 요서와 진평 2군을 나누어 경영하고 있었다.

태자 수는 요서에 머물면서 산동에서 해상 무역을 하는 백제 상인들의 상선을 타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가 중원 땅을 두루 돌면서 문물을 익혔다. 그 무렵의 일이었다. 장강 중류의 어느 한 부락에 이르렀을 때, 그는 칼을 만드는 대장간에서 신기한 것을 목격했다. 칼을 벼린 후 글자를 새기고, 그 테두리에 금물을 입히고 있었다. 금선이 들어간 글자들은 칼을 진기한 보물로 느껴지게 했다.

“칼에 글자를 새기는 것도 진기한데, 글자 테두리에 금물까지 입혀서 무엇에 쓰려는 거요?”

요서에 머물면서 배운 말로 태자 수가 어설프게 묻자, 대장장이는 그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아무 소리도 않고 자기가 하던 일에만 열중하였다.

대장간은 일하는 사람들로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열심히 풍구를 돌려 불을 괄게 피우는 사람, 불속에 넣었던 시뻘건 쇠를 물에 담갔다가 널찍한 쇠판에 올려놓고 쇠망치로 두드리는 사람, 각자들 맡은 일로 정신이 없었다. 대장간은 불을 늘 피우기 때문에 웃통을 벗어 제치고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모두 얼굴이며 등이며 가슴이 땀으로 범벅되어 불과 쇠를 다루고 있었다.

그러니 태자 수가 함부로 말을 붙여보기도 어려웠다. 일하는 사람 중에서 글자를 새겨 완성된 칼에 금물 테두리를 입히는 사람이 가장 여유가 있어 보여 슬쩍 말을 걸어본 것인데,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그는 무안해서 더 이상 물어볼 수도 없었다.

생각다 못한 태자 수는 수하를 시켜 그 부락의 주점을 찾아가 술과 안주를 대장간으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다. 얼마 후 술과 안주가 대장간으로 날라져 왔다.

“여러분, 힘들여 일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일도 좀 쉬어가면서 해야 능률이 더 오르지 않겠소? 여기, 술과 안주가 있으니 목이라도 좀 축이고 하시오.”

태자 수가 이렇게 소리치자, 칼에 금물을 입히던 대장장이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일어섰다.

“거, 젊은이가 예의 한 번 바르군! 여보게들 이 젊은이의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한 잔씩 들고 하세나.”

대장장이가 소리치자 그때서야 모두 일손을 멈추고 술과 안주가 있는 탁자로 모여 들었다.

“어르신들! 저도 글자에 금박 입힌 보검을 주문하고 싶습니다만…….”

태자 수가 연장자 순으로 술을 따라주며 간청했다.

“외지에서 온 것 같은데, 어디서 온 누구요?”

대장장이가 태자 수의 아래위를 훑어보며 물었다.

“저는 저 동쪽 나라 백제에서 왔습니다. 이름은 여수라고 합니다.”

“보기에 귀공자 상인데, 백제 왕족이시오?”

대장장이가 자세를 바로 잡으며 정중하게 물었다.

“백제 왕족은 부여의 성을 따라 여(餘) 자를 쓰지요. 백제 대왕과는 종친이라고 할 수 있지요.”

태자 수는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것이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을 것 같아 슬쩍 돌려서 말했다.

“백제 왕실의 종친이면 공자시구먼! 그래 주문하는 보검은 어디에 쓰시려오?”

“백제 대왕과 태자에게 선물로 드릴까 합니다. 환두대도에 글자를 새기고 금박을 넣은 보검과 단도를 각기 하나씩 부탁드립니다.”

태자 수는 보검을 부왕에게, 그리고 단검은 자신이 갖고 싶었다.

“우리가 만드는 보검은 백련철검(百鍊鐵劍)이오. 하여, 만드는 데 보름은 잡아야 하오.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겠소?”

“백련철검이라면?”

“백 번 단련하여 만든 강철검이라, 이 말이오.”

“백 번씩이나?”

태자 수는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쇠는 아주 오래, 자주 두드릴수록 강해지는 법이라오. 뜨거운 불에 달궜다가 찬물에 식혀서 망치로 때려 단련을 해주어야 하지요. 극과 극을 자극시켜 날카로운 긴장감을 주는 면에서는 사람이나 쇠가 다 같은 이치 아니겠소? 사람도 행불행을 겪으며 온갖 고생을 해야만 심신이 단련되어 강해지는 법이지.”

대장장이의 말에는 경륜이 있어 보였다. 오래도록 쇠 다루는 일을 해오다 보니 저절로 어떤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부탁합니다.”

태자 수는 대장장이에게 금붙이를 내놓았다.

“허어?”

금붙이를 보자 대장장이는 안색이 달라졌다.

“잘만 만들어주시오.”

“그 점은 염려 붙들어 매시오. 최고의 보검을 만들어 드리겠소. 헌데 백제는 어떤 나라요?”

대장장이가 문득 물었다.

“우리 백제는 예의를 숭상하고, 예술을 중히 여기지요.”

태자 수는 무심코 그렇게 말했다.

“예술이라 하면?”

“각종 기예에서부터 무술까지도 예술로 승화시켜 생각하지요. 사람이 손으로 만드는 물건들에도 예술적 가치를 두어, 특히 기능을 가진 사람들을 예우하지요.”

이러한 태자 수의 말을 들고 대장장이는 눈빛을 빛내며 오래도록 머리를 주억거렸다. 그 미묘한 눈빛에는 어떤 감화 같은 감정이 실려 있는 듯했다.

“공자를 위해 내가 특별히 명검을 만들어 드리리다.”

대장장이가 말했다.

“보검을 찾으러 올 때 섭섭하지 않게 사례하리다.”

태자 수는 그 자리에서 보검 이외에도 백제 병사들의 무기로 쓸 칼과 창을 대량으로 주문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배를 타고 장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장강은 바다처럼 넓었다. 오나라 손권과 촉나라 유비의 연합군이 위나라 조조의 대군을 물리쳤다는 적벽도 가보았다.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과연 절경이었다.

이렇게 장강을 두루 돌아 태자 수가 다시 보검을 주문한 대장간에 들렀을 때, 대장장이가 그를 조용한 곳으로 안내하더니 넙죽 절부터 올리는 것이었다.

태자 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왜 이러시오?”

“백제국의 태자님이신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저희는 흉노의 유민입니다. 천산산맥 너머에 살면서 철광석을 캐던 사람들인데, 난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오다 이곳에 정착했습니다. 철을 다루는 기술이 있어 대장간을 열고 겨우 생계를 부지하고 사는데, 이곳 태수의 수탈과 작폐가 심하여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부디 저희들을 백제로 데려가 주십시오. 강철을 주조하여 무기를 만들면 백제는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대장장이는 그러면서 대장간에서 일하는 자들과 그들의 식구들까지 합하면 30여 명은 된다고 하였다. 태자 수는 흔쾌히 그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대장간 식구들은 밤을 이용하여 몰래 짐을 꾸려 태자가 탄 상선에 올랐고, 그 길로 장강을 빠져나와 산동을 거쳐 백제 땅을 밟았다.

태자 수가 가져온 보검을 보고 대왕 구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보검이로군! 이번에 이 보검을 만든 대장장이가 같이 왔다고?”

“네, 대장간을 열어 그들로 하여금 백제 장병들이 쓸 병장기를 만들게 할 계획입니다. 백련철검을 만드는 비법을 알고 있는 자들이옵니다.”

태자 수는 흉노 출신의 대장장이에게 들은 대로 백련철검 만드는 비법을 대왕에게 들려주었다.

“백 번 단련하여 만든 보검이라!”

대왕 구는 칼집에서 보검의 날을 뽑아 이리저리 살펴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햇빛을 받아 번쩍이는 칼날이 매우 예리해 보였다.

“특히 글자에 금박을 입히는 기술은 놀랍습니다. 흉노인들이 독보적으로 개발한 기술이라 하옵니다.”

태자 수는 대장간을 세우고 흉노 유민들로 하여금 강철검을 만들게 하였다. 그렇게 수년에 걸쳐 강철로 된 병장기를 생산해 백제군을 무장시켰다.

이에 자신감을 얻는 대왕 구는 가야를 정복하기 위해 백제 원정군을 보냈다. 이때 대왕 구는 태자 수와 함께 원정군을 이끌고 한성을 떠나 서남쪽으로 진군하였고, 신라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백제의 변경 탁순(卓淳: 대구)을 지키던 장군 목라근자(木羅斤資)는 가야 7국을 평정하면서 서진(西進)하여 두 군대가 고해진(古奚津: 강진)에서 합류하였다. 이로써 대왕 구와 백제 수가 이끄는 한성의 원정군과 목라근자의 주력군이 연합한 양군에 둘러싸인 구(舊) 마한(馬韓) 지역은 자연히 항복을 하게 되었다. 이처럼 백제가 가야 7국과 마한 지역을 평정하는 데는 장군 목라근자의 공이 컸다.

가야를 병합하고 한성으로 돌아온 대왕 구는 태자 수에게 다음과 같이 명했다.

“흐음, 이번에 가야 원정 때 군사를 보내준 왜국의 왕에게 보검을 하나 선물하고 싶구나. 짐이 왜국의 왕에게 보검을 보내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일이니, 태자의 명의로 특수한 보검을 만들어 보내도록 하거라. 백련철로 된 훌륭한 보검을 우리 백제국이 만든다는 사실을 알리면, 왜국도 계속 우리에게 복종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그들은 분명 우리 백제국의 철 다루는 기술을 배워가려고 할 것이다. 그러자면 왜국은 우리 백제국을 계속해서 상국으로 모실 수밖에 없겠지.”

대왕의 명으로 태자 수는 흉노 출신 대장장이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칠지도(七支刀)를 만들어 왜왕에게 보냈다.

“재작년 가야와 마한 정벌로 남변을 정리했으니, 이번에는 고구려 평양성을 쳐서 북변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마한 지역에서 군사를 조련하고 있는 목라근자 장군에게 일만의 지원병을 요청하면, 이곳 한성의 군사와 수곡성 군사를 합하여 총 삼만의 군사를 평양성 원정군으로 편성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강남의 진나라로는 지금이라도 사신을 파견하여 화북 진나라의 요서 진출을 막아달라고 하면 되지 않겠사옵니까? 이번 동맹제의 시기를 놓치면 곧 겨울이 닥쳐 전쟁에 어려움이 있고, 명년 봄을 기다리다 보면 고구려로 하여금 재정비할 기간을 충분히 주게 되어 평양성 공격에 큰 어려움이 있을 것이옵니다.”

이렇게 태자 수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마침내 대왕 구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태자의 말이 옳다. 실기를 하면 안 된다, 이 말이렷다? 허면 강남 진나라에 곧 사신을 파견하고, 목라근자에게 파발을 띄워 일만의 지원군을 요청토록 하라. 헌데 강남 진나라에 보낼 사신으로는 누가 적임자라 생각하는가?”

“막고해 장군을 보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태자 수는 2년 전 치양 전투를 통해 막고해의 해박한 지식과 놀라운 지혜를 이미 경험한 터라 동진으로 보낼 사신의 적임자라 판단했다.

“흠, 막고해 장군이 빠지면 평양 원정에 지장이 있지 않겠는가?”

“목라근자 장군이 있으니, 염려할 필요는 없을 듯하옵니다. 막고해 장군은 경서를 두루 섭렵하여 문무를 겸비한 지장으로, 강남의 진나라로 하여금 우리 백제를 지원토록 하는 혜안을 갖고 있을 것이옵니다.”

“좋은 생각이다. 허면 이번 평양성 전투는 태자가 막고해의 빈자리를 보강해야 할 것이야.”

“이를 말씀이옵니까? 이번에는 폐하께서 한성을 지키도록 하시옵소서. 소자가 평양성에 가서 고구려왕 사유의 목을 베어오겠사옵니다.”

태자 수의 장담에 대왕 구는 빙그레 웃었다. 그 패기가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아니다. 이번에 짐도 출전할 것이다.”

“그러면 한성은 누구에게 맡기려고 하시옵니까?”

“달솔 진도고(眞高道)가 있지 않느냐?”

대왕 구는 이미 달솔 진고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진고도는 왕후의 사촌으로, 대왕 구가 즉위한 후 친오빠 진정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 요서 지역으로 쫓겨 간 후 뒤늦게 권력의 실세로 등장한 인물이었다. 진정이 강퍅한 성격의 강경파에 속한다면 진고도는 그 반대로 온건파였다. 진씨 세력을 대표하는 실세이면서도 자신을 내세우는 법이 없었고, 매사 신중하게 일처리를 하는 편이어서 대왕 구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더구나 진도고의 딸은 태자비이므로, 사사롭게는 되 태자 수에게 장인이 되는 셈이었다. 그만큼 대왕 구나 태자 수에게는 믿음이 가는 인물이었다.

이로써 겨울이 닥치기 전에 백제는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략하기로 최종 결정을 내렸다. 따라서 가야와 마한 지역을 맡고 있는 목라근자로 하여금 정병 1만을 뽑아 원정군으로 편성토록 했으며, 장군 막고해에게는 사신단을 꾸려 동진으로 떠날 채비를 서두르게 하였다.

동진으로 갈 사신으로 막고해가 정해졌다는 소문이 나돌자, 고구려에 밀정으로 갔다 돌아온 사기가 태자 수를 찾아왔다.

“태자 전하! 이번 동진 사신단에 소신도 참여토록 주선해 주시옵소서.”

태자 수는 머리를 조아리는 사기를 의외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대가 동진엘 가겠다고?”

“네, 소신은 앞으로 동진과 큰 교역의 길을 열어 서역의 명마를 우리 백제에 들여오고 싶사옵니다.”

“흐음! 그대가 말을 잘 다루니, 일리는 있는 얘기다만…….”

태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고민을 할 때 나오는 그의 습성이었다.

“소신이 고구려에 가서 초원로를 통해 서역과 교역을 하는 대상 하대용의 종마장에서 일한 적이 있사옵니다.”

“그래, 나도 그 얘기는 들은 바 있다.”

“그 하대용라는 대인의 딸이 이번에 고구려 왕자 이련과 혼인을 한다고 들었사옵니다. 하대인은 말 이백 두와 금은보화를 수레 열 대에 실어 국내성으로 보냈다 하옵니다. 소신은 고구려의 하대인보다 더 큰 장사꾼이 되고 싶사옵니다. 그리하여 강남의 진나라를 통해 서역으로 가서 명마를 수입해 오겠사옵니다. 그 명마들은 우리 백제의 기마대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줄 것이옵니다.”

사기의 말을 듣고 난 태자는, 그 자리에서 그를 동진 사신단에 합류시켜주기로 약속했다.

“그대 야망이 마음에 든다. 내가 그대를 대상으로 만들어주마.”

태자 수는 밀정 역할을 하여 두 번이나 공을 세운 바 있는 사기가 더욱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7

 

하늘은 푸르고 싱싱했으며, 그 차고 맑은 공기를 뚫고 내려온 햇살은 따스하였다.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공기로 인해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나무들은 점차 갈색으로 변하던 이파리들을 하나둘 지워가고 있었다. 낙엽이 가지를 떠나자 이파리 속에 수줍은 듯 숨어 있던 과실들이 비로소 태깔 고운 얼굴을 드러냈다. 이른바 결실의 계절이었다.

고구려 국내성은 동맹제 준비로 바빴다. 동맹제는 국내성 동쪽 산 중턱에 자리 잡은 국동대혈(國東大穴)에서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국동대혈에서 나무조각상으로 된 신주(神主)를 받들고 압록강가로 나와, 이번에는 수신에게 제를 올렸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강변의 너른 평원에 마련된 연회장에서 본격적인 동맹축제가 열렸다.

해마다 열리는 동맹축제를 위하여 연회장은 기와를 올린 긴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운데 왕실 가족과 대신들이 앉는 자리가 높다랗게 마련되어 있었으며, 그 좌우로 날개를 펼친 듯 장랑(長廊)이 이어져 우천시에도 비를 맞지 않고 관람할 수 있었다. 이 장랑의 난간에선 일반 백성들이 동맹축제를 구경할 수 있도록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떠들썩한 가운데 축제가 진행되었다. 떡이며 술도 마련하여 먹고 마시고 춤을 추며 축제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장랑의 기둥마다 높다랗게 깃발이 꽂혀 있었다. 고구려의 상징인 삼족오기를 비롯하여 청룡기·백호기·주작기·현무기 등의 사신기, 그리고 동·서·남·북·중앙의 각 부를 대표하는 기들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이고 있었다. 그 울긋불긋한 깃발들은 고구려의 위용을 자랑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전각 맞은편에도 각종 천막이 들어앉아 마을마다 구경 나온 사람들로 붐볐고, 그곳에도 천막 사이사이로 각종 깃발들이 나부끼고 있었다.

이미 동맹제를 지내기 전에 이련 왕자와 연화 낭자는 국내성에서 국혼을 성대하게 치렀다. 동맹제가 열리는 압록강 강변 축제 현장의 가운데 전각에는 대왕 사유를 비롯하여 태자 구부와 태자비, 왕자 이련과 왕자비 등 왕실 가족에서부터 대신들과 그 가족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귀족들이 참석하여 각종 기예와 무술 경연을 관람하였다.

동맹축제는 무술대회의 성격을 띤 각종 기예 겨루기의 현장이었다. 압록강 강변에서 축제가 열리기 며칠 전부터 사실상 동맹제는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왕실에서는 대왕 사유가 5부 군사들과 함께 사냥대회에 참여하여, 거기서 잡은 사냥감으로 국동대혈에서 천제를 올렸다. 그리고 민가에서는 마을 단위로 돌팔매싸움·씨름·수박희·공차기·투호·윷놀이·바둑·장기 등 각종 민속놀이를 즐겼다. 이렇게 마을 단위로 시합을 하여 뽑힌 장정들이 압록강 강변 축제 현장에 나와 본격적인 경연을 벌이게 되는 것이었다.

민속놀이에선 돌팔매싸움과 씨름이 가장 흥미로웠다. 돌팔매싸움은 마을끼리 단체전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낸 사람이 결승전에 올라오게 되어 있는데, 그 결승전은 실전을 방불케 하였다. 말을 타고 두 사람이 겨루는데, 돌팔매로 상대편을 먼저 말에서 떨어드리는 자가 장원을 하게 되어 있었다. 먼 거리 싸움에선 화살이 유리하지만, 가까운 거리에선 역시 돌팔매처럼 정확하게 목표물을 명중시킬 수 있는 무기도 없었다. 장원을 한 장정은 돌팔매로 백발백중 상대의 얼굴이나 몸통을 맞춰 피를 흘리며 말에서 떨어지게 만들었다.

씨름은 서역에서 대상을 따라온 자들도 출전할 수 있었다. 고구려 장사와 서역 장사의 한 판 대결은 자못 흥미로웠다. 코가 크고 눈이 쑥 들어간 일명 ‘심목고비(深目高鼻)’형 얼굴에 등치가 매우 큰 서역 장사는 과연 태산이라도 들어 올릴 듯 힘이 세었다. 고구려 장사도 그에 못지않게 등치가 매우 우람하였으나, 아무래도 힘에서는 서역 장사한테 밀렸다. 그러나 씨름은 힘보다 기술력이었다. 허리힘이 좋은 고구려 장사는 서역 장사에게 힘으로 밀려 뒤로 넘어갈 듯했으나,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여 낮은 자세로 바짝 달려들어 허리를 뒤틀며 들배지기 한 판으로 멋지게 메어꽂았다. 서역 장사는 미처 몸을 가누지 못하고 졸지에 모래판에 머리가 처박히는 꼴이 되었다.

이밖에 기예를 겨루는 말타기재주·손재주·발재주·칼부림재주 등의 놀이가 있었으나 뭐니 뭐니 해도 무예 겨루기가 동맹축제 중에선 가장 볼만한 것이었다. 무예 겨루기는 말타기·활쏘기·칼싸움·창던지기 등 각종 무예에서 최고 실력자는 뽑는 경기였다. 그 모든 무예 겨루기에서서 최고의 고수가 되어야만 장원을 할 수가 있었다.

동맹축제 때는 고구려 전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무사들이 참여했는데, 여기서 장원을 하면 바로 장군의 지위에 해당하는 사자(使者)의 벼슬을 받아 일정 단계를 거치지 않고 젊은 나이에 곧바로 신분상승을 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래서 고구려 변방에서도 이 동맹축제의 무술경연에 참여하기 위해 이미 한 달 전부터 무사들이 국내성으로 몰려들기 시작하였다.

수백 명의 무사들이 무술 경연을 벌였는데, 최종으로 뽑힌 무사는 세 명이었다. 세 명의 무사는 모두 신분을 감추기 위해 얼굴에 가죽으로 만든 호랑이·곰·용의 가면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그들은 각자 얼굴에 뒤집어쓴 가면 때문에 백호 무사, 불곰 무사, 청룡 무사로 불렸다.

먼저 불곰 무사와 청룡 무사의 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이미 말타기와 활쏘기, 창칼을 다루는 개인 무술 경연을 거쳤으므로 말을 타고 실전처럼 겨루는 무술 시합만 남아 있었다. 무기는 각자가 마음대로 가장 자신 있은 것을 택하였다. 불곰 무사는 월도(月刀)를 들고 나왔고, 청룡 무사는 구겸창(鉤鎌槍)으로 응수했다. 월도나 구겸창이나 자루가 길어서 서로 격투 공간을 넓게 쓰면서 겨루었다. 갈기를 세운 말과 말이 비껴나가면서 바람을 일으켰고, 창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다. 사람 키의 두 배는 되는 긴 자루가 달린 무기를 두 무사는 자유자재로 놀려대고 있었다. 각자 무기의 길이가 길기 때문에 말고삐를 잡지 않고 두 손으로 무기를 사용해야만 하였다. 그러나 두 무사의 말 타기 실력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뛰어나서, 양발에 등자만 끼우고서도 말 위에서 자유자재로 몸을 놀렸다. 말과 사람이 마치 한 몸처럼 밀착되어 호흡을 가다듬지 않으면, 그런 몸놀림이 가능치 않은 일이었다. 두 무사는 상대의 무기가 공격해오는 방향에 따라 허리를 앞으로 꺾고, 뒤로 제키고, 좌우로 몸을 틀었다. 그 동작들은 결투 같지 않고 마치 춤사위처럼 현란하기까지 하였다.

그렇게 30여 합을 싸웠을 때쯤, 청룡 무사가 공중으로 휘두르던 갈고리가 달린 구겸창을 땅 끝으로 향한 채 말을 몰아왔다. 작전을 바꾼 것이었다. 그러자 불곰 무사는 월도를 공중에서 휘휘 돌리며 말을 치달려 왔는데, 말끼리 서로 비껴갈 때 상대의 가슴을 향해 내뻗는 척하다가 반대편으로 빙글 몸을 돌렸다. 구겸창의 갈고리를 아래서 위로 걸어 올리며 상대의 갑옷을 낚아채 말에서 떨쳐내려던 청룡 무사는, 순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과 말이 스칠 때 구겸창을 찔러 넣으면서 몸이 상대편 쪽으로 기울었을 때, 어느새 다시 말 등으로 몸을 솟구친 불곰 무사가 뒤로 스쳐가는 청룡 무사의 등을 향해 월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힘의 균형을 잃은 청룡 무사는 말 위에서 떨어져 땅 바닥에 뒹굴며 흙투성이가 되어버렸다. 불곰 무사가 월도의 칼등으로 쳤기 때문에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청룡 무사는 절뚝거리고 있었다. 말에서 떨어지면서 몸의 균형을 잃어 다리를 다친 모양이었다.

“저 불곰 무사가 누군지 알겠어요.”

왕자비 연화가 옆에 앉은 왕자 이련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니, 어찌 저 자를 안단 말이오?”

“말 타는 기술이나 월도 다루는 솜씨가 추수 사범이에요.”

국혼을 치른 후에 추수는 이련 왕자의 무술 사범으로 기용되었던 것이다. 물론 스승 을두미의 추천서 덕분이었다. 거기에다 왕자비의 적극적인 지지도 한몫 했다고 볼 수 있었다.

“추수 사범? 설마 그럴 리가?”

“나중에 가면 벗을 때 보면 알겠지요.”

잠시의 휴식이 있었다. 이때 막간을 이용하여 큰 나팔과 북이 등장하였고, 각종 기예에서 우승한 자들이 경기장으로 몰려나와 온갖 재주를 보여주었다. 공과 나무막대를 이용하여 재주를 부리는 사람, 나무로 된 다리에 올라서서 춤을 추는 사람, 칼춤을 추는 사람, 공중제비를 하면서 재주를 넘는 사람, 장단에 맞춰 춤을 추는 무희들 등등 한바탕 놀이마당이 이어졌다.

흥겨운 놀이마당이 끝나고, 이번에는 백호 무사와 불곰 무사의 시합이 벌어졌다. 청룡 무사가 다리를 다쳤기 때문에 더 이상 시합을 할 수 없어, 이제 두 무사가 최종 결승을 겨루게 되었던 것이다. 백호 무사는 환두대도를, 불곰 무사는 먼저 번과 달리 쌍칼을 들고 나왔다. 환두대도는 베고 찌르는 데 유리했고, 쌍칼은 베는 데 주로 쓰이나 두 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환두대도를 든 백호 무사의 칼 다루는 솜씨는 매우 날카로웠다. 불곰 무사가 쌍칼로 막아내기에 바쁠 정도로 현란하게 오른손에 쥔 칼을 휘두르고, 왼손으로는 말고삐를 잡고 상대와의 거리 조정을 하면서 공격을 가해오는 것이었다. 두 무사는 노련하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상대의 허점을 노렸다. 크게 기합을 넣지도 않았다. 조용한 가운데 공중에서 칼 부딪치는 소리만 날카롭게 공기를 갈랐다. 50여 합을 싸웠는데도 승부는 나지 않았다. 그들은 싸움을 할 줄 알았다. 실력이 있는 무사들은 함부로 무리하게 힘을 쓰지 않고, 내공의 힘으로 호흡을 조절하면서 힘을 여축해두는 법이었다. 고수는 상대의 눈빛만 보고도 칼이 어디로 들어올지 알아챌 수 있었다. 두 말이 침을 게워내며 헉헉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사들은 호흡 한 번 거칠어지지 않았다.

“허허, 과연 자랑스러운 고구려의 무사들이로다.”

대왕 사유가 감탄하여 만면에 웃음을 머금었다.

“폐하! 두 무사 모두 장원감이옵니다. 해가 질 때까지도 도무지 승부를 가리기가 어려울 듯싶사옵니다. 그만 시합을 멈추도록 하시지요.”

태자 구부가 옆에서 건의를 하였다. 어느덧 해가 서녘으로 기울어 경기장 위로도 붉은 노을이 뿌려지고 있었던 것이다.

“징을 울려 시합을 멈추어라!”

대왕의 명이 떨어졌을 때였다.

막 경기를 멈추라는 신호의 징소리가 울리자, 두 무사가 대결을 멈추고 말에서 뛰어 내렸다. 그들이 막 대왕 앞에 달려와 군례를 올리려던 바로 그때였다.

붉은 깃발을 등에 단 기병이 경기장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니, 저자는 무엇을 하는 자인가?”

대왕이 벌떡 일어섰다.

헐레벌떡 말에서 뛰어내린 기병은 대왕 앞에 와서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백제군이 평양성으로 쳐들어왔사옵니다.”

“무엇이?”

“백제왕 구와 태자 수가 군사 삼만을 끌고 패수를 건너왔사옵니다. 평양성의 일만 병력을 가지고는 역부족이니 원군을 보내달라는 성주의 요청이옵니다.”

기병은 가슴에서 평양 성주가 보낸 서찰을 꺼내 대왕 사유에게 바쳤다.

서찰을 읽는 대왕의 얼굴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그의 입에서 으드득, 이를 갈아 붙이는 소리가 옆에 있는 태자 구부에게까지 들릴 정도였다.

“폐하! 얼른 축제를 마무리하고 입궐하여 대책을 논의하시지요.”

태자 구부가 외쳤다.

“흐음! 그래야겠지.”

대왕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대왕 폐하! 이번 원정에 저희들도 출전케 해주십시오. 백잔의 무리들을 쓸어다 패수에 수장시켜버리겠사옵니다.”

“폐하! 군사만 주시면 바로 출동하겠나이다.”

방금 시합을 벌이던 백호와 불곰 두 무사가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경기장 밖에 나가 있던 청룡 무사도 달려 나와 군례를 올렸다.

“폐하! 저도 원정군에 참여케 해주시옵소서.”

“오오! 그대들이 짐의 근심을 덜어주는구나! 그대들 세 명의 무사를 가진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하다. 일단 평양성에서 온 기병은 듣거라. 빠른 시일 내에 국내성에서 군사 일만 오천을 원정군으로 보낼 것이고, 차후에 변방에서도 군사를 모아서 이만을 후군으로 보낼 것이니, 평양성을 지키는 일만 병력은 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단단히 성을 수비하라 일러라.”

대왕 사유의 명령이 떨어지자, 평양성에서 달려온 기병은 말을 돌려 급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이제 무사들은 가면을 벗고 대왕 폐하께 정식으로 예를 올리시오.”

태자 구부가 소리쳤다.

그러자 세 명의 무사는 얼굴에 썼던 가면을 벗었다.

왕자비가 예견한 대로 불곰 가면을 썼던 무사는 추수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마지막까지 결전을 벌였던 백호 무사는 예기치도 못했던 해평이었다. 대왕 사유도 그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두 무사는 짐이 한 번 본 적이 있는 얼굴이구나. 지난 봄 태백산 천제 때 그대들의 뛰어난 무술을 보고 감탄했던 기억이 새롭군. 그런데 청룡 무사는 얼굴이 생소한데, 어디 사는 누구인가?”

“대왕 폐하! 저의 부친께서는 전에 장하독(帳下督)을 지낸 분으로 연나라에서 망명한 장군이옵니다.”

가면을 벗은 청룡 무사가 무릎을 꿇으며 대왕 사유를 올려다보았다.

“허면, 동수(冬壽) 장군의 자제란 말인가?”

대왕 사유는 반가움에 몸을 앞으로 당겨 무사를 바라보았다.

동수는 대왕 사유가 부왕 미천왕의 뒤를 이어 위에 오른 지 7년(337) 되던 해에 요동 모용황의 친동생 모용인(慕用仁)의 부하로 있다가 고구려로 귀화해온 연나라 장수였다.

대왕 사유는 동수에게 장하독의 벼슬을 내려 늘 가까이 두고 지냈으며, 20여 년간 동고동락을 해온 사이였다. 장하독은 대왕의 신변을 책임지는 장수로, 그가 일찍 죽었을 때 친동기간을 잃을 듯 가슴 아파했던 기억이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장하독 동수의 아들이라니 여간 반갑지 아니하였다.

“동수 장군의 아들이라! 장하도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고?”

“동관(冬關)이라 하옵니다.”

“오, 그래! 오늘 이 세 명의 무사는 우리 고구려의 밝은 미래다. 세 무사에게 공히 사자의 벼슬을 내린다. 그대들은 특별히 이번 평양성 전투에 동참토록 하라.”

이렇게 명한 후 대왕 사유는 동맹축제를 마무리 짓고, 백제군 토벌을 논하기 위해 서둘러 국내성으로 입성하였다.

여느 때 같으면 남녀노소가 한데 어울려 술 마시고 노래 경연을 벌이며 밤새워 동맹축제를 즐길 터인데, 백제군의 평양성 침공 소식은 그런 분위기를 완전히 일소시켜버리고 말았다.

 

<엄광용 약력>

-1954년 경기도 여주 출생.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1990년 『한국문학』에 중편소설 「벽 속의 새」가 당선되어 문단 데뷔.

-창작집 『전우치는 살아 있다』, 장편소설 『황제수염』, 『사냥꾼들』, 『꿈의 벽 저쪽』, 『사라진 금오신화』 등이 있음.

-2015년 역사소설 『사라진 금오신화』로 류주현문학상 수상.

*블로그 주소: http://blog.naver.com/novelky

엄광용 작가  koreanewstimes@k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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