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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미한 사람
  • 김선경 경향신문 차장
  • 승인 2017.10.0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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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SK 에너지 블로그>

티미한 사람

중국인 관광객을 뜻하는 말은 ‘요우커’였다. 그런데 외래어 표기가 ‘유커’로 바뀌었다. ‘유커’가 현지음과 가깝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를 두고 현지음과 동떨어진 표기라는 둥 이런저런 말이 여기저기에서 나왔다.

교열쟁이로서 이런 논쟁을 보면 참 답답하다. 쉬운 우리말 ‘중국인 관광객’을 사용하면 외래어 표기법 따위에 굳이 신경 안 써도 될 텐데, 왜 쓸데없는데 헛심을 들이는지 모르겠다. 미국인, 일본인 등은 미국인 관광객, 일본인 관광객이라고 잘들 쓰면서 왜 중국인 관광객만 특별히 현지음 표기가 필요한지 모를 일이다. 이런 논란을 보면 우리말을 밀어내고 외래어가 점점 세를 넓혀가는 듯해 마음이 영 불편하다.

이처럼 외래어에 밀려 국어사전 구석진 자리에서 잠들어 있는 예쁜 우리말이 차고 넘친다. 우선 ‘모도리’가 그렇다. 보통 외적으로 차갑게 보이거나 예리한 판단력을 지닌 사람을 보고 ‘샤프하다’고 한다. ‘샤프한 사람’ 대신 쓸 수 있는 순우리말이 ‘모도리’다. 허수한 데가 없이 야무지거나 실속이 있는 사람을 일컬어 ‘모도리’라고 한다.

‘슬기주머니’도 재미있다. 유달리 재능이나 지혜가 뛰어난 사람 하면 아마도 ‘탤런트’나 ‘엘리트’를 먼저 떠올릴 듯하다. ‘탤런트’를 우리말로 하면 ‘슬기주머니’가 된다.

재미나는 우리말에 ‘투미하다’도 있다. ‘투미하다’를 ‘티미하다’나 ‘트미하다’로 쓰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표준어가 아니다. ‘티미한 사람’이나 ‘말을 티미하게 한다’처럼 쓰는 ‘티미하다’는 어리석고 둔하다를 뜻하는 ‘투미하다’의 경상도 사투리다.

‘티미하다’를 영어 ‘timid’에 ‘하다’를 붙인 말로 아는 사람도 있는데 영어와는 관계없는 우리말이다. ‘투미하다’와 비슷한 뜻으로 쓸 수 있는 우리말로 ‘트릿하다’도 있다. ‘맺고 끊는 데가 없이 흐리터분하고 똑똑하지 않다’라는 의미다.

 

애동지와 새알심

음력 11월은 동짓달이다. 그중에서도 선조들은 음력 11월10일이 채 못 되어 드는 동지를 ‘애동지’ ‘아기동지’ ‘오동지’라 불렀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서는 동짓날 팥죽을 쑤어 먹었다. 특히 동짓날 쑤어 먹는 팥죽을 동지팥죽이라고 한다. 동짓날 특별히 먹는 음식이라 하여 동지팥죽을 동지시식, 동지두죽, 동지죽이라고도 한다.

 팥죽 속에 넣어 먹는 찹쌀가루나 수수가루로 동글동글하게 만든 덩이를 보통 ‘새알’이라고 한다. 옛사람들은 동짓날 팥죽에 ‘새알’을 자기 나이만큼 넣고 먹으면 건강해지고 액운을 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동짓날이면 자기 나이만큼 ‘새알’을 먹어야 비로소 한 살을 더 먹게 된다고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주아주 옛날에는 동지를 일 년의 시작인 새해 첫날로 여겨 나라에서 달력을 만들어 벼슬아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팥죽에 넣는 동글동글한 떡은 ‘새알’이 아니다. ‘새알’은 말 그대로 새의 알이다. 크기와 모양이 새의 알과 비슷하여 ‘새알’로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팥죽에 찹쌀가루나 수수가루로 동글동글 먹기 좋게 빚어 넣는 떡은 ‘새알심’이다. 새알만 한 크기로 동글동글하게 먹기 좋게 빚은 ‘심(心)’이라 하여 ‘새알심’이다. ‘심’은 죽에 곡식가루를 잘게 뭉치어 넣은 덩이를 이르는 말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새알심’ 혹은 ‘옹심이’나 ‘옹시미’라고 하는데 이들은 모두 방언이다.

 

쌀팔다, 쌀사다

우리말에는 재미난 게 많다. 하지만 우리말은 참 어렵다. 매일 국어사전을 뒤져도 새로운 게 나온다. 하루는 뜬금없이 아내가 물었다. “왜 어른들은 쌀을 사러 가면서 쌀을 팔러 간다고 하지?” 그러고 보니 고향에 있는 어머니도 쌀사러 가면서 쌀팔러 간다고 한다.

 사전을 뒤지니 답이 나온다. ‘팔다’에 돈을 주고 곡식을 사다란 뜻이 있다. 그러니 ‘쌀을 팔다’나 ‘쌀을 사다’는 같은 의미인 셈이다. 그러나 ‘팔다’가 ‘산다’는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대상이 쌀 등 곡식일 때만 해당한다.

 그런데 ‘쌀을 팔다’가 어떻게 ‘쌀을 사다’란 의미로 쓰이게 된 걸까? 이 유래에 대해 인터넷상엔 다양한 어원설이 떠돈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민간에 떠도는 ‘쌀을 팔다’의 유래는 민간 어원일 뿐이고 왜 쌀을 사러 가면서 쌀을 팔러 간다고 했는지 그 이유를 정확히 밝히는 문헌이나 기록은 없다고 한다.

 사전을 뒤지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쌀팔다’와 ‘쌀사다’가 한 단어로 국어사전에 올라 있다는 것이다. 한데 ‘쌀팔다’는 쌀을 돈 주고 사다란 의미이고, ‘쌀사다’는 쌀을 팔아 돈으로 바꾸다란 뜻이란다.

결국 상황에 따라 쌀파는 사람이 ‘손님’일 수도, ‘주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쌀을 팔다’나 ‘쌀을 사다’, 여기에다 ‘쌀팔다’까지 다 같은 뜻으로 쓰일 수도 있다. 이래서 우리말이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다.

 

필자약력

김선경, 현 경향신문 교열부 차장, 현 한국어문기자협회 부회장. 스포츠서울 스포츠칸 교열기자 ‘알고 쓰는 말글’ 연재(2012~2016년)

김선경 경향신문 차장  koreanewstimes@kn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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